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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목숨줄을 쥐고 있잖아"

[인권으로 읽는 세상] 직장 내 괴롭힘은 사라질 수 있을까

직장을 다니려면 돈, 동료관계, 성취감 셋 중 어느 하나는 충족해야 된다고 말했던 친구가 있다. 만날 때마다 사장이 몸종처럼 부려먹는다고 욕을 해서 물어봤다. 세 가지 중 무엇 때문에 버티고 있냐고.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면 수정이 필요하다며 성취감이 아니라 고용이라고 했다. 이어서 친구는 말했다. "그 XX가 내 목숨줄을 쥐고 있잖아."

존엄을 무너뜨리는 일터

지난 연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국회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작 이따위로 일해놓고 돈 받아가는 게 부끄럽지 않냐"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사장의 가정사와 온갖 잡무에 동원되고, 화장실 다녀오는 것을 체크하며 CCTV로 감시하고, 과도한 업무를 요구받거나 아예 업무에서 배제되고, 회식에서 폭탄주와 응대를 강요당하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제정을 촉구해왔던 직장갑질 119에 들어온 제보들이다. 직장에서 당한 갑질로 폭언, 사적지시, 감시, 따돌림, 강요 등의 경험이 쏟아졌고, 친구가 말했던 장면들이 겹쳐졌다.

괴롭힘은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일상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체불임금, 부당해고만큼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사소한 것처럼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인격 살해, 심리적 테러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끄집어내며 "점점 자존감이 낮아지고 내 자신이 하찮아지기 시작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너무 화가 나고 수치심과 분노까지 생겼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괴롭힘 때문에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사축’(회사의 가축)이라는 신조어는 일터에서 인격을 가진 존재로 있을 수 없는 노동자의 처지를 보여준다.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강도가 다를 뿐, 노동자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괴롭힘은 누구라도 일터에서 겪을 수 있는 폭력의 문제다. 하지만 괴롭힘의 화살은 문제가 된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만을 향해왔다.

괴롭힘의 화살은 어디를 향해왔나

라면상무, 땅콩회항 등 갑질 사건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샀다. 하지만 가해행위를 희화하하는 방식으로 이름이 붙은 이러한 사건들은 특정 가해자만이 문제라서 발생한 특수한 사건처럼 여기게끔 한다. 노동자의 존엄을 파괴한 사건으로 가해자들의 폭력을 제대로 문제 삼고 처벌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가해자만 사라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논란을 산 인물이 또 다른 사건으로 새롭게 공분을 불러일으키며 등장한 인물로 교체되는 것으로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기업은 괴롭힘 문제를 개별적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로 취급하고 싶어 한다. 2012년 경총에서 낸 <직장 내 집단 따돌림 문제와 조직관리>에서는 집단 따돌림의 이유를 피해자와 가해자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피해자의 원인을 오만함, 무례함, 과시, 관행 무시, 직무능력 부족, 외모, 질병, 장애로 정리하고, 가해자의 특성을 질투, 경쟁심, 자기 과실 은폐, 권한 과시, 능력 과시, 분노로 정리했다. 피해자나 가해자가 그럴 만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괴롭힘은 개인의 탓으로 돌릴 문제가 아니라 직장이라는 조직의 토대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괴롭힘은 어떻게 기업의 전략이 될 수 있나

갑과 을로 맺어지는 근로계약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갑질논란에서 위계적 조직문화가 문제로 지목되지만, 직장은 애초부터 직급, 경력 등의 위계로 구성되어 지탱되는 조직이다. 나보다 높은 직급의 상사, 관리자, 사용자에게 내 ‘목숨줄’이 달려있다. 고용을 바탕으로 위계가 작동하는 불평등한 권력구조가 직장의 본질이며, 그 권력구조는 이윤을 동기로 한다.

괴롭힘은 기업의 경영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뒷받침되기도 한다. 부당해고라는 법적 책임을 피해 인력 감축 구조조정을 달성하는 방안으로, 노조 없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기업의 입장에서 괴롭힘 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촉진되었다. 저성과자라는 낙인은 함부로 대우해도 된다는 신호가 되고, 노동조합을 한다는 이유로 ‘찍힌’ 노동자들은 회사의 걸림돌로 축출해야 할 표적이 된다. 집단으로 따돌리고, 느닷없이 원거리 발령을 하고, 본래 하던 업무와 전혀 다른 업무를 시키고,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며 모멸감을 주어 노동자가 스스로 나가떨어지게 괴롭히고 이를 기업의 경영권으로 정당화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손해 볼 일이 아니기에 괴롭힘을 묵인하고 방치하면서 합당한 행위로 승인하기도 한다. 성과와 실적 경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괴롭힘 행위가 개인과 조직을 위한 것처럼 포장된다.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은 후임을 훈련시키는 교육과정으로, 상사의 부당한 요구는 수용해야 할 직장문화이자 업무지시로 뒤바뀐다.

직장에서 노동자는 생산성, 이익, 성과, 실적으로 판단되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위계 구조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진다. 괴롭힘의 구체적 행위들 각각은 그 유형이나 정도가 다르고 누가 어떻게 개입해 이루어졌는지도 다르지만, 노동자의 존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기업에서 괴롭힘은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발생될 수 있는 문제다.

직장 내 괴롭힘은 폭력의 문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도입하며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명명했다. 이렇게 개념화하면서 괴롭힘을 개별적이고 우발적이거나 사소한 문제가 아닌 폭력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괴롭히는 가해자와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 개인의 탓이 아니라 직장이라는 권력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문제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이를 말하고 대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단지 관련 법제도가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괴롭힘이 발생되고 용인되는 문제의 근본은 직장이 권력이 불평등하고 권한이 남용될 수 있는 위계조직이라는 점에 있다. 직장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의 노동을 이윤을 위한 도구로 삼는 기업구조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이런 토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기업문화가 변화하길 기대하며 기업의 정화노력에 기대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이번에 마련된 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때 사용자에게 신고하도록 되어 있고, 그에 따라 사용자는 조사를 실시하고 피해노동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사용자가 이와 관련하여 불리한 처우를 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는다. 가해자가 사용자일 경우에는 무용지물이다. 기업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사용자의 선의에만 기대는 것으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길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괴롭힘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과 역량을 갖출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직장은 불평등한 권력구조다. 그러므로 권력이 없는 쪽에서 기댈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고, 권력을 가진 쪽을 규제하는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방을 위한 사전교육, 상담창구 등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를 기업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영세할수록 문제는 더 심각하지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은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감당하지 않도록, 지원과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연결망을 만들어야 한다. 공적인 창구와 절차로서 정부와 지자체가 직장 내 괴롭힘 상담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제기되면 기업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공공이 개입하여 제대로 근로감독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 누구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기업을 견인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직장갑질을 제보한 노동자가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되는 존재가 아닌 정당하게 인정받으며 일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덧붙인 말이 떠오른다. 일터에서 존엄을 세워가기 위해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한 이들이 있다. 말하기와 듣기를 함께 하면서 부당함에 대한 감각과 대응 역량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괴롭힘을 개인의 탓으로 전가해왔던 화살의 방향을 직장이라는 불평등한 권력구조로 향하게 하는 것,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이후 다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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