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진행됐다는 게 지난 7월 10일 감사원의 세 번째 4대강 사업 감사 결과 발표를 통해 확인됐다. 2008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한 이후에도 언론과 시민단체 등은 끊임없이 4대강과 대운하의 연관성을 의심해왔다. 지금은 해직된 최승호 PD가 몸담고 있었던 MBC 'PD수첩'은 정부 내 비밀 조직인 '대운하 TF'의 그림자를 밟기도 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대운하 포기 발언'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 핵심 인사들은 대운하를 준비했다. 2008년 연말 예산 정국, 국회에서 '숨겨진 대운하 예산' 논란이 있던 와중에 내놓은 박 대통령 발언 뉘앙스를 잘 살펴보면 "믿어 보겠다"며 분을 삭이고 있는 심경이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긴장 관계에 있었음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현 정부 최대 사업이므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대선을 3일 앞둔 지난해 12월 16일 3차 TV 토론회)"라는 식이었다. 22조 원의 혈세를 강바닥에 쏟아붓는 동안, 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18대 국회 4년 내내 연말마다 국회를 '전쟁터'로 만든 4대강 예산 정국에서 침묵했다. 오히려 친이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선 측근들도 있었다. 정치적 이득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회동했다. ⓒ뉴시스 |
18대 국회를 전쟁터로 만든 '대운하 전초 사업', 그때 박근혜는?
돌이켜보면 4대강 예산 정국에서 매번 제기됐던 문제가 "숨어 있는 대운하 예산"이었다. 2008년 11월 당시 자유선진당 원내대표였던 권선택 전 의원은 "대운하를 겨냥해 숨겨놓은 것으로 의심되는 1조 원 정도를 찾아내 삭감하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찾아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삭감하는 데는 철저히 실패했다. 박희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된다. 그 건설 현장에서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질 때 국민들은 그것을 희망의 소리로 들을 것이다"라는 말로 '4대강 예산 밀어붙이기'에 정점을 찍었다. 그 '망치'가 '망치(亡治)'가 됐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4년 후에 확인하게 된다.
2009년 연말에는 더욱 심각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서 "4대강 사업은 대운하가 아니며, 앞으로 대운하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국회가 결의문을 채택하자는 처량한 제안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해 마지막 날 저녁 8시경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예산안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4대강 사업은 위장 대운하 사업"이라는 야당과 이를 부인하는 한나라당의 투쟁은 이때 정점을 찍었다.
바로 이 2008년과 2009년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친이·친박 할 것 없이 '대운하 전초 사업' 예산안 처리를 위해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찬성표를 던지기에 바빴다.
2010년은 조금 특별한 해였다. 이른바 '세종시 전쟁'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그해 6월 29일 세종시 수정 법안은 각종 논란 끝에 본회의에서 부결된다. 그리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8월 21일, 이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회담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불렸던 김재원 의원은 회담 분위기에 대해 "4대강 사업이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협조한다는 취지가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연말 역시 4대강 사업비와 관련해 여야는 충돌했고, 결국 한나라당은 직권상정을 통해 예산안을 처리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세종시 수정안 부결이라는 양보를 이끌어낸 박근혜 대통령의 '4대강 협조' 덕분일까? 2010년에만 4대강 사업 관련 예산 8조6000억 원이 통과됐다.
2011년도 연말 정국에서도 4대강 사업은 여전히 말썽거리였지만, 맥빠지는 일만 계속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상당 부분 완성시켜버린데다, 대통령 측근 비리 등으로 여야가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8월 정부 측이 밝힌 데 따르면 완공률은 70.2%에 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후, 상황은 변했다. 지난 4년간 국회를 전쟁터로 만들어왔던 그 모든 사업이 '대운하 전초 작업'이었음이 뒤늦게, 명백히 밝혀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있을 수 없는" 일인 "국민을 속이는" 일이 발생했고, 거기에 본인을 포함한 여당 의원들이 동원된 셈이 됐다.
4대강 사업에 대해 2008년 의심을 품는 듯했던 박 대통령은 2010년부터 '협조' 모드로 돌변한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 직후 4대강 사업을 다시 뜯어보기 시작했다. 지난 18대 국회를 돌아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는 속았던 것일까, 알면서 눈감았던 것일까. 분명치 않다.
세종시 파동 이후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협조했고, 지난 대선 직전 회동에서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지원'에 대해 본인은 부인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원 전 원장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은 분명히 드러난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침묵을 대가로 '정치적 이득'을 얻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부터라도 해야 할 일은 이명박 정부에 "책임"을 묻고, 4대강 사업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일이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지난 2012년 1월 1일 자로 정부 측이 주장한 데 따르면 4대강 본류의 일상적인 유지·관리비(기타 구조물 등에 대한 대수선비 제외)는 1630억 원이다. 대수선비까지 하면 2000억 원가량 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돈을 매년 쏟아부을 것인지, 아니면 보를 철거할 것인지 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4대강 사업에 "협조"한 박근혜, 찬성표 던진 친박
대구환경운동연합은 1일 성명을 내고 "7월 말 현재 낙동강 함안보에는 조류 경보가 내려졌고 상류로 합천창녕보, 달성보, 강정고령보, 칠곡보, 구미보 또한 경보 수준의 조류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심각한데, 대운하 전초 사업의 정리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국무총리실이 꾸리고 있는 '4대강 사업 조사평가위원회(평가위)'는 아직 구성도 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내건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약속에 기초한 이 평가위에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해온 환경단체나 민주당 측의 참여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4대강 사업 찬성 인사가 절반이나 포함된다. 조사 대상이 될 사람이 조사를 하게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대로 평가위를 최대한 빨리, 공정성이 담보되는 인사들로 꾸리고 활동에 들어가게 할 것인지 주목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와 주고받은 다음 대화(3차 TV 토론)는 다시 곱씹어볼 만하다.
문재인 : 4대강 사업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유지·관리를 위해서도 계속 수십 조의 예산이 들게 될 텐데 이미 투입된 22조에다가 그것이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그 점은 평가를 해야 할 것 같고요. 물론 저도 당장 (보의) 철거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수문은 상시적으로 열어서 수질은 회복시키고, 그것으로 충분한지, 보의 철거까지 필요한지 하는 것은 위원회를 통해서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고 국민들의 동의 하에 실시해야겠죠. 그 점에 대해서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박근혜 : 제가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박 대통령이 스스로 한 말을 실행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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