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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일째, 굴뚝 위 그들이 내려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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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일째, 굴뚝 위 그들이 내려올 때까지

[마음은 굴뚝같지만] 김세권의 '가짜 약속', 언제까지?

제가 사는 집에는 TV가 없습니다. 지난 연말, 가족의 집을 방문해 오랜만에 TV를 켜고 뉴스를 봤습니다. 이런저런 뉴스를 무심히 보고 있는데, 익숙한 풍경과 얼굴이 보였습니다.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서울 목동의 열병합발전소 굴뚝과 담담한 표정의 차광호 파인텍지회 지회장,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자의 얼굴 등이 스쳐 지나갑니다. 화면 아래에는 '파인텍 노사 교섭 시작, 입장 차만 확인'과 같은 자막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의 이야기를 지상파 뉴스에서 보게 되다니. 반가움과 함께 씁쓸함이 몰려왔습니다. 고공농성, 오체투지, 단식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도 시민사회단체의 동조를 얻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다음에야, 말로만 듣던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의 낯짝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만든 장본인인 그는 문제를 풀 의지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굴뚝 위 농성자들을 향해 '영웅' 운운한 발언을 보면 말이죠.

"불법을 저지르고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이 되는가?"

'법이란 큰 고기만 빠져나갈 수 있는 촘촘한 그물'이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요? 고용승계를 보장한다는 명문으로 한국합섬이라는 회사를 헐값에 사들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는 회사를 분할 매각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죠. 그 와중에 이름까지 바꾸고 수백 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린 김세권 대표. 그런 그가 자신들이 당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목숨을 걸고 다시 굴뚝에 올라간 노동자들을 '범법자'라고 매도하다니요.

자신의 안락함만을 찾는 이들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농성자들은 영웅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들이 굴뚝 위로 올라간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닐 테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부조리, 부당한 대우와 불법 해고에 맞서 그들은 이름 없는 노동자를 대신해 칼바람을 맞으며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절박한 자들이, 용기 있는 자들이 그렇게라도 투사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힘겹게 지켜내고자 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보다 상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작은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결국 침묵하거나 방관했던, 심지어 그들을 조롱하는 댓글을 달던 이들까지 포함한 시민과 노동자를 위하는 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연합뉴스

어제(1월 3일), 파인텍 노사가 4차 협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연말 세 차례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양측이 무려 13시간의 마라톤협상을 벌였지만. 이마저도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다시 한밤중에 전해졌습니다.

파인텍의 모회사인 스타플렉스는 사내유보금을 몇백 억씩 쌓아두면서도 파인텍 노동자 5명을 직접 고용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또다시 사회적기업이라는 허울 좋은 유령회사를 만들어 직접 고용을 피하는 꼼수를 부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 강성노조가 생기면 회사가 망한다는 뿌리 깊은 노동자 배척, 노조 배제 정신에 기반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적당한 타협은 없습니다. 2015년에도 약속을 폐기한 전례가 있기에, 이번에는 직접 고용을 보장받고 합의안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지켜보는 눈이 많다고 해도, 사측이 양보해 새로운 합의를 이뤄낸다고 한들, 다시 약속을 저버리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농성자들이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올 때까지, 5명이 공장으로 돌아가 보통의 노동자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굴뚝 위에서 두 노동자가 419일을 보냈건만, 해를 넘기고도 투쟁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5차 교섭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합니다. 그러나 힘을 모아 농성자들을 지켜낸다면 머지않아 내려오게 될 것이며, 그들이 지상에 내려와 내딛는 첫발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희망의 한 발이 될 수 있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봅니다.

* '마음은 굴뚝같지만'은 2017년 11월 12일부터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씨와 박준호 씨가 하루라도 빨리 내려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연대 글입니다.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 차광호 씨는 2015년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올라 전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일인 408일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 12월 24일, 이 기록은 굴뚝 위 홍기탁, 박준호 두 사람에 의해 갱신되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다시 굴뚝 위에서 맞이하게 할 순 없습니다. 이들이 어서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노동자로서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응원하며, 파인텍 5명의 노동자들이 웃으며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길 기대하며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릴레이 연재를 이어갑니다.

법적으론 문제없단 말 들었을 때..."아 문제가 많구나"

"그 굴뚝 앞에 서보면 안다"

파인텍 410일, 착취 아닌 착즙의 시대

굴뚝농성 411일…내가 연대 단식한 이유

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덕질'하다

파인텍 굴뚝과, 아버지의 꿈

스타플렉스 김세권, 떨고 있나?

'굴뚝에 오르면 영웅인가'라고 하면 영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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