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민주당 의원들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8차 국민 촛불 대회에 참여해 국민보고대회를 열었다. 장외 투쟁에 나선 지 17일째다. 이날은 박정희 정권에 맞섰던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뜬 지 38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 촛불 대회는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사건 수사 축소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와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한 지 하루 만에 열려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민주당 지도부를 포함해 국회의원 113명과 전국 지역위원회에서 모인 당원들은 오후 5시 30분 무렵 행사를 시작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관련된 동영상을 상영한 뒤 이어진 국민 보고 대회에서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헌정 사상 초유의 국기 문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세상의 정권도 헌정 질서를 이렇게 유린한 적은 없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김 대표는 이어 "드디어 물대포가 등장했다. 국민의 함성을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이기려는 박 대통령은 국가 정보 기관을 동원해 정치를 장악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가 열리기 직전인 오후 4시에 경찰은 물대포차를 서울시청 뒤편에 배치하기도 했다.
이어 발언대에 오른 전병헌 원내대표는 "어제(16일) 마침내 원·판(원세훈·김용판) 청문회가 열렸는데, 증인 선서 거부로 국민에게 정면 도전을 했고 뻔뻔한 답변으로 국민을 우롱했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원·판을 신주단지 모시듯 감싸기에 급급했다"며 "어제 청문회는 새누리당이 진실 은폐의 공모자라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똑똑히 확인시켜주고, 거짓의 배후가 새누리당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확인시켜줬다"고 비판했다.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 집회와 시국 선언으로 요구하고 있는 국정원 개혁, 책임자 처벌, 대통령 사과에 대해 박 대통령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 사건, 더 이상의 진실 은폐를 중단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의 침묵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집회를 통해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의 답변을 둘러싼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특히 경찰의 수사 은폐가 '새누리당-국정원-경찰청'의 사전 모의 속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당시 후보를 앞세웠던 새누리당의 조직적 선거 개입 의혹으로 확대될 수 있는 휘발성 강한 이슈다. 국회 국정조사특위 소속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이날 발언자로 단상에 올라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이 같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모의 의혹을 적극 제기했다. 다음은 박 의원이 재구성한 '대선 개입 사건'이다.
"지난해 대선을 일주일 앞둔 12월 12일, 권영세 박근혜 캠프 상황실장은 기자들과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NLL 대화록을 집권하면 '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국정원의 대국민 심리전(국정원 직원의 '오피스텔 댓글 조작')이 드러났다. 13일 원세훈 씨는 국회 정보위가 열리는 도중에 민간인인 권영세 상황실장에게 전화한다. 왜 그랬겠나. 다름 아닌 박근혜 대선 캠프의 2인자였기 때문 아니겠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NLL 대화록 등) 대선 여론 조작과 관련해 상의를 하기 위해 전화한 것 아니겠나. 이쯤 되면 대선을 일주일 남겨둔 민감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대선에 개입했다고 충분히 단정해도 무리가 없지 않겠나.
참으로 공교롭다. 그다음 날인 14일, 김무성 선대본부장이 부산에서 울부짖듯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낭독했다. 이것이야말로 국기 문란 아니겠나. 12월 14일, 국정원 직원이 제출한 노트북에서 서울경찰청 디지털분석팀이 파일을 복구했고, 15일에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디지털분석팀이 복구한 자료를 넘겨받는다. 그리고 (누군가와) 수상한 5시간의 점심 식사를 하게 된다. 누구와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어보니 '손톱을 다쳐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손톱과 기억력의 상관관계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 그 후 서울청 분석팀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음 날인 16일은 일요일이고 그다음 날인 17일은 월요일이다. 수사 결과를 16일에 발표하느냐, 17일에 발표하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다. 16일 늦은 밤이라도 허위의 수사 결과가 발표돼야 17일 월요일자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 톱에 '댓글은 없다'는 기사가 실리게 되는 것이다. 조·중·동 등 주요 신문은 입을 맞춘 듯, 1면 톱으로 17일 자 조간에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참으로 묘하다.
전날인 16일, 김무성 본부장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나. 문제의 16일 오후 2시 김용판 전 청장은 모든 의혹의 핵심인 박원동 국정원 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이후) 김 전 청장은 서울청 디지털분석팀에 '모든 자료를 분석했는데 왜 눈치 보고 발표하지 않느냐'고 얘기했다. 박원동과 배후의 집권 여당이 허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판단해도 되지 않겠나.
16일은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마지막 3차 토론회가 있었고, 여론 조작이 쟁점이었다. 토론회가 끝난 지 한 시간 뒤에, 약속된 시간에 맞춰 '민주주의의 적'인 저들은 허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결국) 부정 선거에서 이런 결과(민주당의 대선 패배)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신경민 최고위원의 '클로징 멘트'를 끝으로 국민보고대회를 마쳤다. 일부 의원들은 이날 저녁 7시부터 열리는 시민 주도의 촛불집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민주당 국민보고대회가 열리는 맞은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는 보수 단체들이 '맞불 집회'를 열고 "대선 불복, 촛불 정치 박살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민주당이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멸공의 횃불',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등 군가나 흘러간 유행가를 틀었다.
<프레시안>은 이날 서울광장 서울도서관 앞에 부스를 마련하고 촛불 집회를 생중계했다. (생중계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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