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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공황 다시 오나

돈 아무리 풀어도 밑빠진 독

***‘퍼팩트 스톰’의 도래**

9.11사태로 가뜩이나 가물거리던 세계경제의 하늘에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9.11사태 후 처음 개장한 17일부터 21일까지 닷새동안 미국증시는 내리 곤두박질쳤다. 이 기간중 미국증시에서만 허공으로 사라진 시가 총액이 1조3천8백억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1천8백조원이 넘는다. 전세계적으로는 3조달러나 감소했다. 9.11사태 이전 시가 총액 30조달러의 10%, 우리 돈으로 3천8백조원이 날아간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2일 “이번 한 주간 뉴욕증시의 주가하락은 대공황 절정기였던 33년이래 근 70년동안 주간 낙폭으로는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AG 에드워드스의 수석 시장전략가 알프레드 골드만은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시장은 패닉(공황)상태”라며 “투자가들은 불확실성에 염증을 내고 있다”고 월가의 신경질적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의 한 경제전문가는 미 경영전문지 포브스와 만난 자리에서 최근의 경제상황을 할리우드 영화 ‘퍼팩트 스톰(Perfect Storm)’에 비유, “먹구름이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올 것인지, 아니면 금명간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쬘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며 작금의 ‘불확실성’을 탄식하기도 했다.

과연 앞으로 폭풍이 몰아칠지, 햇살이 내리쬘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도 견해가 양분돼 있다. 월가를 위시한 전세계의 주가가 급락하는 와중에도 아직까지는 증시에서 ‘팔자’ 세력과 ‘사자’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자'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앞으로 경제전망을 좋게 보는 이들도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사태 후 햇살 대신 폭풍이 몰아칠 확률이 한층 높아졌다는 관측이 빠른 속도로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게 객관적 현실이다.

***금리로 보면 지금이 62년 쿠바사태때보다 위기**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당황한 움직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연준은 지난 17일 기준금리(은행간 거래금리)를 3.5%에서 3.0%로 크게 낮췄다. 그러나 J.P.모건 체이스 등 월가의 큰 손들은 연준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말께 또다시 금리를 2.0~2.5% 수준까지 낮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지난 62년 10월의 2.75%가 최저금리였다. 당시는 쿠바 미사일 위기로 전세계가 핵전쟁 발발의 공포에 떨던 시기였다. 금리수준만 갖고 본다면 요즘 미국이 당면한 위기상황이 쿠바위기 때보다도 심각하다 볼 수도 있다.

월가에서는 연준 금리가 2%대로 급락할 경우 그동안 금리를 통해 시장을 조절해온 연준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로 빠져들지 않을까 내심 크게 우려하고 있다. 과거에 이런 상황이 한번 있었다. 지난 29년 세계대공황 때가 그랬다. 대공황이 발발하자 연준은 금리인하를 통해 무한대로 돈을 풀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도리어 악화됐다. 국내외 금융계나 학계 일각에서 1929년 세계 대공황과 지금을 비교하는 불길한 시각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해가는 일이다.

***‘달러화 해일’이 지구촌을 뒤덮기 시작했다**

9.11사태 후 미 연준을 필두로 유럽중앙은행(ECB), 캐나다, 영국, 일본, 독일 등 전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최근 잇따라 금리를 낮추고 있다. 한국은행도 19일 미 연준 뒤를 따라 금리를 0.5%포인트 낮추었다.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전세계가 무한대로 돈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98년 9월 러시아 모라토리움(지불유예)과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롱텀캐피탈매지니먼트(LTCM) 파산에 의한 세계 금융공황 발발 위기때 각국 중앙은행들이 취했던 유동성 긴급처방의 재판(再版)이다.

미 연준은 지금 9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98년 위기때 몇차례 기습적으로 낮춘 연준의 최저금리는 4.75%였다. 연준은 그러나 올해 들어서만 여덟차례에 걸쳐 연초 6.5%였던 금리를 3.0%로 절반 이상 낮추었다. 전례없는 일이다.

금리인하란 유동성 증대, 즉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이나 개인이 돈을 빌어쓰는 데 부담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은 금리를 내리는 데 멈추지 않고, 중앙은행과 정부가 직접 나서 돈을 풀기 시작했다. 9.11사태 직후 뉴욕 증시가 개장할 때까지 뉴욕 연준은 2천억달러이상을 시장에 풀었다. 여기에다가 부시정부는 1조3천5백억달러 규모의 천문학적 세금을 환불하기 시작했다. 의회 동의를 받아 4백억달러의 전쟁자금도 조달해 풀기 시작했고 전쟁채권도 발행할 예정이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발권국가답게 ‘돈의 힘’을 빌어 미국경제의 붕괴를 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시장관계자는 “달러화 해일이 지구촌을 뒤덮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관건은 유동성이다”**

“주변 환경이 언제나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에 지금 위기를 과거 위기와 비교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지난 98년 시장 위기때와 마찬가지로 ‘유동성’이다.”

헤지펀드 자문사로 유명한 트레몬트 자문사(Tremont Advisers)의 배리 콜빈(Barry Colvin)이 17일 뉴욕 시장 개장 직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헤지펀드 전문뉴스 사이트 ‘헤지월드’와 행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시각은 헤지펀드뿐 아니라 월가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하다. 이들은 9.11 테러 발생 직후 한국 등 금융후진국 기관투자가 및 일반 투자가들이 심리적 패닉(공황) 상태에 빠져 투매를 할 때에도 냉정하게 사태 추이를 지켜봤다. 오히려 상당수 헤지펀드나 월가의 기관투자가들은 이번 위기를 ‘단기적 호재’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비관적이다. 아직 주가가 고평가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단기적으로는 주식을 살 때라고 본다.”캘리포니아에 소재한 대형 헤지펀드인 퍼스트 쿼드랜트(First Quardrant)의 매니저 롭 애모트(Rob Amott)가 <헤지월드>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들이 단기적으로 주식 매수를 선택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넘실대는 ‘풍요로운 유동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은 경기후퇴 국면에 진입**

문제는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무한정 풀어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전문여론조사기관 ‘블루칩 이코노믹 인디케이터(BEI)’는 지난 19일 월가의 44개 주요 경제조사기관을 대상으로 긴급조사했다. 그 결과는 응답자의 82%가 미국경제가 본격적 경기후퇴(recession)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전망한 3.4분기(7~9월)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마이너스 0.5%, 4.4분기(10~12월)는 마이너스 0.7%로 나왔다. 이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점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미국경제를 지탱해온 개인소비의 격감. 이들은 3.4분기에 소비가 전기대비 0.8% 증가에 그치고, 4.4분기에는 마이너스 1%로 반전될 것으로 내다봤다. 자그만한 자극에도 민감한 돈이 안전지대를 찾아 요동치는 것도 이해가는 일이다.

9.11사태 이전부터 미국의 돈 흐름은 심상치 않았다.
미국투자신탁협회(ICI)의 지난 8월30일 발표에 따르면, 7월중 미국주식예탁 잔고는 3억5천8백99억달러를 기록해 연초대비 10%가 줄어들었다. 미국 조사회사 트림터브스의 추계에 따르면, 8월에도 유출은 계속돼 72억달러가 새로 빠져나갔다.

반면에 확정금리형 상품에는 돈이 계속 몰려들고 있다. 7월에 머니마켓펀드(MMF)에는 1백20억달러가 순유입돼 2조6백96억달러를 잔고를 기록, 지난해말 대비 12% 증가했다. 이는 미국사상 최고액수이다. 미 연준에 따르면 유동성이 높은 미국은행의 저축예금 잔고도 5월말에 최초로 2조달러를 돌파한 이래 7월말에는 2조8백70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말 대비 11% 늘어난 수치이다.

지난해초부터 우리나라에서 목격했듯, 미국에서도 돈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자금의 단기유동화’ 현상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울고 싶은 데 뺨 때리는 꼴로 9.11사태가 발발하자 ‘증시 엑소더스(탈출)’에 가속도가 붙었다.

***‘비쩍 말라 죽어가는 병’**

미국의 USA투데이는 9.11사태 발발 직전에 “미국이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는 요지의 경제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요지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10년이상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뒤를 지금 미국이 밟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90년대 일본이 부동산 및 주가 버블(거품) 파열후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듯, 미국 또한 정보통신(IT) 버블이 꺼지면서 미 연준이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경기가 회복되지 못하는 장기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비쩍 말라죽는 병’에 비유할 수 있다.

20세기에 인류는 호되게 이 병에 한번 걸린 적이 있다. 지난 29년 대공황때 일이다. 주가 대폭락에 놀란 미 연준은 금리를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만큼 낮추고 돈을 무한대로 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사람들은 투자나 소비를 하지 않고 채권. 주식. 부동산을 앞다퉈 판 뒤 돈을 자신의 집에 숨겼다. 언젠가는 금리가 오르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른바 ‘현금 퇴장’이다. 대공황 발발로 미연준의 통화정책 기능은 마비됐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는 이를 ‘유동성 함정’이라 명명하고, 통화정책 대신 재정정책으로 문제를 풀었다.

20세기말에는 일본이 이 몹쓸 병에 걸려 10년이상 헤매고 있다. 일본은 90년대 들어 주가와 땅값의 거품이 꺼지면서 헤이세이(平成) 장기불황에 빠져들자 95년부터 사실상 제로(0)금리 수준의 초저금리 정책을 폈다. 그러나 경기는 회복되지 않았고 최근 들어서는 내리 3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21세기초 지금 다시 미국을 위시한 세계경제는 유동성 함정이라는 최악의 바이러스에 노출됐다. 자칫 대응을 잘못할 경우 세계경제는 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길고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도 ‘축소 재생산’의 위기**

유동성 함정의 가장 큰 아이러니이자 무서운 점은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나름대로는 모두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의 거시경제전문가인 이광주 박사는 “일본의 경우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차입에 의한 투자를 줄이고, 가계는 고용불안에 대응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왔다”며 “이들의 대응은 옳은 것이었으나 그 결과 일본경제는 만성적 유동성 함정에 빠져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그는 “풍부한 유동성은 앞으로 금명간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경제주체들의 믿음이 뒷받침될 때에만 목적한 경기부양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이런 믿음이 결여됐을 때에는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힘든 법이며 지금 세계경제가 이런 위기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박사는 “특히 국내의 경우 IMF사태를 겪으면서 전통적 차입주체인 기업들의 건전경영, 무차입경영 선호현상이 뚜렷해져 자금수요가 격감하고 있는 점과 은행들의 가계금융 선호현상 등이 어우려져 확대재생산이 아닌 축소재생산으로 경제가 쪼그라들 위험성이 있다”고 긴급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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