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본격적으로 중국의 경제팽창을 견제하고 나섰다. 일본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경제재정 담당상은 15일 기자들과 만나 “엔화 대비 위앤화의 가치가 과소평가돼 일본의 산업 공동화(空洞化)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며 “중국은 위앤화를 평가절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그는 이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방선진7개국(G7) 등과 폭넓은 의견교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여 금명간 G7회의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다케나카 담당상의 위앤화 평가절상 발언은 정부당국자로서는 최초의 발언으로, 오는 12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일본이 중국의 환율절상을 강력히 압박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 재계는 그동안 위앤화의 상대적 과소평가로 국내외 시장에서 일본제품이 큰 불이익을 보고 있다며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일본정부의 이같은 중국견제는 최근 일본의 무역수지가 적자전환이 우려될 정도로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것과 유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내각부는 최근 자료를 통해 “수출물량의 대폭 감소로 분기별 무역 및 서비스 수지가 금년 중에라도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경상수지와 무역수지는 지난 98년말부터 빠른 감소추세가 지속돼 왔다. 일본은 이같은 무역수지 격감의 한 요인으로 값싸고 질높은 중국제품을 지목, 위앤화 평가절상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중국무역 견제**
이에 앞서 홍콩의 파이낸스 아시아지는 지난 10일자 중국특집 기사에서 “중국의 수출품들이 빠르게 고부가가치를 획득해가고 있다”며 “심지어는 일본 수출품들에게까지 도전을 하고 있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이같은 도전은 지난해부터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를 앞지르기 시작한 데에서도 읽을 수 있다”며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보호주의는 중국의 경쟁력 위협에 대한 일본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4월부터 섬유에서부터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다양한 수입품에 대해 목록을 작성해 각종 수입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컬한 점은 일본의 대다수 기업들은 중국의 저렴한 생산기지에서 생산한 물건을 일본으로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일본정부의 중국제품 수입규제는 일본기업 중국 자회사의 제품 수입을 규제하는 모순을 낳고 있다고 파이낸스 아시아는 지적했다.
***‘산업 공동화’가 일본의 최대고민**
다케나카 담당상의 발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일본제품을 위협하는 값싸고 질높은 중국제품의 출현 못지않게 일본정부를 고민에 빠트리고 있는 또다른 대목은 일본기업의 대대적 중국이전이 초래할 ‘산업 공동화’이다.
일본 주요기업들을 상대로 한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지난달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기업의 75%가 가까운 시일내 일본에서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노동자들보다 평균 30배나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일본노동자들을 갖고서는 국내외시장에서 더이상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정부는 이같은 산업 공동화 움직임을 방치할 경우 일본기업들이 중국으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국내에서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 가뜩이나 심각한 내수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경제가 회생불능의 공황적 상태로 빠져들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일본 도쿄 아시아개발은행(ADB) 사무소에 나가있는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재하 박사는 “중국의 위앤화 수준을 말하기에 앞서 일본 엔화가 고평가돼 있는 게 문제”라며 “일본제품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달러화 대 엔화 환율이 현재 120엔대 초반에서 최소한 125엔대로 평가절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9.11테러로 미국경제가 급락하면서 달러화가 약세, 엔화가 일시적 현상이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자 최근 일본기업들은 무역수지 적자를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수출부진에 고통받고 있다.
일본의 위엔화 절상요구에 대해 아직 중국측은 공식적 답변을 안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역시 위앤화를 쉽게 절상시키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수출 최전선인 광동성의 수출실적이 격감조짐을 보이는 등 중국도 세계경제 동시불황에 감염될 위험성이 보이기 시작한 탓이다.
***중국도 내년이후 상황 낙관 못해**
중국 사회과학원은 최근 ‘중국경제 정세의 분석과 예측’이라는 가을 보고서에서 올해의 경제성장률을 7.5% 전후로 예측하고,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이를 상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사회과학원은 그러나 지난해 수출 30%, 수입 20%의 증가세를 보였던 무역부문이 세계경제의 동반침체에 영향받아 올해와 내년은 두자리 숫자를 유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전망에 대해 지난 12일자 중화공상시보는 “일부 학자들이 사회과학원 보고서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 비판하며 올해의 경제성장률은 7%, 내년도 성장률은 그보다 낮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통계국의 만동화(万東華)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수확대를 지탱해온 힘이 약화되고 있으며 해외경제 역시 미국경제가 호전될 것인지가 분명치 않아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며 “설령 내년 상반기에 미국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중국경제는 상대적으로 정체기에 빠져 내년 하반기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정부는 지난 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때 중국이 자국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경제 안보차원에서 위앤화를 현상유지한 대목을 내세워 작금의 일본의 위앤화 절상압력은 부당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이 올 12월 WTO에 가입하면서 종전보다 금융시스템이 외부에 노출되는 시점에 환율에 손을 댄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이 이런 만큼 일본의 위앤화 절상압력은 상당기간 수용되기 어려울 전망이며, 그 결과 일본과 중국간 무역분쟁은 한층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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