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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약자 동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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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약자 동정론

[민미연 포럼] '약자 보호' 콤플렉스의 모순

연말연시, 들뜬 기분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피어오른다. 이번 글은 약자가 잘 보호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죄책감과 대표적인 약자 세대인 청년들이 한국의 고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가질 수 있는 인식은 무엇인지 써보았다. 모쪼록 올해보다 더 나은 내년이 오기를 바란다.

약자를 돌보지 못한다는 죄의식은 미약해져야 좋다

'슬로건은 콤플렉스의 반영'이란 말이 있다. 많은 곳에 써먹을 수 있는 좋은 고찰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먼저다'라는 명제가 호응을 얻었다면, 인간보다 우선되는 것이 매우 많다는 콤플렉스가 강하기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인간에 대한 고려를 좀 더 많이 하자는 바람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약자 보호'는 사회 기저에 흐르는 주된 콤플렉스다. 가장 큰 이유는 '완벽한 약자 보호'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모자람이 있고, 그래서 콤플렉스이며, 이 때문에 약자를 위하자는 말은 어지간해서는 거부되지 않는다. 한부모 지원 예산,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전액 삭감하려 든 국회의원이 '약자 보호'에 반했다는 이유로 거센 질타를 받았던 일은 '약자 보호'라는 슬로건이 강력한 물밑의 콤플렉스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약자 보호' 콤플렉스는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좋다. 이 콤플렉스가 미약하다는 것은 그 때문에 '약자 보호'가 부진해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약자 보호'가 제도적으로 잘 되는 상황에서 ‘약자 보호’에 대한 콤플렉스, 죄책감이 줄어든다.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약자에 대한 배려가 미진하다는 가책이 사람들을 덜 압박하는 사회, 그런 세상이 더욱 살기 좋은 사회다. 죄의식이나 동정심보다는 이성으로 약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사회가 더 진화된 공동체다.

청년과 약자 동정론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불멸의 가치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지부진한 산업 구조조정은 대표적인 사례다. 어떤 산업은 저조한 실적에도 지원할 필요가 있지만, 어떤 부문은 지원을 중단하거나 보호 규제의 장막을 걷어야 한다. 구조조정의 때를 놓치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자를 내칠 수 없다는 숭고한 명분이 비합리를 초래하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게 한다. 고약한 것은 평소 복지와 같은 '약자 보호'가 잘 안 되기에 규제와 같은 '약자 보호'의 명분이 더욱 거세진다는 점이다. 해야 할 '약자 보호'를 하지 않는 콤플렉스가 그만둬야 할 '약자 보호'를 계속하게 만드는 모순이다.

엇나간 약자 보호 담론으로, '청년이 힘들다'는 청년 동정론을 환기하려 한다. 종종 덜떨어진 이들이 '노오력 지상주의'를 설파하며, '노오력'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는 현시대 청년의 약자성을 무시하곤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청년층은 분명 상대적 약자이며, 교양 있는 기성세대라면 응당 미안해야 할 존재로 규정이다.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 청년에게 미안해 죽겠다는 기성세대와 명사들이 비록 말뿐이긴 하지만, 아무튼 미안하다는 데 뭐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은 약자라는 동정론을 청년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가는, 그것이 도리어 청년층을 한층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약진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청년 약자론의 맹점을 잘 보여준다.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로부터 빨대 꽂힌 이들이며, 안 그래도 힘겨운 청년들을 더욱더 버겁게 한다는 국민연금 청년 착취론. 청년을 비롯해 꽤 널리 지지를 받는 담론이다. 이러한 인식은, 설령 이것이 맞는 말일지라도, 청년에게도 사회에도 악영향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논리를 따라가면, 약자인 청년들이 공적연금을 발전시키고 정상화시키기 위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약자니까 무조건 무언가를 얻어 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손해를 보지는 말아야 하지, 약자인 청년들이 이 사회에, 노인빈곤 해소에 기여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약자 보호'의 측면에서 국민연금의 최대 단점은 가난한 비수급 노인이나 저액 수령인을 돌볼 수 없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권한을 틀어쥔 기성세대는 기초연금을 극히 적은 액수로 제한함으로써 가장 취약한 고령 약자들, 청년보다도 더 취약한 약자들의 보호를 져버린다. 매우 부도덕한 행태이다. 경제력이 좀 되는 나라 가운데, 한국처럼 저소득 노인들을 박대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 기성세대가 못돼먹은 복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참작의 여지가 일부 있다. 어릴 때부터 주름살이 깊어질 때까지 워낙 저(低)복지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알을 깨고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러한 기성세대의 각자도생 허물을 답습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는 가진 게 많은 기성세대가 유리할 뿐이다.

청년세대는 기득권 기성세대가 외면하는 담론을 제기할 수 있다. 고령층 약자 보호를 방기하며 부도덕한 모습으로 화석이 된 기성세대를 호되게 꾸짖을 수 있다. 가난한 노인처럼 약자를 돌보기 위해서라면 내 돈이라도 내놓겠다고, 비록 벌이가 적어 액수는 적을지라도 얼마든지 기여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 벌이도 시원찮은 청년마저 그리 할 것이니, 기성세대는 더 큰 책임을 갖고 동참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일이자, 사회의 기저(基底) 도덕성을 강화하는 일이며, 기성세대의 가족주의 악습을 근절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노동자의 절반가량이 소득세를 내지 않거나 대부분 너무 적게 내는 조세 체계가 바로 잡혀야지, 청년과 저소득층에게 한결 이로운 사회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청년은 약자'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한국의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삶의 방식을 따라 하며 뻑뻑하고 각박하게 살아간다. 기성세대를 손가락질하면서도 그들을 답습하는 것이 한국 청년 다수의 자화상이다.

청년세대는 웬만하면 약자가 맞다. 특히 저소득 청년들이 매우 힘겹다. 하지만 약자라는 의식에 함몰되어 단지 받을 것만이 있다고 착각한다면, 상황을 타개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상대적 강자는 그 위치에서 할 일이 있고 상대적 약자도 그 위치에서 할 일이 있다. 모범이 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손아귀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그들의 '각자 알아서 살아가기'를 비판하고 이겨내야 한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386 민주화 세대'와 '새마을 산업화 세대'를 극복하려면, '이들이 공유하는' 삶의 방식에 정면으로 또한 정반대로 부딪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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