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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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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

[현안진단] 격동의 2018년, 평화와 번영을 연 첫 해

평화를 향한 전진의 해, 2018년

격동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후대의 역사서에 2018년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연 원년으로 기록되기 충분하다. 분단 이후 단 두 번 만났을 뿐인 남북 정상이 올해는 세 번이나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4월 27일 판문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공동번영의 봄을 함께 열어나갈 것을 다짐했다. 분단과 전쟁을 상징하던 판문점 체제에 종언을 고하고 평화공존의 신 판문점 체제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두 정상은 주변 강대국과 열정적으로 정상외교를 전개했다. 한반도 신 판문점 체제를 동아시아로 확대 정착시키는 데 난관이 있기도 했으나, 한반도 해빙의 기운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남북한과 함께 판문점체제의 또 다른 한 축인 북·미간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외국의 정상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나간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 전후로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베이징에서, 다롄에서, 그리고 다시 베이징에서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처럼 2018년은 최초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던 해이다.

이제 우리는 격동의 2018년을 보내며 차분한 연말을 맞고 있다. 기대했던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게 차분함을 더해주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러한 최초의 사건들이 추가적으로 있었더라도 흥분의 정도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1에서 10의 변화를 이끌어낸들, 그것이 가지는 변화의 실감은 0에서 1의 변화에서 나오는 것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전쟁 위협과 적대적 긴장관계로부터 벗어나는 혁명적 변화가 이루어진 마당에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실망할 것도 없다.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영부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반도 해빙이 만든 세계사의 새로운 흐름

문제는 한반도 해빙이 만들어낸 최초의 균열이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보다 심대한 결과들을 낳고 있다는 데 있다. 한반도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폭과 깊이는 남북한 사이에서 일어난 그것보다 훨씬 큰데, 워낙 큰 판에서 일어나는 변화여서 느낌이 둔하게 다가온다.

그 변화는 국제정치의 판이 바뀌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세계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양상으로 진화할 조짐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역사는 흔하게 있어왔고 지금 여기서 다시 이를 증명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국제정치의 판이 바뀌고 있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매기고 이에 중국이 반발하고 저항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그 기저에 흐르는 것은 향후 세계질서 재편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미·중의 패권 다툼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후세의 세계사 교과서에 2018년은 한반도 해빙과 동시에 미·중 패권 전쟁이 가시화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른바 탈냉전과 신냉전의 동시 발생이다. 그것은 전쟁과 평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동아시아 휴전체제의 이중성에 기인한 것이다, 다만 그 어느 쪽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올라가고 어느 쪽이 에피소드로 처리될지는 아직 모른다.

미·중 무역전쟁의 양상과 그 의미

미·중 무역전쟁의 기원에 중국의 군사굴기에 대응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응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일환으로 미국은 무역전쟁 확대로 중국의 군사력 건설 잠재력을 소진시키는 전략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미국의 패권이 압도적이지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어서 미국 단극체제의 종언과 다극체제 출현의 징후일 가능성이 더 크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에 가하는 압박을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엔 퇴로가 없다'는 생각이 중국에 팽배하다. 그러나 이러한 절박한 입장은 자신감의 발로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공세에 쉽게 양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갈등이 전면적 대립으로 치닫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국의 이중적인 태도는 위기의식의 발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아직 패권 장악에 나설 여유가 없다. 미국의 강경책에 맞서 러시아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접근해 오는 일본을 끌어안는 모습도 차기 챔피언을 노리는 절대 강자의 모습이 아니다.

먼저 숙이는 일은 없을 것처럼 기싸움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은 지난 12월 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에서 싱겁게도 '90일 휴전'을 선택했다. 애초 30분의 일정으로 잡혔던 두 정상의 만남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되었고, 그 절반을 북한 문제에 할애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과 한반도 문제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탈냉전에 대한 대응이 신 냉전으로 가는 진도를 늦추고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정점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강경책을 천명한지 두 달만의 일이다.

지난 9월 20일,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두 손을 잡고 높이 올린 장면은 2018년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상징하는 그림이 되었다. 그로부터 2주 후인 10월 4일 펜스 부통령은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에서 중국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사실상의 신 냉전선언이라고 보았다. 2017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 조롱하고 북한 파괴를 언급하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던 때로부터 1년 동안 쌓아 올린 평화의 프로세스가 2주 만에 위기에 봉착했던 것이다.

▲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 위치한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AP=연합뉴스

냉전, 탈냉전, 신 냉전의 교차와 상쇄

해방 직후 한반도 분단과 아시아 냉전의 동시 진행이 전쟁으로 귀착되는 결과를 낳았다. 1946년 3월 5일 처칠의 웨스트민스터대학 연설은 유럽에 '철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다고 해서 냉전의 개시를 알린 연설로 잘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서는 1946년 1월 예비회담이 열려 3월 20일의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 회담 실시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후의 역사는 한반도 분단 극복 노력이 세계적 냉전의 기운에 압살당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쟁이었다.

그 배경에 소련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해가던 미국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일임함으로써 강화와 독립을 앞당기려는 패전국 일본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국민당을 압도하며 대두하는 중국공산당에 대해 미국이 일본을 파트너로 삼아 동아시아 질서 재편을 꾀하고, 이에 소련과 중국이 화해 협력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거쳐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의 층위를 고려하면 지난 4월의 '판문점선언'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으로 시작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에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오래 안주해 온 국가들이 긴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변 국가들이 이 거대한 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로운 위기이기도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더 이상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불가역성을 웅변하고 있다.

2018년 들어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 일본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태도 변화가 동아시아 국제정치판의 거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숨은 지표이다.

합종연횡의 2018 동북아시아

우리가 남북 화해와 북·미 교섭에 눈이 팔려 있는 동안 중국과 일본이 관계를 개선하고 있었다. 10월 2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기업인 500명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시작된 중·일관계 개선은 2018년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흐름을 바꾼 또 다른 대사건이다. 트럼프 정권 들어 일본은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해서 미국과 함께 대중 포위망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6월의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일본은 미·일 동맹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더구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위치를 차지하는 인도의 태도가 모호했다. 이후 일본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협력할 뜻을 비치면서, 다분히 지정학적 고려에서 만들어진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경학적 맥락에서 재규정하고 중국 포위에서 중국 포용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대비하는 중국이 일본의 접근을 환영했다.

일본은 러시아에도 보험을 들고 있다. 러·일간의 영토 문제에서 기대 수준을 낮추는 것으로 푸틴 대통령의 현실적인 대응을 이끌어 내어, G20에서는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교섭단 구성에 합의하는 데 이르렀다.

중·러 간에는 밀월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보스톡 2018 훈련이 실시되었는데, 1981년 이후 37년만의 최대 규모로 실시된 이 군사훈련에 미국이 주도하는 림팩(RIMPAC) 훈련에 참가를 거부당한 중국이 처음으로 참가했다. 중·러관계 강화는 일본이 중·러 양국과 동시에 관계를 개선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실은 대립이 격화되는 듯 보이는 미·러관계도 관계 개선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헬싱키에서 '탈냉전 이후 최악'이라던 미·러 간의 정상회담은 기존 입장을 확인하며 냉랭하게 끝났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향후 미·러 관계를 기대하며 정상회담 성사 그 자체를 미국의 러시아 고립정책이 끝난 것으로 간주했다.

최근에 발표된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는 매티스 국방장관의 사퇴 이유로 거론될 정도인데, 미국의 대중 압박 카드가 줄어드는 가운데 새로운 카드로 러시아를 움직이려는 셈법이 작용한 결과로 읽히기도 한다. 전통적인 동맹국들과의 관계 유지로 더 이상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어려운 국제정치 현실이 여기에도 반영되고 있다.

요컨대 동아시아에 절대 강자가 없는 합종연횡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은 19세기 말 동북아시아를 전쟁의 시대로 만들었던 제국 간 패권싸움의 재현은 아직 아니다.

세계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한반도가 되기 위하여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니 킨들버거의 함정이니,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나 통용되던 말이 마치 국제정치 일반의 현실인 양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세계사의 변혁은 늘 주변부에서 일어났다. 앵글로색슨의 질서를 근대 이후 세계사의 주조로 만든 영국과 미국이 사실은 세계사의 오랜 주변이었다.

이와 같이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 온 것이 역사의 대세였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강대국 국제정치에 한반도의 현실이 좌우되었던 것 또한 이 지역 역사의 현실이기도 했다.

이제 이 뒤집어진 역사의 경로를 바로잡아 꼬리에서 몸통을 흔들 기회가 왔다. 이를 위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최초의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게 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북일 정상회담, 북러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세간에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두고 이런저런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북·미 교섭이 지체되는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쌓여 있을 수 있다. 12월 19일, 조총련이 발행하는 <조선신보>는 "아무리 시간을 지연시켜도 미국이 움직인 것만큼 조선도 움직인다는 비례의 법칙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하여, 미국의 추가 조치를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이틀 후인 21일 <로동신문>이 '최후승리는 신념의 강자들의 것'이라는 제목으로 전하는 기사는 올해를 김정은 위원장의 '비범한 신념과 의지가 최대로 분출된 참으로 의미심장한 승리의 해'로 규정하고, '세계정치 구도의 중심'에 선 북한에 세계가 격찬을 보냈다고 자찬하고 있다.

작년 마지막 '현안진단'에서 평화재단은 올해를 남북한 지도자가 '진검승부'의 해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진검승부에 나섰다. 한번 뽑은 칼을 칼집에 도로 집어넣는다면 북한이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다시 칼을 뽑을 기회가 오지도 않을 것이고, 설사 기회가 온다 해도 대처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것이다. 북한의 중단 없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지속이야말로 한반도가 세계사의 몸통을 흔드는 꼬리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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