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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복구하자 북한군이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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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복구하자 북한군이 뒤로 물러났다

기관사 박흥수의 '평화를 만드는 철도' 이야기

길이 9288㎞. 지나는 역만 850개.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 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잇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세계 최장거리 철도다. 논스톱으로 이들 거리를 전부 지나는 데만 7박 8일이 소요된다. 한국 철도 최장 노선인 경부선의 길이는 441㎞.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규모다. 오랜 시간 우리 역사와도 씨줄과 날줄을 엮은 지역을 지나는 이 긴 철로는 여행자에게는 설국의 낭만과 대륙의 웅장한 자연을 꿈꾸게 하는 곳으로, 삶을 매었던 현지인과 역사의 굴레에 얽힌 이들에게는 생활의 찌든 때가 깊이 박힌 공간이다.

한국에서 누구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잘 아는 이가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철도기관사)이다. 여러 차례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몸을 실은 저자는 <프레시안>에 오랜 기간 철도 관련 글을 연재했다. 이 글들은 <철도의 눈물>,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이상 후마니타스) 등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또 한 권의 책은 <시베리아 시간여행>(후마니타스)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지나는 도시 곳곳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와 지역에 얽힌 역사, 그리고 철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시베리아를 직접 지나간 저자가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다. (☞관련기사: 서울발 베를린행 기차는 평양역에서 승객을 태우고...)

지난 9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은평구의 니은서점에서 박흥수 연구위원이 독자들과 시베리아 철도 여행담을 나누는 작은 북토크 모임이 열렸다. 니은서점은 <인생극장>,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세상 물정의 사회학> 등을 펴낸 저자인 노명우 아주대 교수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연 동네서점이다. 꾸준히 저자와 독자의 만남이 이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 박흥수 연구위원이 <시베리아 시간여행> 북토크를 9일 저녁 니은서점에서 진행했다. ⓒ프레시안(이대희)

우리 역사가 어린 블라디보스토크

"손기정 선생께서 1936년 이 노선을 따라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셔서 금메달을 획득하셨어요. 금메달을 받은 다음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악수하시기도 했죠."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열차 노선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시작됐다. 경성에서 출발한 열차는 만주를 지나,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베를린으로 연결됐다. 남북 분단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서울역이 대륙과 연결되었으리라.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우리 역사에 얼마나 가까운 흔적을 남겼는가를 설명하는 데 손기정 옹의 사례만큼 직접적으로 와 닿는 이야기는 없어 보였다. 곧바로 청중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무대는 시베리아 주요 거점 도시로 이동했다. 첫 무대는 극동의 관문,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종점인 블라디보스토크다. <해조신문(海潮新聞)> 이야기가 나왔다. 대한제국 말기 이 도시에서 발행된 한글 신문이다. 외국에서 발행된 최초의 한글 일간지다.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황성신문(皇城新聞)>에서 물러난 장지연이 이 신문사에 초빙됐다. 일본은 <해조신문>의 한반도 유입을 막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 인근 '개척리'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동네 이름이 개척리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많은 한인이 정착한 곳입니다. 이곳은 러시아어를 할 줄 몰라도 한국어만 쓸 줄 알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하자면 당시 한인의 'LA타운'이었달까요. 철도 노동자로 밥벌이를 하러 온 분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블라디보스토크는 최재형, 이동휘, 홍범도, 김 알렉산드라, 김 아파나시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운동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 운동한 사람 중에 이 도시를 한 번도 들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영상에서 여러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지나갔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 제국군과 싸운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모습이 나왔다. "저기 저 기다란 총집 보이시죠? 홍범도 장군이 레닌에게 받은 권총집입니다." '철도 덕후'이자 '역사 덕후'인 박흥수 연구위원의 쌓인 내공이 이런 디테일한 곳에서 빛을 발한다. 작은 이야기가 큰 의미와 더해지자 청중의 집중도가 달라졌다.

'세울(서울) 스카야'라는 지명이 등장했다. 1911년 러시아 당국이 개척리 한인을 쫓아내자, 쫓겨난 이들이 새로 만든 '신한촌'의 러시아식 지명이다. 일제 강점기 한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이동휘 선생의 생가가 이곳에 있다.

"구글 지도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보면 아직도 세울 스카야가 나와요. 그런데 실제로 와 보면 이곳에 한인이 살았다는 흔적을 찾긴 어렵죠. 정부가 예전에 한식 세계화를 한다고 뉴욕 한복판에 떡볶이집 같은 걸 만들곤 했는데, 이런 역사적 장소를 보존하는 게 바로 정부가 할 일 아닐까요."

하바롭스크에 한글 거리가?

시베리아에서 곧바로 연상되는 이미지는 겨울이다. 사진에 뜬 하바롭스크 역의 아침 8시 풍경은 신비했다. 한밤처럼 컴컴했다. 사진을 찍은 날 기온이 영화 28도로 떨어졌단다. 청중은 박 연구위원이 연이어 보여주는 이색적 사진에서 대륙의 광활함과 자연의 힘을 맛보고 있었다. 다시 우리의 잊힌 역사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바롭스크의 주인공은 김 알렉산드라다.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다. 레닌과 함께 소비에트 혁명에 깊숙이 가담했던 그녀는 백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한 후, 아무르 강(헤이룽장)에 버려졌다. 하바롭스크는 아무르 강을 낀 극동의 가장 큰 도시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북한 인민군의 모체가 88저격여단인데요, 김일성이 이 부대 소속이었습니다. 이 부대는 한인을 비롯해 여러 민족이 섞인 혼성 부대였는데, 이 부대가 하바롭스크 인근에서 활동할 때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하죠."

하바롭스크 시립묘지가 소개됐다. 도시의 공공 묘지를 굳이 소개할 만한가. 박흥수 연구위원이 다시 우리 역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후, 1928년부터 수많은 극동의 한인을 카자흐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 시켰다. 강제 이주 열차의 출발점이 바로 하바롭스크였다. 이 과정에서 한인 사회의 지도자 상당수는 총살당해 이곳 시립묘지에 묻혔다. 이들 상당수는 소비에트 혁명에 가담한 이들이었다. 묘지에는 러시아어로 표기된 한인의 이름이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하바롭스크는 스탈린의 숙청 작업에 한인 공동체가 희생양이 된 역사가 어린 곳인 셈이다.

"하바롭스크에 '김유천 장군 거리'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적백내전 과정에서 이 도시를 지킨 한인이죠.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리입니다. 제가 하바롭스크에서 택시를 타니 운전수가 '나 김유천 안다'고 하더군요. 하바롭스크 중앙시장에서는 김치도 팝니다. 한인들이 이 이역만리에서도 고향의 정서를 이어갔음을 알 수 있죠."

철도 연결이 가져올 평화

횡단 열차는 북한 사람도 싣고 달렸다. 북한에서 3년간 외화벌이 차 이르쿠츠크로 가는 이들과 박 연구위원이 횡단열차 6인실 침대칸에서 만난 이야기가 이어졌다. 박 연구위원은 그들에게 선물 받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로어회화' 책의 실물도 공개했다.

"사진을 보세요. 김밥, 전... 이분들이 기차에서 드시려고 꺼낸 도시락입니다. 생각보다 푸짐하죠? 옛날 독일로 건너간 광부,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생각나더군요. 그분들이 아마 부자는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역만리로 돈 벌러 가는 그들도 가족과 헤어지기 전에 불고기 한 판은 먹고 가지 않았겠어요? 그 생각을 하니, 북한 노동자들이 펼친 저 도시락이 얼마나 귀한 건지 알겠더라고요. 맛있게 먹었죠."

이야기 주제는 자연스럽게 남북 관계로 옮아갔다. 철도 관련 현업 종사자답게, 철도가 남북을 잇는다면 펼쳐질 미래를 상상해보자고 박 연구위원은 제안했다.

"남북 철도가 이어지면, 유라시아의 거대한 '철의 네트워크'가 한반도에까지 이어집니다.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가 베이징,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모스크바, 베를린, 파리로까지 이어집니다. 물류의 개념이 달라질 테고, 우리 여행의 개념이 달라질 테고, 상상의 넓이가 달라질 겁니다. 친구들과 술김에 '내일 기차 타고 베이징에나 놀러갔다 오자'고 하는 이야기가 일상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박 연구위원은 철도가 가져올 평화 효과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2000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한국 언론사 사장단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 남북은 경의선 연결 논의를 진지하게 이어갔다. 김 위원장은 경의선 복구 작업을 위해 휴전선 인근의 정예 2개 사단 3만5000여 명 병력을 후방으로 물렸다. 한국군도 독일에서 지뢰 제거 차량을 구입해 인근 지뢰를 제거했다.

"철도 연결 논의만으로 평화가 찾아온 겁니다. 양측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군대를 철수시키고, 지뢰를 제거하고, 물류 네트워크를 잇기로 했습니다. 우리 철도가 시베리아와 연결된다면, 평화의 꿈이 이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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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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