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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패싱'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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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패싱' 경계하자

투자매력 상실, 무시해도 좋은 외교상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존재가치가 나날이 희미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 날로 흐릿해지고, 외교적으로는 최근 일본과 러시아간 꽁치 밀약에서 볼 수 있듯 고려변수가 못되고, 군사적으론 미국의 반대로 남북냉전을 더 이상 풀지 못하고 막히고...
이러다가 비쩍 말라죽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의 탄식이다.
이런 탄식음은 사회 곳곳에서 들린다. 특히 국제무대를 상대하는 기업인들이나 금융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축소되는 한국의 초라한 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매력이 사라진 한국경제**

“최근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금융시장을 돌아보니, 싱가포르는 실물경제가 무너지면서 이미 위기국면에 진입한 상태이고, 홍콩 역시 싱가포르 뒤를 이어 같은 위기국면에 들어서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 또한 외국투자가들 사이에서 더 이상 포트폴리오(분산투자)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 투자할 곳은 기껏 IT(정보통신)부문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IT산업이 헤매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당장 한국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일이야 없겠으나 더 이상 돈이 들어오기를 기대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더 이상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등 대신에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중국대륙뿐이다.”
9.11테러 발발후 달라진 국제금융계 분위기를 현장점검하기 위해 며칠 전 홍콩, 싱가포르 등을 돌아본 맹수호 한국통신 자금국장의 전언이다.

김영호 경북대교수는 이같은 최근의 현상을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 명명했다. 시쳇말로 풀면 ‘한국 왕따’ 현상이다.
‘왕따’란 후유증이 대단히 심각한 소외현상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보아도 후유증이 심각하기란 마찬가지다.

***중국의 거대한 그림자에 파묻히는 한국이라는 나라**

우선 크게 우려되는 게 경제부문에서의 ‘코리아 패싱’이다.
홍콩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스 아시아는 얼마 전 창간 5주년을 기념해 홍콩을 비롯해 전세계 유력 금융기관의 투자책임자 3백69명을 대상으로 ‘아시아 2010 여론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했다.
“향후 5년간 아시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국가는 어디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71.61%가 중국을 꼽았다. 그 다음은 싱가포르(5.86%), 홍콩(3.91%), 일본(3.91%), 인도(3.58%) 순이었다. 한국은 태국, 말레이시아와 함께 각각 2.28%에 그쳤다. 3백69명의 응답자 가운데 불과 3명만이 한국투자 의사를 밝힌 셈이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이미 올 상반기에 외국인 투자가들의 아시아 투자분 가운데 70%를 중국이 독식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과 일치하는 것으로, ‘중국의 싹쓸이’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해 5년이상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은 한때 동아시아 경제개발의 모델이었다. 말레이시아 등이 "한국을 보라”는 이른바 ‘룩 이스트(Look East)' 정책을 추진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97년 아시아 외환.금융위기에 휘말리면서 그 무렵 외신의 표현을 빌면 ‘아시아의 용’에서 ‘아시아의 지렁이’로 전락했다.
99년부터 잠시 사정이 호전되는 듯 싶었다. 외환위기후 헐값이 된 자산을 매입하려는 외국자본들이 몰려들고, IT산업 신드럼으로 새 지평이 열리는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티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만 최대재벌인 포머사의 왕영경(王永慶)회장이 지난달말 한국을 방문했다. 현대그룹, 한빛은행 등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왕회장에게 투자를 희망했다. 왕회장은 그러나 귀국후 대만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경제에 병목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에 투자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외교, 군사적인 코리아 패싱**

경제적 위상이 약해지면, 이에 비례해 외교적 위상도 약화되는 법이다. 외교무대는 돈이 말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일본과 러시아가 쿠릴열도에서 한국어선의 꽁치조업을 금지시키기로 합의함에 따라 국내가 들썩였다. 돈의 힘으로 문제를 풀려 한 일본의 야비함과, 돈의 힘에 넘어간 러시아의 배신을 규탄했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꽁치 파문의 본질은 외교적인 코리아 패싱이다.

외교, 군사적인 코리아 패싱은 올 들어 여러 번 목격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 외교무대의 관심지역중 하나였다. 남북 지도자가 정상회담을 하는 등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만들려는 남북의 주도적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 보수성 짙은 부시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돌변, 시계가 멈춰섰다.
부시대통령은 방미한 김대중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등 남북 접근에 강한 제동을 걸었다. 아쉬운 대목은 이때 남북이 보인 태도다. 이럴수록 남북은 한층 관계개선에 적극성을 보여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외교,군사적 코리아 패싱을 수용한 모양새이다.

이밖에 이달말로 예정된 우리나라의 4조3천억원 규모의 차세대전투기 선정 사업을 둘러싸고, 유럽의 신종 전투기 대신에 곧 생산을 중단할 예정인 낡은 기종 F-15K를 고가로 사라는 미국 정부의 고압적 압력 등 코리아 패싱은 여러 군데에서 목격되고 있다.

***코리아 패싱도 극복가능한 과제**

코리아 패싱은 상당부분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상당부분은 주체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도 있는 게 코리아 패싱이다.

한 외국계 대형펀드 매니저의 조언이다.
“한국 전체주식의 30%이상, 우량기업주식의 50%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투자가들은 싫든좋든 한국과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가 된 상태이다. 한국이 잘돼야 많은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요즘 외국인투자가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불안감이다. 투자가 입장에서 보면 김대중대통령은 믿을만했다. 그런대로 약속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도 미지수이고, 지금 대통령후보로 거명되는 인사들 면면을 봐도 안개속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과연 이들 가운데 누가 집권을 해 어떤 정책을 펼지를 도통 감 잡을 수 없다.
이런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는 한, 한국은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외교, 군사적 코리아 패싱도 노력하기에 따라 상당부분 극복가능한 과제이다.
지난 8일 UN에서 주목할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있는 시리아가 유엔총회의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당선된 것이다. 미국은 이날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사실상 시리아의 입성을 묵인했다.
이같은 변화는 9.11테러 발발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해 비상임이사국 선거에 수단이 출마했다. 수단은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명한 국가. 미국은 수단을 막기 위해 모리셔스를 대항마로 내세웠고, 결국 수단은 비상임이사국이 될 수 없었다.

북한도 지금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된 상태이다. 미국의 부시정부는 이를 문제삼아 더 이상의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9.11사태후 급변조짐을 보이고 있는 외교상황을 남북이 현명하게 활용할 경우 외교,군사적 코리아 패싱 현상을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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