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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시스템이 무너졌다…'파견'마저 '파견'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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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시스템이 무너졌다…'파견'마저 '파견'하는 현실

[반월·시화 공단서 본 파견 노동 현실②] 이익은 사용자 차지 책임은 노동자 몫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가 본격화 됐던 1998년 이후, 노동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유랑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노동 유연화' 정책이 15년 이상 꾸준히 지속된 결과,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느 회사에서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모르는채 며칠, 몇달만에 일터를 수시로 바꾼다. 노동법의 기본 정신인 '직접 고용'이라는 말은 멀겋게 희석된지 오래며 '간접 고용'은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사회 구조를 좀먹고 있다.

"이익을 보는 자가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은 상식이다. 조금 과장하면 사장이 노동자 여럿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사장을 여럿 두는 간접 고용이 만연하면서 이 상식은 깨져가고 있다.
간접고용을 통해 쌓인 이익은 사용자가 누리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가 전담하는 구조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듣도 보도 못한 채용 형태들이 늘어가면서 '노동 제공-임금 지급' 체계 자체는 이미 무너진지 오래다.

정치,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바로 세금을 내고, 소비를 하고,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우리 사회의 다수이자 '골격'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죽은 사회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런데 그 '골격'이 삭고 있다. <프레시안>은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함께 안산·시흥 지역의 반월·시화 공단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노동을 좀먹는 '간접 고용'의 '샘플'을 채취해 그 적나라한 실태를 짚어본다. (편집자)


▲ 안산 반월공단 내 열병합발전소 뒤편으로 공단 전경이 보인다. 반월공단 등은 여전히 국내 제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지만 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사태 여파로 그 위상이 휘청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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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사회 죽이는 '고용구조 붕괴'…'파견'마저 '파견'하는 현실
법대로 하자고? 불법파견·위장도급, 법이 키웠다

"우리 회사는 비정규직 없어요" 하면서 하청업체 통근버스 타는 노동자들

최근 현대자동차 엘지전자 등 대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불법 파견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헌법 해석을 둘러싸고 대기업과 노동자들이 일대 '혈전'을 불사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대기업 뿐이다. 불법 파견은 이미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노동권을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정도 수준으로 불법의 그늘 속에서 '노동'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안산 시흥 지역의 경우 파견·도급·사내하청 등의 고용 구조가 만연하면서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위장도급을 비롯한 각종 부당노동행위에 노출돼 있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비정규직센터)이 안산·시흥지역의 파견노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2013년 5월부터 약 한달 동안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를 포함한 '안산·시흥 지역 파견노동 실태조사' 연구는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책임 하에 이남신, 남우근, 허윤진, 정현철 연구원, 김진숙, 문상흠, 정해명 공동연구원 등이 진행했다.

설문에 응한 총 623명 중 파견업체 노동자는 37.9%, 용역업체 노동자는 36.9%였다. 약 75%, 네 명 중 세 명이 간접 고용된 노동자다. 자기의 고용 형태에 대해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10.3%나 됐다. 보고서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파견과 용역을 혼동하거나 비정규직이면서도 정규직 일자리와 혼동을 일으킨 경우"라고 분석했다. 설문조사를 진행한 조사원 보고서 내용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우리 회사에는 비정규직이 없어요', '저희는 모두 정규직만 근무해요'라며 설문조사를 거절하는 노동자들이 잠시 후 올라타는 통근버스는 잘 알려진 사내하청 업체의 통근버스인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사내하청 노동자도 설문조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이야기해줘도 당사자들은 '사내하청'이라는 단어 자체를 생소해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반월·시화공단 대부분 업체가 대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의 1, 2, 3차 하청기업으로, 예를 들어 2차 하청업체인 A사업장의 노동자의 임금근로조건이나 A사업장 사내하청인 B사업장 노동자의 임금근로조건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향후 얼마나 근무할 것으로 기대하는지"에 대한 문항에서 모른다는 응답은 46.5%를 기록했다. 6개월 이상 장기근무를 할 것이라는 응답은 43.4%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의 월 평균임금의 경우 업종별로 다른데, 크게 제조업 종사자는 176.1만원, 건물청소는 97.9만원, 시설관리는 128.8만 원 등이었다. 건물청소 노동자의 임금은 법정 최저임금 수준이고, 시설관리(경비)의 경우도 주로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의 경계선에 분포하고 있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면 '안산공단전문파견업체' 등의 회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 회사 상당수는 홈페이지 대신 간편하게 꾸밀수 있는 블로그를 내세운다. ⓒ네이버 블로그 화면 캡쳐

파견을 재파견하는 '이중 파견'등 '불법' 소지 널려 있어

이같은 수치들은 고용 불안정이 극에 달해있음을 의미한다. 단기 파견, 사내하청 및 사내 하청의 외주화가 만연해 있는데다, 심지어 '파견을 파견'하는 일까지 일어난다. 파견사업주가 다른파견사업주에게 '하청'을 주는 것인데, 이를테면 A파견업체가 B파견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아 실질적인 사용 사업주 C에게 파견을 보내는 행태다. 이같은 '이중 파견'과 함께 원청업체가 사내하청업체를 들여오고, 그 사내하청업체는 파견사업주로부터 노동자를 공급받는 '이중 간접 고용' 형태도 존재한다.

이같은 행태는 노동력 자체를 상품으로 하도급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9조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하지 못 한다"는 조항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안산·시흥지역의 업체 상당수가 불법을 자행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이를 뒷받침하는 수치가 있다. 이번 설문에 응한 노동자들은 사용업체가 근태관리(46.7%), 작업지시(64.4%), 인사결정(51.2%), 작업도구 지급(48.5%) 등 업무를 수행하는 전반적인 과정에서 소속업체(파견업체)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위장된 도급, 불법 파견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파견법상 불법 파견의 경우 사용업체가 직접 고용하도록 돼 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 질문에서 75.3%가 모른다고 응답했다. 자신의 법적 권리 자체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므로 불법이 만연해도 공단은 돌아간다.

안산시의 파견 업체는 2012년 말 기준으로 245개다. 노동부의 허가를 받은 업체만 그렇다. 하지만 무허가 파견업체도 만연하다. 보고서는 "안산의 경우 인력송출업체, 직업 소개소 등 무허가 파견을 하는 경우가 전체적으로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탈세, 불법의 온상이 되는 무허가 파견업체가 200곳 이상이라는 것이다. 불법의 토대 위에 또 다른 불법이 자라나는 구조다.

"무허가들이든 직업소개소들이든 똑같은 업무를 하고 있어요.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문제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에서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죠, 근거가. ()우리는 어디하고 거래한다는 것을 노동부에 1년에 두 번씩 신고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보면 몇 명을 파견하는지 다 나타나는데, 직업소개소나 무허가들은 신고의무가 없잖아요. 그러니깐 걔네들 입장에서는 뭐 하러 허가 내갖고 하느냐. 그러니까 허가 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된 거죠."(A파견사업주)

"무허가 파견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업무도급계약을 맺는다. 계약상으로는 도급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람장사를 하는 파견업을 행하는 것이다. 위장도급, 불법파견인 것이다. (…) 한번 소개해주면 10~12만원 받는데 한번 받고 끝나면 업체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건설업의 일용직처럼 매일 수수료를 떼는 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제조업의 경우도 이렇게 한다. 사용업체에서 '일주일만 쓸 건데 10명만 보내달라'고 하면, 10명을 일용직처럼 공급해주면서 매일 소개료를 받는 방식이다."(B파견사업주)

무허가업체와 허가업체가 경쟁하게 되면 전반적인 계약조건이 '하향평준화'될 수 밖에 없다. 이를테면 사용업체에서는 무허가 업체를 이용할 경우 임금도 적게 주고 사회보험 가입도 피할수 있다. 파견 수수료도 낮출수 있다. 결국 허가 받은 파견업체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손해를 보게 된다. 2012년 안산·시흥지역의 파견법 위반 사업체수는 88개인데 대부분 시정조치로 끝났다. 과태료를 받거나 사법처리된 경우는 7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파견법 위반에 대해서는 우선 시정조치를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각종 노동 관계법에 대한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

안산 반월공단은 1976년 10월 반월 신공업도시계획이 발표된 이후 조성되기 시작했다. 안산시는 공단과 함께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이자 계획 도시로, 서울에 집중된 인구 분산, 제조업 분산의 필요성과 맞물려 성장했다. 반월공단은 조성 10년만인 1986년에 공장유치 목표치인 1000개소를 넘어섰다. 이후 시화공업단지가 추가로 조성되면서 2012년 12월 현재 시화공단 포함 총 1만5648개 업체, 고용인원수 25만8974명에 달하는 수준이 됐다. 전국의 산업단지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불황이 장기화되고 상당수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공단의 상황은 점차 안 좋아지고 있다.

현재 공단의 노동시장 구조는 저임금, 저 숙련 노동 중심으로 취약한 구조다. 기형적인 노동 수요 공급 구조 노사 모두에게 '독'이다. 노동자들은 상시적 고용불안과 구조적 저임금에 시달리고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의 안정적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노동시장의 왜곡된 구조는 대도시, 대기업의 수직 하청 계열화 차원에서 조성된 반월 시화 공단의 조성 배경에서부터 연원하고 있다. 대기업 하청중심의 공단 구성은 산업구조 변화나 경기침체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 내 생산연계기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탈법적 단기파견과 사내하청을 활용한 생산방식은 기업입장에서는 대기업 하청구조의 말단에서 최소한의 이윤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전략이 되고 있고, 노동자에게는 장기근속에 대한 기대 없이 일자리 알선 기능을 활용하여 부유하듯이 일하는 것에 길들여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센터는 "통제받지 않는 기업의 탈법적 노무관리기법을 쫓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법체계에 대한 근본적 수술을 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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