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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화인가, 기울어진 거래인가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탄력근로제와 ILO 협약 비준, 거래의 대차대조표

탄력근로제와 ILO 협약 비준. 기해년(己亥年) 새해에 가장 먼저 쟁점이 될 노동정책 2가지이다. 이 2가지 의제 사이에 논리적 연관관계는 없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 때문에 엮여버렸다. 우선 문재인 정부는 이 2가지 의제를 모두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서 먼저 논의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게다가 2가지 의제 모두 경사노위 합의가 이뤄질 경우 2월 국회에서 다뤄지게 된다. 물론 자본가들이 원하는 탄력근로제의 경우 경사노위 합의가 불발되어도 국회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건 전혀 논리적 연관이 없는 2가지 의제가 같은 기구에서 비슷한 시기에 논의되다 보니 ‘거래’ 내지 ‘빅딜’ 설이 나오고 있다.

별개사안인데 같은 테이블에서 논의해야 되니 빅딜?

탄력근로제는 자본가들 요구이고 ILO 협약 비준은 노동자들 요구이니 이걸 맞바꾸잔 이야기일까? 실제로 ‘거래’ 내지 ‘빅딜’ 설에 대해 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7일, MBC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ILO 협약비준과 탄력근로제를 빅딜 하는 방안’ 관련 진행자와 함께 이렇게 문답을 진행한 바 있다.

진행자(심인보 기자) : 제가 좀 자세히 보니까요. ILO 협약비준하면서 단협기간도 연장한다, 노조 측에 불리한 얘기죠. 이런 얘기를 또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ILO 협약비준하고 탄력근로제가 빅딜의 대상이 아니라 ILO 협약비준은 따로 주고받을 대상이 있는 거고 탄력근로제는 별개 얘기가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들던데요.
문성현 : 탄력근로제도 서로 주고받을 내용이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기간 연장 문제하고 건강권이나 인권보장 문제 이런 게 있는 거고, ILO 내에도 노조의 요구와 또 사용자의 그 문제제기, 이런 게 서로 있다고 보여집니다 … 별개사안인데 하다 보면 타임테이블상 같이 올라와 있기 때문에 어차피 서로 같은 테이블 위에서 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겠습니다.

아하~! 문성현 위원장이 말하는 ‘빅딜’은 탄력근로제와 ILO 협약비준을 맞바꾸잔 얘기가 아니다. 탄력근로제에서 노사가 서로 맞바꿀 것이 있고, ILO 협약 문제에서도 주고받을 게 있다는 것. 그런데 이게 묘하게 같은 시기에 같은 기구(경사노위와 2월 국회)에서 논의되기 때문에 둘 사이에 빅딜처럼 보일 뿐이다.

탄력근로제, 주고받을 게 뭐가 있을까?

그런데 좀 이상하다. 사용자들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는 노동자들이 도입 자체를 반대했던 제도이다. 다시 말해 노동계의 요구가 있다면 그건 탄력근로제 폐지다. 그렇다면 여기서 거래란 불가능한 얘기이다.

탄력근로제 폐지 말고 숨겨진 노동계의 요구가 따로 있다는 말일까? 앞에 인용한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인터뷰 내용을 보자면 사용자들의 단위기간 확대와 맞바꿀 노동계의 요구로 "건강권이나 인권보장 문제"를 얘기한다. 이건 난센스, 또는 사기에 불과하다. 노동계가 원하지도 않는 가상의 요구를 설정해놓고 단위기간 확대라는 사용자 요구와 맞바꾸기를 한다니?


그럼 여기서 내친 김에 탄력근로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살펴보기로 하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외에 다른 쟁점은 없는 걸까? 지난해 12월 7일, 사용자단체인 경총은 탄력근로제와 관련해 자본가 요구를 정리해 국회에 전달한 바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각각 3개월, 1년으로 확대하는 것 뿐 아니라 △ 근로자대표 서면합의를 해당 근로자대표 협의로 변경 △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 도입 시에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으로 보지 않을 것 등이 명시되어 있다. 즉, 단위기간 확대만이 아니라 탄력근로제 도입절차도 ‘개악’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도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지난 1월 3일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뿐 아니라 노동자 개인의 동의로 가능하게 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도입절차 간소화 방안도 다뤄야 한다."


탄력근로제 도입절차만 보자면 문재인 정부 입장이 경총보다 더 막나가는 상황이다. 노동자 개인 동의만 있으면 도입이 가능하도록 하자니? 이건 노동조합을 완전히 무력화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런 얘기를 어떻게 노동부장관이 꺼낼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작년 12월 26일 경사노위 논의에서 경총은 기존 입장을 변경해 "개별근로자 동의 + 해당 근로자대표 협의"만 있으면 도입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자본가들로 하여금 더 막나가도록 부추기는 형국, 다시 말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ILO 협약비준과 사용자 소원수리를 맞바꾸자고?

이번에는 ILO 협약 비준 문제를 다뤄보도록 하자. 이번에도 좀 이상하다. ILO 협약 내용 중에 특별히 자본가들이 강조하거나 이것만은 해달라고 요구할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용이 있다면 그냥 간단히 ILO 협약을 비준하면 된다. 그렇다면 대체 여기선 뭘 주고받는다는 걸까? 이번엔 <신동아> 12월호에 실린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대신 이들(경영계)이 내거는 조건이 있어요. ILO 협약 비준에 직접 포함된 내용은 아니지만, 단체협약기간을 좀 늘려달라는 거죠. 노조법상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최장 2년인데, 이 기간이 노조 집행부 교체 시기와 맞물려 애로사항이 많다는 거예요. 또 하나, 노동3권에 따라 정당한 파업을 하는 건 좋지만, 공장 점거는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예요."

이번에도 ILO 협약 안에서 거래할 내용이 있는 게 아니다. 협약 비준을 추진하는 대신 자본가들 소원수리를 해달라는 거다. 문성현 위원장도 이게 ILO 협약 비준에 직접 포함된 내용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사용자 소원수리도 몇 개는 해줘야 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가능하고, 그래야 국회통과도 용이하지 않겠냐는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가들의 요구들은 정부가 비준하려고 하는 ILO 협약 제87호, 98호가 규정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노동조합의 명시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장하려는 것은 노사 간 교섭과 합의를 중시하는 ILO의 기본 정신에 위배된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매년 한국 정부에게 노동조합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형사처벌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금도 대법원 판례로 전면적·배타적 점거파업이 금지되는데 일체의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는 추가 입법은 당연히 ILO 결사의자유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의 집단행동 일체를 사업장 점거로 몰아붙이려는 것이니까 말이다.

순진하게도 정부는 위 2가지의 자본가 요구를 들어주면 ILO 협약 비준에 협조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문재인 정부의 착각에 불과하다. 자본의 요구는 절대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며 대체인력 투입 확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삭제 등 수십 가지 목록이 추가될 것이다.

ⓒ연합뉴스

최저임금 문제는 사회적 대화에서 배제

문재인 정부는 2월 국회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바꾸는 입법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탄력근로제와 ILO 협약 문제는 경사노위 논의를 거치지만, 최저임금 문제는 경사노위 논의는커녕 최저임금위원회 논의조차 거치지 않고 정부가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사실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문제에서도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무시했고 여당 주도로 국회에서 일방통행을 했다. 연말에 이뤄진 주휴시간·수당 관련 시행령 개정 역시 “기업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사회적 대화는 물론이고 노동조합 의견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시행령을 수정해 버렸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변경은 위 그림처럼 ‘구간설정 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최저임금 위원회를 이원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 위원회’를 두어 매년 최저임금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미리 확정한 뒤 최저임금 결정위원회에 넘긴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방식은 박근혜 정권에서 진행된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빼다 박은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최저임금 인상률 = 협약임금 인상률 + 소득분배 개선치 + 협상조정분) 이런 식으로 모종의 공식을 적용하며 사실상 최저임금 위원회의 자율적 논의를 무력화했다. 위원회 안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저 공식을 적용하며 노동계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해온 것.

그런데 이런 식의 결정구조를 뒤흔든 것이 바로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이었다. “최저임금이 최소한 1만 원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강하게 청년·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었고, 결국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이 슬로건을 공약으로 내걸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보니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은 매우 거슬리는 약속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이제 도로 박근혜 정부 시절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게다가 다시는 최저임금 1만 원 운동 같은 것이 이 결정구조를 뒤흔들지 못하도록, 아예 구간설정 위원회를 법에 명시하겠다는 발상까지 한 것이다.

이런 발상이야말로 군사독재 시절 임금인상률을 제한하기 위해 시도했던 ‘임금 가이드라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집권세력은 적폐정권을 몰아내고 촛불로 등장했으니 걱정 말라고? 그대들이 천년만년 집권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게다가 당신들이 지금 많은 분야에서 도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로 후퇴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것도 거래? 이런 것도 사회적 대화?

그럼 지금까지 얘기해온 것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문재인 정부는 2월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ILO 협약 비준, 최저임금 결정구조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이중 최저임금 문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하지만, 나머지 2가지는 경사노위라는 사회적 대화기구 논의를 먼저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종의 ‘거래’ 내지 ‘빅딜’이 추진되고 있는데, 그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보면 아래와 같다. 우선 탄력근로제와 관련해서는 자본의 요구만 도드라지게 드러날 뿐이며, 이걸 노동계 요구도 아닌 연속휴가제나 추가수당 따위와 맞바꾸기가 이뤄지게 된다. 진정한 노동계 요구라 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폐지는 무시된다.


ILO 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다. 따라서 이건 정부가 그냥 밀고 가면 된다. 그런데 이걸 굳이 노사정 합의를 해야 한다며 ILO 협약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니 ILO 협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용자 소원수리를 거래하려 한다.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일체의 사업장 점거 금지에 대체인력 투입 확대 등 사용자 소원은 더 늘어날 것이다.

최저임금과 관련해 노동계는 오래 전부터 결정기준에 가구원 수를 고려한 생계비, 즉 가구생계비를 명시하자고 주장해왔고 이는 다수 공익위원들도 동의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은 모조리 무시되고 노동계와 협의 한번 거친 적 없는 결정구조 이원화를 밀어붙이려 한다.

도대체 어느 역사, 어느 정권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거래가 추진되었을까? 게다가 자본가들이 얻는 것은 △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도입절차 간소화 △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 일체의 사업장 점거 금지 등 매우 구체적인 것들이다. 게다가 법에 명시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 효과도 당장 발생하게 된다.

반면 노동조합이 얻는 것은 ILO 협약 87호, 98호 비준뿐이다. 추상적인 협약 내용 비준만으로는 그 어떤 효과도 당장 발생하지 않는다. 전교조가 당장 합법화되는 것도 아니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바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즉 자본가들은 이 거래를 통해 현찰을 챙기는 반면, 노동조합은 신용이 매우 의심되는 어음을 받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 국회 구조를 고려하면 과연 ILO 협약 비준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부도가 예정된 어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거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떠드는 경사노위 높은 어르신들, 그리고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은 도대체 ‘거래’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를 뭐라 알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런 게 과연 ‘거래’이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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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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