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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 '지속가능한 차별'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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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 '지속가능한 차별'을 원하는가

[정희준의 어퍼컷] 지방은 안전한 공항을 가질 자격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차별을 많이 받아온 집단 중 하나는 '세상의 반'이라는 여성이다. 오랜 기간 여성들은 성차별에 저항했고, 그래서 지금 정부도 여성의 사회진출은 물론 국무위원 30%를 여성으로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차별이 당연시되는 집단이 있다. 서울과 수도권 밖에 거주하는 이들이다. 흔히 '지방사람'이라 불린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절반'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만큼의 대접은 언감생심이다. 서울분들이 사석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지방방송 꺼"에서 드러나듯 지방의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된다.

여성이나 지방인이나 대한민국의 절반인 것은 똑 같은데 왜 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간단하다. 지방인은 서울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존재적 현실은 엄청난, 그리고 치명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숫자로 치면 지방인에 한참 뒤지는 비정규직인들도 그들 다수가 서울에 존재하기에 무시당하지 않는다. 장애인, 철거민, 택시기사, 성소수자 모두 '서울사람들'이 있기에 이들이 목소리를 내면 중앙정부는 쩔쩔 맨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서울에 존재하느냐이다. 우리 사회 차별 당하는 집단들 중 유일하게 '서울사람들'이 없는 '지방사람들'은 결국 '지속가능한 차별'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구조적 차별, 논리적 차별

지역에 대한 차별은 구조적이다. 얼마 전 서울 서대문구의 KT 아현지사 화재사고로 인근의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 이 뉴스는 보름간 거의 모든 언론에서 머릿기사로 다뤘고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조사와 정부 대책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만약 이 사고가 청주에서, 나주에서, 그리고 부산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서울의 지역차별은 사뭇 논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서울은 요즘 GTX라 불리는 광역철도로 시끄럽다. 지방엔 꿈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좋고, 편하고, 비싼 시설은 왜 서울 주변에만 건설되나. 물론 '근거'가 있다. 바로 예비타당성 조사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구와 경제력이 작은 지역에겐 원천적으로 불합리한 제도다. 인구와 경제력에 의한 차별이다. GTX와 같은 '대규모 편의'는 인구가 많은 서울만 집중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 있다. 이러한 시스템에선 서울로 사람이 몰리고 기업이 몰릴 수밖에 없다. '서울 불패'를 위한 터닦이가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합리를 가장한 불공정'일 뿐이다.

지방인은 '2등 국민'인가

서울분들은 아실 리 없지만 지금 부산·울산·경남에선 미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시끄럽다. 바로 김해공항 확장 건이다. 부산의 관문인 김해공항은 비좁은 활주로와 터미널 때문에 주말이면 시장바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서 공항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올해 이용객이 1600만 명을 넘어선 김해공항은 2014년 1000만 명을 넘어선 이후 매년 20% 가까이 여객과 화물이 급증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금한령으로 중국 관광객이 급감한 중에도 국내 공항 중 유일하게 10% 이상의 여객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으로 예측됐던 2000만 명 달성도 2020년으로 10년이나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제선 청사의 수용능력이 (놀라지 마시라) 고작 630만 명이라는 점이다. 작년 확장공사까지 마쳤다는데 이 수준이다. 이런 비현실적 상황이 어떻게 가능한가? 지방이니 가능하다. 서울이면 이런 비현실이 현실이 되겠는가.

지금 국토부는 자꾸 김해공항을 확장해서 쓰라고 한다. 그러나 부산의 상공인들은 25년 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신공항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왔다. 내륙에 자리해 확장 여력이 없는 김해공항(확장)이 아닌, 가덕도에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고자 했다. 그런데 4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부산은 원하는 공항을 갖지 못하고, 국토부는 부산에게 계속 '이상한 공항'을 강요하고 있다.

위험하고 위험하다

20세기 후반부터 지어진 해외 관문공항 대부분은 안전과 소음 문제를 고려해 해안가에 건설됐다. 인천공항이 그랬다. 그런데 내륙에 위치한 김해공항은 수많은 산과 주거지 한복판에 있고 가까운 곳에 철새도래지 을숙도가 있다. 야간이나 악천후엔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이 공항의 위험성은 2002년 중국 민항기가 돗대산에 추락해 166명의 사상자를 냈을 때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다.

소음 피해도 부산과 김해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토부는 2716가구가 소음피해 대상이라고 주장하는데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은 그 열배가 넘는 3만4833가구라고 반박한다. 대충 십만 명이다. 검증단 조사의 세밀함은 차치하고 소음피해 가구 수를 이처럼 담대하게 축소해버린 국토부의 용기가 놀랍기만 하다. 국토부는 지방엔 귀 먹은 사람들만 사는 줄 아는가.

가장 기가 찰 노릇은 비행기 착륙 시 지상과의 이격 거리다. 새로운 활주로를 향해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는 임호산 위로 날아갈 경우 산 바로 위 135m 상공을 '스치듯' 날아가게 된다. <묘기대행진> 찍나. 착륙항로의 위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국토부는 그렇다면 활주로 방향을 3.4도 틀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3.4도를 틀어도 산악지역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경우 곧 건립예정인 아파트와의 거리가 143m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게 사람 쓰라고 만드는 공항인가

산에서 불과 135m 떨어져 거대한 비행기가 날아가고, 아파트 단지 바로 143m 위로 스치듯 비행기가 하강하며 착륙한다. 이 정도면 사람 얼굴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거리 아닌가. 이게 도대체 사람 쓰라고 만드는 공항인가, 사람 죽으라고 만드는 공항인가.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이렇듯 낮게 날아다니는 비행기 소음 때문에 김해비행장엔 이착륙 커퓨(금지시간)이 있다.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인데 실제로는 더 길다. 야간 이륙 후 비상시 회항과 비상착륙을 위한 시간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10시 10분 이후엔 이륙을 못한다. 그래서 김해공항에서 슬롯(이착륙 기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박 터지는 수준이 된지 이미 오래다.

슬롯이 없으니 비행기를 띄울 수가 없다. 지난 11월 오거돈 부산시장은 싱가포르까지 직접 날아가 직항노선 개설을 성사시켰다. 지방도시에게 해외 직항노선 개설은 엄청난 성과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합의는 곧 깨졌다. 싱가포르 항공사가 김해공항에서 필요한 슬롯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해공항은 군사공항도 겸하고 있어서 운영이 기형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얼마 전엔 경기도 오산에 있던 공군 기동사령부가 '부산시 몰래' 이전했다가 들키기도 했다. 이걸 귀엽다고 해야 할지. 어쨌거나 이쯤 되면 김해공항의 미래는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김해공항은 확장을 할 이유가 없는 공항이고, 확장을 하게 되면 기형적인, 반신불수의 공항이 될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주변이 산, 주거지,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확장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결국 대형여객기는 뜨고 내릴 수도 없다. 무엇보다 비행기와 승객 뿐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공항이 될 뿐이다. 사람 쓰라고 만드는 공항이 아니다. 쓸 수가 없는 공항이다.

지방은 안전한 공항을 가질 자격이 없다?

부산·울산·경남이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안전하고 24시간 이착륙이 가능한 공항이다. 그렇다면 가덕도에 만들면 된다. 큰 것도 아니다. 활주로 하나면 족하다. 건설비도 오히려 더 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김해공항 확장 총사업비가 5조9576억 원이라고 예상하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6600만 입방미터에 달하는 진입표면 장애물 절취 시 추가비용만 2조9000억이다. 한 공항 전문가는 "김해공항 확장 사업비와 활주로 1개의 가덕 신공항 건설비 간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가덕신공항 예상 건설비는 5조9000억 원이다.

그래서 오거돈 부산시장이 그랬다. "아니, 가덕신공항으로 결정하면 안전문제, 소음문제, 환경문제, 24시간 문제 모든 게 해결되는데, 도대체 그걸 왜 안 된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산의 민심이 들끓는 가운데 날아온 소식. 지난 20일 인천공항은 제4활주로 건설에 착공했다. 최종적으로 제3터미널과 제5활주로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2023년 수용능력 1억 명을 달성해 세계 3위 공항에 올라설 수 있다고 예상한단다. (거기는 말 하는 대로 될지어다.) 제2터미널 확장 포함 이번 사업에 투입하는 예산만 무려 4조2000억 원이다.

결국 이거였나? 인천공항 키워주기 위해 가덕신공항을 그토록 훼방 놓는 것인가?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앞으로 인천공항의 건설 노하우를 중동, 동유럽, 동남아시아에 이식하는 해외 사업도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 같은 나라인데 참 다른 세상이구나 싶다. 해외에 이식할 그 노하우, 동포와 먼저 나누면 안 되나?

인천공항의 성공은 지방을 죽인 대가로 얻은 피 묻은 성공이자 비겁한 성공이다. 참으로 국토부의 생각이 궁금하다. 왜 부산·울산·경남은 번듯한 공항 하나 가지면 안 되나. 남쪽 사람들은 안전한 공항을 가질 자격이 없나? 지방이 잘 되면 무슨 문제가 생기나? 아니라면 뭐 이런 건가?

"니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

차별은 왜, 언제 생기나

차별이란 차등을 두는 구별이고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그런데 이 차별은 언제 발생할까? 권력이 등장하면 곧 차별이 생긴다. 권력의 행사방식이 바로 차별인 것이다.

중앙정부와 국토부엔 권한이 있다. 그게 곧 권력이다. 그 권한의 행사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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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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