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6개월 간 교정시설 합숙'을 골자로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상 대체 복무 법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국방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자문위원 활동을 했던 인사들은 해당 법안이 가장 징벌적인 요소만 모아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28일 국방부 청사 앞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의 주최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국방부 대체복무제 도입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수정 변호사,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오재창 변호사, 임재성 변호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5명은 해당 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현역복무와의 형평성'과 '소수자 인권 보호'를 모두 고려한 합리적인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졌지만, 정부안에는 결국 가장 징벌적인 요소만이 집약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국방부가 대체 복무자의 복무 기간 산정과 관련,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 복무자 수준인 36개월과 맞춰서 결정했다고 밝힌 대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공중보건의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보건의료시설 및 농어촌 지역의 복지 시설에서 3년동안 의료 및 보건 임무를 수행하면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되는 제도다.
이들은 "국방부가 관사와 최소 중위 1호봉 기본급이 지급되며, 출퇴근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공중보건의사의 복무기간을 근거로 제시한 점은 별다른 근거 없이 복무기간을 정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국방부가 이달 초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를 토대로 36개월의 복무 기간을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대체복무제는 소수자의 인권 문제"라며 인권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 자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질문 문항의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해당 여론조사에서 전국 성인 일반인 1000여 명과 현역병 1000여 명을 대상으로 '대체 복무자들이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면서 강도 높은 노동(취사·물품 보급 등)을 수행할 경우 이들의 복무기간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현역병의 76.7%, 일반 성인의 42.8%가 36개월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들 자문위원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 질문 전에 "의무복무 병의 복무기간은 육군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2개월로 단축될 예정이며, 산업기능요원·공중보건의사 등 현행 대체복무자는 34~36개월을 복무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기구에서는 대체복무자의 복무기간이 현역 복무기간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라는 설명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들은 "위 문항은 현재 논의되는 대체복무 여건과는 전혀 상이한, 출·퇴근 복무를 하고 상대적으로 고액 봉급을 받는 산업기능요원과 공중보건의사의 복무기간을 제시하면서 34개월 이하일 경우 ‘짧은 대체복무’라는 인상을 느끼도록 했다"며 질문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설문조사 진행 절차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10월 4일 열렸던 1차 '대체복무 도입 방안 공청회' 개최 이전에, 한 자문위원의 제안으로 국방부 차원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했고 그 자문위원이 설문문항 초안까지 작성하여 국방부에 전달했는데 이후 여론조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진행되지 못했고, 그 이유에 대해 정확한 해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런데 국방부는 대체복무 관련 전문가인 자문위원들에게 아무런 논의나 검토요청도 하지 않은 채, 정부안을 발표하면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며 "국방부는 왜 자문위원들의 검토나 의견수렴을 배제한 채 12월에 편파적 문항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병역거부자들이 지금까지 감옥에서 했던 일을 그대로 수행하는 형태의 복무는 "과거 수십 년간 이어진 인권침해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조금도 담기지 못한 대체 복무가 될 것"이라며 "소수자의 문제에 있어서는 입법적 결단이 필요하고 그 결단을 사법부가 보여주었다면, 정부안 역시 그 흐름 속에서 현재의 징벌적 안을 신속하게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개최한 시민사회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유엔 등 국제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의 실현이기 때문에, 대체 복무는 징벌적이거나 차별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립해왔다"며 국방부의 이번 법안은 이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징벌적 성격이 아닌, 인권을 존중하는 대체복무제는 대체 복무의 기간, 분야, 형태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고 판단되어야 한다. 공공성과 사회적 필요성, 여러 군 복무와의 형평성,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결의 취지인 양심의 자유의 실질적인 보장, 대체복무제의 안착을 위해 악용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 등이 두루 판단의 근거로 작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하지만 국방부는 여러 판단 기준과 합리적 근거에 입각하지 않은 채 복무 기간, 분야, 형태를 각각 나누고 군 복무와 비교하여 더 어렵게 만드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며 이번 법안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또다시 처벌하기 위한 대체복무제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들은 "정부안대로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도입과 동시에 유엔 자유권위원회 등 국제기구에서 징벌적이라는 이유로 수정 권고를 받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또다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을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복무 분야를 교정시설에만 국한하여, 공익적인 영역에서 대체 복무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저절로 사라져버렸다. 이는 단순히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대체복무제의 혜택을 한국 사회 전체가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삭제해버린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아직 합리적이고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를 만들 수 있는,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군 복무자들의 처우 개선의 계기가 되며, 사회 취약층을 위한 공익적인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국회에 있다"며 "충분하고 진지한 연구와 토론을 통해 국회가 진정한 민의의 전당으로 기능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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