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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복직…"아이 낳았을 때만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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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복직…"아이 낳았을 때만큼 기뻤다"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17> 시그네틱스 경영해고 사건

공장 이전에 따른 노사 문제는 최근 들어 노사 갈등 유형의 전면에 등장한 이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희망버스 붐을 일으켰던 한진중공업 사건에서 노사 갈등의 주된 이유는 공장의 해외 이전이었다. 값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떠난다고 하면서 공장을 폐쇄하는 것은 대량 실직을 낳게 된다. 대량 실직은 노동자 개개인의 문제만도, 단일 회사나 사업장의 문제만도 아니다. 사회 문제다.

김선수 변호사가 이번에 소개하는 사례는 시그네틱스 공장 이전에 따른 경영해고 사건이다. 공장 매각 후 이전될 곳으로 일종의 '고용 승계'를 보장했다가 이를 파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노동자를 하나의 '경영 변수'로 보고, 그들이 제공하는 노동을 사고 또 버리는 상품으로 여기는 관행이 문제라고 할수 있다. 고통을 겪어온 숱한 해고자들도 대한민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이들이 무너지면 경제도 무너진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을 맡으며,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 삶들의 연대와 관련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편집자>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1)
전태일을 생각하며 변호사를 꿈꾸다
(2) 노동 변호사를 야유한 노동자들, 그 실체는…
(3) 회사는 왜 캐디를 '사장님'으로 만들어줬나
(4) 건설 노동자는 병원 노동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라?
(5) 통상임금 논란, 원조는 25년 전 이 사건!
(6) 1992년, 여의도광장에서 '노동자 대회' 열린 이유는?
(7) 신영철 대법관, 노동자 옥죄는 '이것' 해결해줄 수 없나?
(8) 힘들게 대기업 합격, 그런데 출근은 하지 마라?
(9) "전두환 신군부 때문에 퇴직금 소송만 10년"
(10) "21세기, 이게 대한민국 공무원의 현실이라니…"
(11) 어느 날 캠퍼스에서 사라진 그 교수들, 왜?
(12) 8년 8개월 8일 만에 복직, 대법 판결만 2번…어쩌다?
(13) 노조 위원장 자살, 부위원장 사망…대학은 책임 없나?
(14) 법원 무시하는 사장, 스스로 권위 깎는 법원
(15) 대한항공 남자 승무원 2명의 '11년 법정 투쟁기'
(16) 세계적인 록스타도 한국 자본에 분노했다

시그네틱스 주식회사(이하 '피고 회사')는 1966년 9월 12일 설립된 반도체 전문 제조업체이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본사 겸 제1공장(이하 '서울공장')을 두었고,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에 제2공장(이하 '파주공장')을 1997년 5월경 준공하여 가동했다. 피고 회사는 2000년 11월경 서울공장을 매각하고 안산시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노동조합은 안산공장의 경우 파주공장과는 달리 투자 규모도 작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을 생산하도록 되어 있어 향후 몇 년 후에는 고용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안산공장으로 이전하는 것에 적극 반대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기업별 단위노조였는데, 투쟁 과정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의 분회(이하 '산별분회')로 조직 변경을 했다. 노동조합과 피고 회사는 정상화를 위해 노동조합 측은 임금 삭감, 상여금 반납,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 고통을 분담하고, 피고 회사 측은 서울공장 매각 후 그 설비를 파주공장으로 이전하고 서울공장 소속 근로자들을 파주공장으로 발령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피고 회사가 약속을 저버리고 안산공장으로 이전을 강행하려고 하여 노동조합이 강력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이 투쟁을 빌미로 피고 회사는 2001년 11월경부터 2002년 1월경까지 안산공장으로 난 인사 발령을 거부한 조합원 31명을 징계 해고했다. 해고 노동자들이 징계 해고에 대해 구제 절차를 밟아 5명은 2003년 2월경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으로 복직했고, 6명은 3심의 과정을 거쳐 2006년 12월 22일 선고한 대법원 판결(서울행정법원 2003. 11. 4. 선고 2003구합6368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4. 10. 15. 선고 2003누21482 판결, 대법원 2006. 12. 22. 선고 2004두12902 판결)로, 13명은 역시 3심의 과정을 거쳐 2007년 6월 1일 선고한 대법원 판결(서울행정법원 2004. 4. 16. 선고 2003구합6375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5. 8. 18. 선고 2004누9311 판결, 대법원 2007. 6. 1. 선고 2005두10958 판결)로 각각 복직했다. 대법원 판결로 복직한 해고 노동자들은 피고 회사가 해고 기간 중의 임금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아 별도로 임금 청구의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고 항소심에서 조정으로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시그네틱스 홈페이지 캡처

경영해고 경위

산별분회에서 제명 처분을 받은 전 조합장이 관할 지방노동사무소장으로부터 임시총회소집권자 지명 취소 통보를 받았음에도 2003년 7월 4일 임시총회를 강행하여 의사정족수 미달 상태에서 기업별 노조로 조직 형태를 변경하는 결의를 했다. 피고 회사는 2004년경부터 협조적인 기업별 노조와만 단체교섭을 해왔고, 복직된 해고자들을 주축으로 한 산별분회의 단체교섭에는 응하지 않았다.

이에 산별분회는 피고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응낙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2009년 10월 28일 의정부지방법원 2008가합5629호로 승소 판결을 받는 한편(피고가 위 판결에 불복하였으나 최종적으로 2012년 8월 17일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확정되었다), 2009년 12월 3일 의정부지방법원 2009카합896호로 단체교섭응낙 가처분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피고 회사는 산별분회에 안산공장의 경영 상황이 어렵다면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에는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피고 회사는 반도체 전문 제조업체로서 고부가가치 제품(BGA, Flip Chip)은 파주공장에서 주로 생산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DIP, SOP)은 안산공장에서 생산했다. 파주공장에는 수백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한 반면, 안산공장은 투자할 재원이 없다는 핑계로 투자를 하지 않는 경영 전략을 취했다. 고용 형태를 보면 파주공장은 간접 고용 형태로 사내 하청 근로자들이 생산을 담당했고, 안산공장은 피고 회사가 직접 고용한 근로자들이 생산 활동을 수행했다.

피고 회사가 안양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은 COG인데, 이를 전적으로 삼성전자에 납품했다. 삼성전자는 2009년 1월경 피고 회사에 설비 증설을 통한 COG 생산 능력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나 피고 회사는 안산공장에 투자하는 대신 다른 회사(퓨렉스)에 설비 투자를 요청한 후, 2009년 6월 1일 퓨렉스에 안산공장 전체 면적의 약 9/10에 해당하는 5110㎡의 건물 및 시설을 임대하고 관련 COG 제조 장비를 매도했다. 퓨렉스는 그 무렵부터 200억 원에 이르는 추가 설비투자를 거쳐 COG 제품 생산을 시작했고, 그에 따라 2010년경부터는 피고가 퓨렉스로부터 COG 제품 생산을 하도급 받는 것으로 거래 구조가 바뀌었다.

퓨렉스가 COG 제품 생산을 시작하면서 안산공장의 COG 생산 물량이 줄어들자 피고 회사는 2009년 10월 16일부터 계속하여 기업별 노조 및 산별분회에 안산공장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인원 감축이 필요하다면서 안산공장의 경영 악화를 거론했고, 2010년 3월 11일 기업별 노조에 잉여인력 26명 감축 및 경비 절감을 내용으로 하는 생존 목표를 제시했다. 고용 불안을 느낀 기업별 노조는 2010년 9월 16일 피고 회사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여 근로자들의 근로 관계를 승계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피고 회사는 위 방안을 검토한 후 2010년 10월 29일 안산공장을 신설 회사에 양도하고 기존 근로자들의 근로 관계를 신설 회사에 승계하며 5년간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노사합의서를 기업별 노조와 작성했다.

피고 회사 부사장이자 안산공장장이 2010년 11월 30일 '주식회사 유엔씨'라는 상호의 별도 회사를 설립한 다음, 2010년 12월 6일 피고 회사로부터 안산공장의 영업을 양수하면서 퓨렉스가 점유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안산공장 건물 332.04㎡을 임차하고 COG 제조 장비를 매수했다. 유엔씨로 근로 관계 승계에 동의한 기업별 노조 조합원 40명은 유엔씨로 이전하여 5년간 고용을 보장한다는 합의서를 믿고 근무했다.

피고 회사는 2010년 12월 6일경부터 2011년 7월 13일까지 유엔씨로 근로 관계 승계에 동의하지 않은 산별분회 조합원 32명을 대상으로 업무 능력 향상 교육을 실시하다가 2011년 7월 14일 희망퇴직자 4명을 제외한 28명의 원고들에 대하여 경영해고를 실시했다. 파주공장은 이미 피고 회사의 하도급 업체들이 생산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결국 경영해고로 인하여 파주공장의 연구직 및 관리직을 제외한 피고 회사의 생산직 인원은 전원 사내 하청 형태가 되었다.

사건의 수임

2001년과 2002년 해고 사건과 복직 후의 임금 사건을 우리 사무실에서 담당했기 때문에 경영해고 과정에서 몇 차례 상담을 했다. 산별분회는 파주공장으로 배치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2001년 투쟁 때부터 요구했던 사항이고, 피고 회사가 파주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했으므로 그쪽 생산 라인으로 가서 얼마든지 근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고 회사는 산별분회 조합원들을 파주공장으로 배치 전환할 경우 생산직은 100% 하청업체를 통해 간접 고용한다는 방침을 깨뜨리게 되기 때문에 이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산별분회 노조원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고용 승계를 끝까지 거부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변호사 입장에서 신중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 승계를 거부하고 경영해고 된 후 험난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 결과의 가능성 여부보다 해고 노동자들의 힘든 상황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산별분회 노조원들은 뜻을 모아 고용 승계를 거부하였고, 결국 예상했던 대로 경영해고 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산별분회는 피고 회사가 발송한 해고통지서의 수령을 거절하여 절차상의 하자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다. 2001년 해고 시 징계 절차와 관련하여 해고통지서를 수령하지 못한 해고자 한 사람이 승소한 전례가 있었다. 그러나 경영해고의 경우 징계 절차와는 다르기 때문에 해고통보서의 수령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해고 무효 사유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해고 노동자들은 산별분회를 중심으로 대응했는데, 우리 사무실에 사건을 의뢰하기까지 변호사 사무실 몇 군데를 알아봤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여간 우여곡절을 거쳐 해고자 28명 전원의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청구 사건을 수임했다.

소송의 진행과 변론 종결

소장은 간략하게 요건사실만 기재해서 2011년 8월 31일 관할법원인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출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산별분회를 중심으로 해서 치약 등을 판매하여 생계비를 마련하고 여의도에서 농성을 하면서 투쟁을 이어갔다. 피고 회사는 경영해고의 요건을 모두 구비했다고 주장했고, 반면에 원고 측은 경영해고의 네 가지 요건 중 어느 것도 구비하지 못했다고 다퉜다.

첫 변론기일은 소장 제출 후 4개월 정도가 지난 12월 23일에야 잡혔다. 그 이후 2012년 2월 3일, 3월 30일, 5월 18일, 7월 6일, 8월 31일, 10월 19일 등 7회의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변론을 종결했다. 변론 종결 후 11월 7일 조정기일을 진행하고 결국 11월 23일에 선고했다. 해고된 후 1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재판 진행 중에 재판장이 교체되었다. 처음 재판장은 사건 파악력이나 재판 진행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시차제로 기일을 잡았지만 진행 시간을 통제하지 못해 기일마다 오래 기다려야 했고, 사건에 대한 파악이 완전하지 못한 때문인지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반면에 바뀐 재판장은 당사자를 배려하여 친절하게 진행하는 것은 아니고 대리인이 없는 사건의 경우 반말이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일 진행을 매끄럽게 했다. 재판장의 준비와 진행 태도는 결과와 관계없이 당사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중요한 요소다.

피고 측에서는 새로 회사를 설립한 안산공장장과 기업별노조 위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해서 신문했다. 두 증인을 한 번에 신문해도 되는데, 조금이라도 기일을 끌려는 의도로 증인을 한 명씩만 출석하게 했다. 원고 측도 2001년 투쟁으로 해고되었다가 재판에서 패소해 복직하지 못했지만 경영해고 과정에서 직접 교섭을 담당한 산별분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해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신문했다.

이 사건에 대한 대리인으로서 결의를 재판부에 보여주기 위해 2012년 10월 19일 열린 결심기일에 구술 변론할 내용을 미리 써가서 낭독했다.

1심 재판 최종 구술변론 중

〇 우선 저는, 우리 사회가 근로자를 단순한 생산 요소나 상품이 아니라 인격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정당하게 대우하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조합 결성권과 쟁의 행위를 포함한 단체행동권을 존중하고, 노동조합을 사회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근로자들은 절감해야 할 비용이나 구조조정 대상인 상품 또는 생산요소로서만 취급받고 있고, 근로자들의 자주적 결사체인 노동조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괴되어야 할 불온한 그 무엇으로 색칠되고 있으며, 근로자들의 정당한 헌법상 기본권 행사인 파업은 범죄시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원고들에 대한 경영해고도 원고들을 인격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피고 회사의 오늘을 있게 한 주체의 하나로서 존중하는 자세만 취했다면 얼마든지 회피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 회사는 근로자들의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용인할 수 없었고, 노동조합 없는 회사를 만들기 위한 차원에서, 그리고 '직접고용 정규직 제로(0)'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이 사건 경영해고를 강행했던 것입니다.(…)

〇 피고 회사는 안산공장장이 급조한 회사로 고용 승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원고들을 경영해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피고 회사는 전체적으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었고, 안산공장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합리적인 경영과 투자를 하였다면 얼마든지 좋은 경영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피고 회사에서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없앨 의도로 안산공장에 대한 투자나 합리적인 경영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외형상 좋지 않은 성과가 나오게 되었던 것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당시 상황에서도 피고 회사는 원고들에 대한 이 사건 경영해고를 회피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즉 파주공장으로 배치 전환 또는 파주공장으로부터 테스트 등의 이전 설치 등의 방법이 있었음에도 이를 시행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경영해고를 감행하였기에 이 사건 경영해고는 정당성에 관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무효입니다.

〇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Labor is not a Commodity)'라는 명제는 1944년에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적을 채택한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확인된 제1원칙입니다. 그런데 21세기하고도 12년이 더 지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노동은 여전히 상품으로만 취급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근로자 사용으로 인한 이익은 모두 누리면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간접 고용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 의사가 공공연히 표출되어 다양한 방식의 탄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원고들에 대한 이 사건 경영해고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피고 회사가 원고들을 파주공장에 근무시키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 원고들이 파주공장에 근무하게 되면 파주공장에도 노동조합이 생기게 되고 직접 고용 근로자가 생기게 되는데, 피고 회사는 이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근로자들이 헌법상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고 회사의 방침은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헌법 체계와도 부합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올바른 판단을 통해 원고들이 복직할 수 있도록 판결함으로써 근로자들이 상품이 아니라 인격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헌법상 보장된 노동기본권이 존중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변론 종결 후 조정 시도

결심기일에 피고 측은 조정을 제안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 선고기일 2주 정도 전에 조정기일을 잡았다. 피고 측은 유엔씨로 고용 승계를 하면 피고 회사 명의로 5년간 고용을 보장하는 연대보증서를 작성해 주고 금전적인 보상(해고 기간 중의 임금 지급)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안을 산별분회에 전해주고 원고들의 의견을 모아달라고 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파주공장 근무를 고집할 생각은 없고 안산공장에서 근무하고 급여 일부를 양보해도 좋으나 피고 회사의 근로자 지위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했다. 이러한 뜻을 재판부에 전하고 조정기일을 열어도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조정기일을 굳이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재판장은 잡힌 조정기일은 진행하겠으니 원고 측에서 반드시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출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측에서는 산별분회장과 법률업무 담당자 등이 조정기일에 출석했다. 피고 측에서는 이미 제안했던 조정안을 서면으로 작성해왔다. 결국 적(籍)을 하청업체로 옮기느냐 피고 회사로 유지하느냐에 대한 입장이 좁혀지지 않아 조정은 결렬되었다. 재판장이 당사자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기회를 주어, 우리 측에서는 법률 업무 담당 간부가 솔직한 심정을 진술했다. 진술한 당사자도, 나도 울컥했다.

조정이 결렬되고 법원을 나오면서 선고 결과에 관계없이 선고일에 조합원들과 점심 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했다. 해고자들이 선고 결과를 들으러 법원에 와야 하기 때문에 법원 근처 식당에서 모이는 것으로 했다.

▲ 승소 판결을 받고 식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김선수 변호사

1심 판결의 선고와 회사 측의 항소 포기

2012년 11월 23일, 운명의 선고기일이다. 변호사의 삶이라는 것이 항상 승패의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래도 그것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중요한 사건의 선고를 앞두고는 밤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선고 결과를 직접 듣는 것이 두려워 법정에 나가지 않는다. 애타는 마음으로 선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승소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해고 노동자들도 선고 순간을 감당하기 벅차서 법정까지는 몇 명 오지 않았다고 한다. 당사자로부터 법원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는 연락을 받고 이 사건을 함께 검토한 노무사와 식당으로 갔다. 승소 소식을 듣고 해고 노동자들이 많이 모였고, 여의도에서 같이 투쟁하고 있던 다른 사업장의 해고 노동자들도 함께 참석해서 축하해 주었다. 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제 시작이니 복직할 때까지 힘을 모으자고 결의를 밝혔다. 한 해고자는 우리에게 '연대동지(連帶同志)'들이 같이해주니 힘이 더 난다고 했다. 또 다른 해고자는 둘째 아들이 "얼마나 좋냐?"고 물어 "너를 낳을 때만큼 기쁘다"고 말했다고 기쁨을 표현했다.

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한마디 인사를 할 기회가 주어져 "여러분의 단결과 투쟁,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법관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 1심 결과여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여러분이 힘을 모아 단결하면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약하지만 같이 힘을 합하고 열심히 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당연히 피고 측이 항소를 하고, 또 상고해서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예상했다. 기나긴 여정을 갈 마음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12월 12일경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2012년 12월 14일자로 복직하되 12월 31일까지 휴업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상대방 대리인 사무실에 연락을 해보니 회사가 항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실제 12월 14일이 항소 만기였는데, 피고 회사 측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회사가 1심 패소 판결을 수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피차 좋은 결정을 하였다. 대법원까지 확정 판결이 났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복직시키지 않는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임금 지급과 이후의 복직 과정에 대한 약간의 밀고 당기기가 있었으나, 피고 회사가 안산공장에 별도의 라인을 설치하여 해고자들이 무사히 복직하였다. 어느 정도 정리된 후인 2013년 2월 5일 분회장과 및 법규 담당 간부와 함께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

28명의 경영해고 무효 확인 소송 과정에서 법규 담당 간부는 생소한 분야인 소송 업무를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고, 분회장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과 해고 노동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판사를 움직여 해고 후 16개월 만에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가 통근버스를 제공하지 않아 분회장이 12인승 차량을 직접 운전하여 출퇴근을 돕고 있다고 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전에는 운전면허증도 없었는데, 지금은 1종 면허로 12인승 차량을 직접 운전하고 다닌다고 한다. 법규 담당 간부는 이 업무를 하면서 컴퓨터를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활동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 복직 후 2013년 2월 5일 저녁 식사 후 분회장, 법규 담당 간부와 함께한 김선수 변호사. ⓒ김선수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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