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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의 '병행론', 시동이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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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의 '병행론', 시동이 걸리다

[창비주간논평] 이제는 '평화 프로세스'에 주목하자

남북관계에 의미있는 변화가 감지된다. 그것은 북한의 6·6제안으로 시작되고 8·14합의로 1차 종결된 남북대화의 전체 맥락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바로 보수정부의 병행론이다. 8·14 개성회담의 성과는 일차적으로 남측이 유사사태 재발방지 보장의 주체를 북측만이 아닌 남북 공동으로 하는 것을 수용함으로써 가능해졌지만, 내용상으로는 역시 북측의 대폭적인 양보가 두드러진다. 그런 점에서 합의서 각 항목은 흥미롭다. 제반 사항의 이행 주체로 남과 북이 명기되어 있기는 한데, 따져보니 북이 이행해야 할 것만 나열되어 있다.

다음의 합의문을 보자. "남과 북은 통행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1항)로 되어 있다. 여기서 개성공단 중단사태의 재발 현상으로 언급된 통행제한이나 근로자 철수는 대개 북이 행한 것이다. 보장해야 할 점으로 언급된 남측 인원의 통행, 북측 근로자 출근, 기업재산 보호 등도 북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패턴은 합의서 2항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대폭적인 양보다. 이런 양보는, 뒤집어보면 남측이 회담의 전반적인 내용을 관철시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정부가 '원칙론'의 승리라 자축하는 것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 남북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7차례의 실무회담을 가진 끝에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김기웅(왼쪽) 남측 수석대표와 박철수 북측 수석대표가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

북측의 대폭 양보가 나온 배경

그런데 더욱 흥미를 끄는 점은 북이 대폭 양보한 이런 합의가 사실 북으로서도 매우 좋은 합의라는 사실이다. 개성공단의 국제화 문제에 포괄된 여러 내용들, 예컨대 공동 투자설명회나 노무, 세무, 임금, 보험 등 관련제도의 국제화 등은 북으로서도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할 내용이다. 외국기업 유치는 북이 내건 올해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 비추어 남측이 좀더 유연한 자세로 임했다면 6차 회담에서도 북의 상응하는 양보를 얻어내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고통을 그만큼 덜어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군사당국에 대한 '건의'라는 표현이 빠져 있다. 이 부분은 합의서의 통행, 통신, 통관 문제 부분에 7월 25일까지도 삽입되었다가 8·14 합의서에는 빠진 것이다. 아마도 그 비밀은 서명에 나타난 "상부의 위임에 따라"라는 표현에 있지 않을까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번 합의서는 개성공단의 안정화, 국제화를 지향한 남측의 목표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대외관계 개선의 확대라는 북의 전략에도 힘이 실린 느낌이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박근혜정부이다. 이 합의를 성사시킴으로써 이명박정부 시절 단 한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던 길을 열어냈기 때문이다. 바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병행론의 실행이다. 기억하듯이 병행론은 진보성향의 정부가 내건 노선이고 보수정부는 늘 남북관계에 북핵문제를 끌어들이는 연계론이었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연계론의 한계를 깨닫고 병행론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기는 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상회담 시도이다. 그러나 끝내 선핵포기론이라는 대북정책과 북한 붕괴론이라는 대북인식 및 그에 기반한 전략이 길을 막았다.

그렇다면 어떤 비밀의 문이 있어 박근혜정부에 병행론의 길을 보여준 것일까? 우선 체제보장에 대한 북의 생각이 바뀐 점을 짚어볼 수 있겠다. 미국에 의한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 요구가 과거 체제보장의 핵심 구성요소였다면, 지금은 스스로 최소한의 억지력을 구축했다는 정서가 생겼다. 지난해 12월 인공위성 발사 때로부터 2·12 3차 핵실험을 거쳐 확보한 무기체계를 가동하여 펼친 한미 군사력과의 무력시위경쟁이 그것이다. 북의 논리상, 이제 협력과 교류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북은 단지 하찮은 위협세력에 불과해진다. 북의 양보는 거기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선핵포기론 집착 버리고 평화 프로세스에 주목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이번 개성회담의 성과를 '재발방지와 국제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을 '북한의 변화된 모습과 행동'이라 칭했다. 그렇다면 핵문제는? "북한이 핵을 버리고 국제사회에 동참한다면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를 구사한다. 선핵폐기론이라 칭해도 하등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2006년 10월 북의 1차 핵실험 이후 이런 정도는 누구나 했던 표현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이 둘을 잇는 키워드는 국제화이다. 다시 말해 개방이다.

아직 금강산관광 재개 여부를 봐야 병행론에 대한 확인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있다. 일리가 있다. 금강산관광 역시 개성공단과 마찬가지로 UN이 인정한 상업적 거래지만, 보수세력으서는 개성공단보다 더 고민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산가족상봉 자체를 하나의 양보로 생각하기 쉬운 북측 입장과 별도로 우리쪽 입주기업들의 입장에서도 1회성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시설을 정비하고 가동했다가 다시 동결상태로 넘기는 일은 감내하기 힘든 면이 있다. 아무튼 현재의 병행론에는 동상이몽의 요소가 있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보수정부의 병행론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북핵을 다른 한손에 두고서 남북관계 발전 논의에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핵 해결의 직접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오히려 남북관계 프로세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에서 점차 구체적인 내용이 생겨나면, 국제사회는 한반도가 평화롭다고 느끼게 될 것이고 그것이 병행론의 실질적 실행 여부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병행론의 한층 확증적인 징표는 이렇게 드러날 것이다. 북에서 '모든 핵능력이 협상이 될 수 있다'는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이자, 남에서 '평화회담을 시작하자'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다. 언제일까? 남북관계의 안정으로 만들어지는 평화로움이 누구의 눈에서도 감지될 때일 것이다. 이렇듯 남북관계는 평화와 밀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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