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000게이트’라는 단어가 우리 귀에 익숙해졌e다. 그럴 때마다 전환사채(CB)를 홍콩에서 조달했느니 홍콩에서 돈세탁 과정을 거쳤느니 하는 식으로 ‘홍콩’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다.
구체적으로 최근 정치문제화되고 있는 ‘이용호게이트’때 홍콩에서 발행한 CB가 뇌물수단으로 악용됐으며, 지난해 11월 벤처업계를 뒤흔들었던 '진승현게이트’때에도 홍콩의 리젠트퍼시픽그룹이 깊게 연루됐다. 이밖에 많은 신생기업들이 홍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세탁하는 일이 적잖이 목격되고 있다.
홍콩은 이처럼 최근 아시아의 최대 돈세탁 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UN은 홍콩을 중심축으로 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해마다 세탁되고 있는 검은 돈의 규모를 연간 1천억~2천억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1년예산보다 많은 돈이 홍콩 등지에서 세탁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홍콩 현지의 금융당국이나 치안당국은 이보다 세탁자금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 치안당국은 최근 재무관련 전문잡지인 CFO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홍콩경찰의 주된 관찰대상인 마약자금을 제외하더라도 매주 홍콩의 도박장에서 합법, 비합법으로 오가는 도박자금만 40억홍콩달러(우리돈 6천6백억원)에 달한다”며 “이들 대부분의 돈은 홍콩 주요금융기관에서 세탁되고 있다”고 밝혔다. 마약자금 등 검은 돈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금을 제외한 도박자금 세탁규모만 연간 2백조원이 넘는다는 충격적 증언이다.
홍콩이 이처럼 아시아 돈세탁의 천국이 된 이유는 이곳에 자그마치 47만4천여개의 기업이 들어서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이 홍콩을 선호하는 이유는 역외금융센터법에 의해 금융거래의 비밀이 철저히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금융거래 정보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만 요구하고 있으며, 주주 구성이나 소유에 대해서도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돈세탁 혐의가 가는 금융거래가 아무리 많이 포착돼도 실제 추적이 쉽지 않은 게 홍콩의 현실이다. 홍콩 치안당국에 따르면, 지난 97년 이래 지금까지 은행들은 감독당국에 2만건 이상에 달하는 의심스런 거래를 신고해왔다. 그러나 인력부족으로 실제 조사가 이뤄진 것은 2천6백건에 불과했고, 61건만이 입건돼 36건만이 법적 심판을 받았을 뿐이다. 거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형편이다. 국제금융계에서 홍콩을 말레이시아의 캐이맨 제도 등 전통적 텍스 헤이븐(조세회피지)을 능가하는 ‘돈세탁 센터’로 표현하는 것도 이해가는 일이다.
홍콩이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시아의 돈세탁 센터로 급부상한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홍콩당국의 이해관계와 깊게 맞물려 있다.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되면서 홍콩당국이 가장 우려한 대목중 하나는 아시아 금융센터의 위상을 싱가포르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홍콩 반환을 계기로 자국을 아시아의 금융센터로 키운다는 야심을 공공연히 천명했었다. 홍콩은 이에 검은 돈이 자유로이 들락거릴 수 있는 구멍을 내놓았고, 그 결과 한국 등 아시아 검은 돈들의 세탁장소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가파른 성장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대륙은 최근 세계경제의 극심한 침체에도 불구하고 7%대의 고속성장을 할 정도로 불황을 타지 않는 세계최대의 성장지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런 성장세는 중국의 높은 내수시장 의존도와 외국인투자가들의 ‘중국 신드럼’ 등을 고려할 때,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제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문제는 과거 우리나라가 개발연대때 경험했듯, 초고속성장에 따른 중국의 부패문제가 심각하며 이들 관료들과의 ‘꽌시(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검은 돈의 상당부분이 주로 홍콩에서 세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밖에 97년 아시아 외환위기후 세계의 투기성 단기자금이 대거 아시아로 몰려들면서 이들이 홍콩을 근거지로 기업사냥과 주가조작 작전을 펴는 대목도 홍콩의 번영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홍콩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국내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우리 귀에 들리는 반갑지 않은 단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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