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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한은총재 5~6명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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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차기 한은총재 5~6명 격돌

류시열, 김시담, 박승, 이헌재, 강봉균 등 거명

한국은행 총재 임기 만료가 넉 달여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정부와 금융계에서 전철환 총재의 유임 또는 교체 여부를 둘러싼 각종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총재가 임기만료 후에도 정권교체 때까지 1년간 한시적으로 유임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권교체 등의 정치적 변수로 중도에 교체되지 않을 ‘거목’이 자리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이미 한은 안팎에서는 5~6명의 후보들이 자천타천으로 거명되고 있어 차기 한은총재직을 둘러싼 격돌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전철환 총재(63)는 한국은행법 개정이래 최초로 4년 임기를 채운 중앙은행 총재로 기록될 전망이다. 전 총재는 김대중 정부 출범후인 지난 98년 3월6일 총재로 취임했다. 따라서 내년 3월5일 임기가 만료되는데, 문제는 이 시점이 김대통령의 잔여임기가 1년밖에 안남은 미묘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현행 한은법은 총재의 임기를 4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후 요직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를 해온 한국의 정치현실을 고려할 때 과연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은총재라는 자리는 비록 한국적 현실에서 많은 제약이 있긴 하나, 한 나라의 거시경제정책을 총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과거정권 인물을 계속 앉혀둘 정도로 만만한 자리도 아니다.

***전철환 총재에 대한 엇갈린 평가**

따라서 금융계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최적의 인물이 선정되지 않을 경우 차기 한은총재 임기는 1년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전철환 총재 유임설이다. 한은 관계자는 “전총재가 재임기간중 과오를 범한 적이 없는 만큼 김대통령이 자신과 임기를 같이 하자는 차원에서 전총재를 재신임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총재에 대해선 그러나 다른 평가도 있다. 금리정책에서 ‘때’를 놓치는 결정적 과오를 했다는 지적이다. 그런 대표적 예가 지난 99년 하반기 때의 금리정책 실패다. 당시 거래소와 코스닥 등 주식시장은 ‘묻지마 투자’로 크게 달아올랐고, 그 결과 ‘자산 인플레’가 극심하게 진행됐다. 한은 내에서조차 “콜금리를 1~2% 대폭 인상해 거품을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을 정도로 상황은 자못 심각했다. 그러나 전철환 총재는 그해 8월 발발한 대우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및 다음해의 4월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을 과도하게 의식한 듯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고, 그 결과 지난해부터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는 끝없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99년말 금리인상의 시기 놓친 게 결정적 과오**

그 무렵 금리인상을 주장했던 한은 관계자는 “당시 한은이 금리를 올렸어도 ‘묻지마 투자’의 과열양상을 보았을 때 주가는 계속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당시 한은이 금리를 대폭 올려놓았더라면 그 후 불황이 닥쳤을 때 한은은 지금보다 금리를 대폭 내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돼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전철환 총재가 연초에 “하반기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과도한 낙관론을 앞장서 전파하는 등 중앙은행 총재로서의 거시예측 능력에 한계를 드러낸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전총재에 대한 김대통령의 신임도 그렇게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점 역시 전총재 유임설을 부정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 7월 경제팀 개각 당시 청와대측은 A교수에게 “한은총재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가 A교수의 사양으로 ‘불발’에 그친 적이 있다.

***류시열,김시담,박승,이헌재,강봉균 등 거명**

이런 맥락에서 한은 안팎에서는 새 인물이 한은 차기총재직을 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치는 시각이 많다.
현재 차기총재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물은 전직 한은출신 3~4명과 전직 관료출신 2명 등 5~6명에 달하고 있다.
한은 출신 가운데 유력후보로 거명되는 인물은 류시열 은행연합회장, 김시담 전 금융통화위원, 박승 공적자금관리위원장 등이다. 이밖에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후 전철환 총재에 앞서 한은총재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해 세간의 화제가 됐던 정운찬 서울대교수 역시 가장 이상적인 후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 있으나 본인이 이를 수락할 리 없어 사실상 후보대열에서는 빠진 상태다.

류시열 은행연합회장의 경우 한은이 낳은 ‘천재’중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상황판단과 조직장악력이 강해 한은 안팎에서 0순위로 거명되는 인물. 한은 부총재를 끝으로 한은을 떠나 정부 부탁으로 제일은행장을 맡아 해외매각까지 성사시켰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4년 임기를 다 채울 수 있는 유력후보로 평가되고 있다.

김시담 전 금융통화위원은 현재 한국금융연구원 고문 일을 맡고 있으나, 한은으로의 컴백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주에서 태어났으나 목포고를 졸업한 점이 강점이자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를 총재에 임명할 경우 편중인사 시비가 재연되고, 정권교체시 임기만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언론에 비판적 글을 자주써 지명도가 높은 편인 박승 공적자금관리위원장 겸 중앙대 교수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전주고 출신이라는 점이 강점이자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직 관료출신 가운데에서는 이헌재 전재경부장관과 강봉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재경부장관직을 마지막으로 1년여째 쉬고 있는 이헌재 전장관은 요즘 경제가 최악의 침체상을 보이자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한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인은 한은총재직에도 관심을 갖고 있으나, 재경부출신이라는 점에서 한은 내부의 시선이 곱지 않은 편이다.

강봉균 KDI원장은 김대중대통령의 신임이 절대적이라는 점, 전북 군산 출신이라는 점, 업무추진력과 원칙에 강하다는 점 등에서 관료 출신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또한 최근 KDI를 기반으로 강력한 경제정책 제언을 계속하고 있는 점도 플러스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 전직 금통위원 출신 교수 등 경제학계의 관심도 큰 것으로 알려져 한은 총재를 둘러싼 물밑 신경전은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한은 관계자는 “전총재가 앞으로 4년 임기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차기총재를 맡는다면 모르겠으나 만에 하나 ‘1년 총재’를 욕심내서는 안될 것”이라며 “정치권도 권력의 다원화 측면에서 차기총재가 선정되면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4년 임기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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