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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사기극, 대운하 비밀 프로젝트의 '충격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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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 사기극, 대운하 비밀 프로젝트의 '충격 재구성'

2009년 2월 13일, '왕차관'의 '비밀 전략'이 국민을 속였다

"국토부에서 이미 (4대강 관련 건설업자들의) 담합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이를 묵인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사실일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위 자료(4대강 사업 계획 수립 과정에서 경부운하를 추진하던 민자 컨소시엄의 역할과 관련된 자료)를 작성 및 보관하고 있던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담당자를 조사 확인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질병으로 사망한 상태였고, 담당자 소속 부서 상급자 등은 이를 모두 부인하는 상황이어서 사안의 경중을 고려할 때 이들 사무용 컴퓨터 일부를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봉인, 제출받아 위 자료의 출처 및 작성 경위 등 확인이 필요하였습니다."

<프레시안>이 단독 입수한 감사원 건설환경감사국 3과의 설명 자료 일부다(관련 기사 : [단독] 감사원의 낯 뜨거운 '4대강 감사' 자화자찬). 감사원 내부 직원들에게 직접 '4대강과 대운하' 관련 자료 발견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문제의 컴퓨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MP) 수립 중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보고 후 지시 사항을 정리한 내부 문건(기획단안, 중간 보고안) 등을 발견한 것"이라는 게 건설환경감사국의 설명이다.

"참고로 위 내부 문건들은 국토부에서 정식 공문서로 등록, 관리했던 것이 아니고 MP 수립과 관련된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일부 직원들이 비밀리에 파일 형태로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어서 지난 1, 2차 감사 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내부 문건을 입수한 이상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MP 수립 관련자들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준설, 보 설치 계획이 이상기후 대비뿐만 아니라 운하 추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비밀리"에 보관한 파일이 정권이 바뀐 후 발견됐다. 언제 발견했느냐 하는 것과 관련해 건설환경감사국의 설명을 그대로 믿기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지만, 이를 차치하고라도, '비밀 문서'에 의해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사업 전 단계였던 것이 확인됐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4년간 감춘 진실이 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것이다.

▲ 감사원이 확보한 MB 정부 국토부의 '비밀 자료'

국민 기만 과정…대운하의 재구성

민주통합당 김현 의원이 감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토부 작성 '비밀 문건'과 <프레시안>이 입수한 감사원 내부 문건 등을 통해 대운하 사업을 재구성해 봤다.

2006년 9월 '청계천 신화'의 실무자였던 서울시 공무원 출신(MB의 이른바 S라인 측근) 장석효 씨는 이명박 서울시장 퇴임 후 한반도대운하연구회를 만든다. 이곳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모든 불행이 싹튼 셈이다. 그리고 2007년 2월, 이명박 캠프 교수 모임 '포럼 푸른한국'이 연 '한반도 대운하 쟁점 대토론회'를 기점으로 대운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 공약으로 떠오른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21세기에 그런 운하를 파서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타당성이 있느냐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내놓기도 했었다. 청와대가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진행됐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두고 "속았다"며 몇 년이 지난 지금 '뒷북 반응'을 내놓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운하 공약을 내건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19일,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530만 표차. 압승이었다. 그 기세를 몰아, MB 인수위는 당선 열흘도 지나지 않은 12월 27일 현대건설 등 '빅 5 건설사'와 간담회를 열게 된다. '토건 대통령'의 탄생을 알리는 방식이기도 했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운하는 국민적 납득과 합의가 중요하다"고 애매한 화법을 구사했다.

이런 그의 '갈지자 언행'의 속에는 '대운하 추진 의지'가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의지'를 읽었는지, 2008년 1월 18일 국내 유수의 건설사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2008년 2월 5일, MB 인수위는 국정 과제의 핵심으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선정한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에서도 본격적으로 반대 운동을 전개한다.

2008년 3월 27일, 국토해양부의 내부 보고서가 처음으로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 "2009년 4월부터 대운하 착공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의 여론" 운운하던 MB 정부의 은밀한 곳에서 "대운하 비밀 조직"이 가동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이 일 때마다 정종환 전 국토부 장관 등이 "대운하 사업은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 접근한다"고 말하는 등 반대 여론을 의식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2008년 5월 23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연구원은 "국토부로부터 대운하 반대 논리에 대한 정답을 요구받고 있다"고 폭로했다.

논란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청와대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일단 보류하고 정부 내 논의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게 된다. 이후 2008년 6월 1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 반대 촛불 집회 등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려 있던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 감사원이 확보한 국토부의 '비밀 자료'

2009년 2월 13일, '왕차관'의 '비밀 전략'이 국민을 속였다

여운은 남았다.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라는 전제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7월 10일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 등을 토대로 보면 이때부터 '비밀 조직'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12월 15일 작성된 국토해양부의 내부 문건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에 따르면 MB 정부는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상당 사업을 '계속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2011년까지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것으로 계획을 마련하게 된다. 이를 통해 총 13조9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훗날, 수심 6m 확보를 위해 준설량이 늘어나고 보 건설 규모가 커지면서 이 비용은 22조 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2009년 2월 13일 자 4대강 살리기 기획단(이하 기획단)의 비밀 문건은 특히 흥미롭다. 이 문건은 "주요 쟁점 업무 협의 결과 보고"라고 돼 있다.

"BH(청와대를 의미)"의 박재완 정책수석(후에 기획재정부 장관)과 총리실의 오정규 국책 비서관, 박영준 국무차장(훗날 지식경제부 차관)은 이날 아침 11시 30분에 4대강 살리기 기획단에서 만난다. 오후 4시까지 장장 4시간 30분 동안 협의했다. 당시 자료 등을 토대로 볼 때, 정부와 청와대 사이에서는 일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등 '정권 실세'들은 수심 6m를 유지하는 '대운하 방안'을 줄곧 주장하고 있었으나, 정부는 수심이 너무 깊어지면 대운하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이날 협의 내용도 한반도 대운하안(최소 수심 6.1m), 국토부 안(최소 수심 2.5m~3m)에 관한 것이었다.

이 회의에서 박재완 정책수석은 "홍수 소통(강이 넘치지 않고 1초당 강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최대 수량)에 문제 없다면 국토부안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MB의 복심'으로 불리며 '왕차관'으로 군림했던 박영준 국무차장은 "한반도 대운하안은 지금 분위기로 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1단계로 국토부안으로 추진하고 경제가 좋아지고 경인운하 등으로 분위기가 성숙되면 대운하안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한다. 오정규 비서관도 "궁극적 목표(대운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는 동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국토부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MB 정부의 자타공인 실세들이 모인 이 협의는 중요하다. 최소 수심 2.5~3m로 준설하면서 점차 수심 6.1m를 확보한 후, 분위기가 성숙하면 궁극적 목표인 대운하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 이날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즉 '중재안'의 탄생이다. 실제로 이 협의가 있은 지 사흘 후인 2009년 2월 16일, 기획단은 '대외 주의'라는 라벨이 붙은 '4대강 살리기 추진 현황 보고'를 통해 "4대강 살리기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 가는 현시점에 대운하안을 추진할 경우 정부의 신뢰도 저하로 대운하는 물론 4대강 살리기도 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따라서 우선은 기획단안으로 추진하고 향후 여건이 조성되면 별도 사업으로 운하를 추진함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후 2009년 4월 8일 기획단의 '4대강 살리기 추진 현황 보고' 문서에는 "보 위치, 준설 등은 추후 운하 추진에 지장이 없도록 계획"한다고 돼 있다. 수심 6m를 확보해 배가 지나다닐 수 있게 한 후, 적절한 순간에 운하로 전환한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운하 포기 선언' 10개월 만에 교묘한 작업을 끝내고, 이 시점에 '운하 추진'을 확실히 결심한 듯하다. 다만 시점을 언제로 할지, 재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녹조 라떼' 탄생시킨 4대강 사업이 본래 '대운하 사업'이었다니…

이후 2009년 7월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MP)이 언론에 공개된다. MB 정부가 이를 통해 밝힌 핵심적인 내용은 "대운하가 아니라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것이었다. 10개월에 걸쳐 '대운하 전환 계획'까지 세워놓았으면서, 이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국민을 철저히 속인 것이다. 결국 MB 정부는 2009년 11월에 4대강 사업 첫 삽을 뜨게 된다.

2010년 1월 첫 감사를 시작으로 세 차례나 감사를 벌였던 감사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감사원 건설환경감사국 문서에 의하면 국토부는 "이상기후에 대비해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현재의 준설 계획(최소 수심 6m)으로 결정하였다고 답변하는 등 국토부 자료 협조 및 관련자들의 진술 확보가 곤란하여 그 원인은 (1차, 2차 감사 때) 밝히지 못했다"고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국토부의 '기망'과 감사원의 '무능'이 빚어낸 작품이다. '정치 감사', '부실 감사'로 불려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2013년 7월 31일 현재, 폭염 속에서 '녹조 라떼(낙동강 등지의 녹조 현상)'가 창궐하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 심지어 감사원까지 그 원인으로 의심하고 있는 게 바로 4대강 사업이다. 22조 원을 쏟아 부어 16개 댐급(級) 보를 만들어 물을 가뒀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인 4대강 사업이 개인의 정치적 욕심에 의해 추진된 '대운하 사업'의 전초 작업이었다는 것은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올해 7월 들어 낙동강 취수원 등지에서 발견된 녹조 ⓒ대구환경운동연합

▲ 올해 7월 들어 낙동강 취수원 등지에서 발견된 녹조 ⓒ대구환경운동연합

▲ 올해 7월 들어 낙동강 취수원 등지에서 발견된 녹조 ⓒ대구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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