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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활약 '국회 529호실 난입 사건'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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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대활약 '국회 529호실 난입 사건'을 아시나요

1998년엔 "문 따자", 2012년엔 '국정원 직원 인권 침해' 이율배반

우리 정치사에 '국회 529호실 난입 사건'이라는 게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 사건'과 일부 닮았다.

1998년 12월 31일, 새해를 하루 앞두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 40여 명을 포함해 당직자, 보좌진 등 총 100여 명이 국회의사당 529호실 앞 좁은 복도에 모였다. 몇몇 인사들의 손에는 망치와 끌, 드라이버가 들려 있었다. 1994년 마련된 국회 529호는 국회 정보위원회의 자료 열람실이었다. 여야 의원들이 들어가 안기부장(현 국정원장) 등에게 요청한 자료를 열람하는 장소였다. 안기부 연락관이 상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복도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한나라당은 당시 529호가 "사실상 안기부의 국회 분실"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당내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입장이 엇갈렸다. 온건파는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가 나섰다. 박근혜 부총재는 "문을 따고 들어가자"고 거침없이 강경론을 주도했다.

결국 박근혜 부총재의 말은 먹히게 된다. 한나라당 당직자인 임종석 총무국 부국장, 한일수 부장, 김의호 부장 등은 쇠망치와 끌, 드라이버를 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쇠망치로 내려치자 문이 부서졌다.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남경필, 이규택 의원 등 10여 명의 의원들이 부서진 문을 뒤로하고 529호실에 들어가 책상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십 건의 문건을 확보한 후 철수했다.

국회사무처는 다음 날인 1999년 1월 1일 "12월 31일 밤,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 당원 등 100여 명이 국회 정보위 529호실에 무단 침입해 기물을 부수고 국가 기밀 문서를 탈취해 갔다"며 검찰에 신고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이 정홍원 검사(현 국무총리)였다. 정 검사 주도의 수사팀은 8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 사건을 주도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단번에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 때 불거진 '총풍 사건'(김영삼 정부 안기부의 대선 개입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던데다, '세풍 사건'(국세청을 통한 이회창 후보 정치 자금 모금 사건, 역시 대선 개입 사건) 때문에 자당 소속 의원의 체포 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있었다. 그 외 여당(국민회의)이 10여 명의 비리 의원들에 대한 무더기 체포 동의안 처리를 요구하고 있어서,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4년여간 여야 의원들이 멀쩡히 사용해오던 국회 정보위 자료 열람실을 '안기부의 국회 분실'로 지목하고 쇠망치로 문을 때려 부순 것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부총재 시절 안기부(1999년 1월 국정원으로 개명) 등의 정치 개입 이슈를 제기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뒤쪽에 있는,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한나라당 선전물이 눈에 띈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2000년 4월 6일 오전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에서 서청원 당시 선대본부장이 박근혜 당시 부총재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문 따고 들어가자" 주도했던 박근혜, 폭로전 후 조작 의혹 일자 침묵

이 사건에서 박근혜 부총재의 활약은 "문을 따고 들어가자"는 여론을 주도한 데서 그치지 않았다. 1999년 1월 3일에는 기자들을 모아 놓고 "이(세기) 의원의 탈당 가능성과 함께 '상부 접촉 요망'이라는 내용까지 적은 작은 사찰 보고서가 있는데 이는 안기부의 정치 공작을 명백히 입증한다'고 폭로했다. 박근혜 부총재는 '문서 내용'만 공개하고 문서 자체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 폭로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상부'라는 말은 안기부의 조직적 사찰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황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당시 안택수 한나라당 대변인은 "(박근혜 부총재가 언급한) 이와 관련한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관련 부분이 누락돼 있어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폭로를 했는데 그 내용이 실제 문서에 '누락'돼 있다니, 곧바로 '조작' 의혹이 일었다. 박근혜 부총재가 문서 내용을 조작해 구두로만 폭로했다는 것이다.

당일 529호실 안에 들어가 직접 문서를 분류했던 홍준표 의원(현 경남도지사)이 박근혜 부총재의 폭로 내용과 관련해 쐐기를 박았다. 홍 의원은 <경향신문> 1999년 1월 7일 자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부총재가 주장한) 그 같은 내용의 문건은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고 말해 박근혜 부총재와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박근혜 부총재는 폭로전 후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개인 메모까지 '침탈'당한 안기부 국회 연락관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등의 언급은 없었다. 2012년 대선 직전,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던 박근혜 후보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다음은 1999년 1월 7일 자 <경향신문> 기사 내용 일부다.

박 의원이 지난 3일 기자회견 과정에서 불쑥 "이(세기) 의원의 탈당 가능성과 함께 '상부접촉 요망'이라는 내용까지 적은 작은 사찰 보고서가 있는데 이는 안기부의 정치 공작을 명백히 입증한다'고 주장한 뒤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해당 문건을 보긴 했으나 중간에 분실됐다는 증언과 아예 그 같은 문건을 보지 못했다는 주장이 엇갈리면서 조작 의혹 시비에 불을 댕겼다.

국민회의는 6일 "신경식 사무총장이 문서 유실로 둘러대고 있지만 이는 정치 사찰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부각시키기 위해 문건 내용을 조작한 것이 분명하다"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조작 의혹이 확산될 경우 자칫 치명적인 부담을 안을 것을 우려, 신 총장의 기자 간담회 등을 통해 "여권의 조작 운운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작태"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당일 529호실 내 문서를 분류했던 홍준표 의원은 "그 같은 내용의 문건은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고 언급,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다음은 같은 날 <매일경제> 기사 내용 일부다.

분명한 것은 박근혜 의원이 부총재가 된 후 당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안기부 문서에 '상부 접촉 요망'이란 문구가 들어 있다는 메가톤급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국회 529호에 난입하는 데도 주도적 구실을 했다.

국회 산업자원위 소속인 박 의원은 포항제철과 창원 산업 단지를 돌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얘기를 자주 꺼내기 시작했고, 의총장에서 제일 먼저 강경 투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한 국민회의의 6일 논평은 인상적이다.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외모이지만 정치 행태는 18년 장기 집권자의 검은 선글라스를 연상케 한다."


▲ 529호실 사건을 보도한 1999년 1월 4일 자 <한겨레> 지면

2012년 '오피스텔 사건'과 1998년 '529호실 사건'

결국, 김종필 당시 총리가 사건 발생 15일 만에 '유감'을 표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새누리당이 확보한 문건이라는 것도 대부분 증권가 사설 정보지(이른바 '찌라시') 복사본이거나, 신문 기사 스크랩 자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있는 점은 이재오 의원이 당시 확보한 자료를 대부분 공개했는데, 자료에 언급된 인사들을 보면 당시 여당이던 국민회의(22명), 여당과 공조했던 자민련(2명) 의원이 야당이던 한나라당 의원(20명)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야당 사찰'이라던 한나라당 주장과 달리, 안기부 자료에 오히려 여당 측 인사에 관한 내용이 더 많았다는 말이다.

이 사건으로 한나라당은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정치 공세'는 효과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1998년부터 '세풍 사건'에 연루된 서상목 의원을 포함해 10여 명의 체포 동의안에 대해 "단독 처리"까지 언급했던 여당(국민회의)이 한발 물러선 계기가 된 것이다. 한나라당 비리 의원 체포 동의안 처리는 그해 결국 무산되고 만다. '방탄 국회'라는 말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529호 난입 사건은 박근혜 부총재가 '야당의 주요 정치인'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다음은 <동아일보> 1999년 3월 1일 자 기사다.

박근혜 부총재는 '부총재'로서도 점수를 얻었다. 외유내강형인 박 부총재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판단에서는 매우 고집스럽다는 인식을 주위에 심었다. 박 부총재가 지난해 말 '국회 529호실 사건' 때 "문을 따고 들어가자"는 강경론을 주도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 (…) 대구·경북 의원들 사이에서 박 부총재는 벌써부터 강재섭, 이상득 의원과 함께 김윤환 전 부총재 이후 TK를 이끌어갈 '3인 후보' 중 한 명이다. (…) 일부 TK 의원들 사이에서 "내년 총선에서 박 부총재의 위력이 이회창 총재보다 센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기도 할 정도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민주당의 '국정원 직원 거주 오피스텔 급습' 사건을 두고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사건은 1998년 한나라당이 안기부의 '정치 개입'을 의심해 국회 529호실을 '급습'한 것과 크게 그 취지가 다르지 않다. 2012년에 민주당 역시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포착하고 이를 규명하기 위해 오피스텔을 '급습'했던 것이다.

초선 국회의원 시절 국회 529호의 문을 "따고 들어가자"고 선동했던 박 대통령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난해 박 대통령의 태도나 지금 박 대통령의 태도가 잘 와 닿지 않는다. 1998년 사생활을 침해당한 안기부 직원의 '인권'에 대해 박 대통령은 당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심지어 박 대통령은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폭로전에 앞장서다, 조작 의혹이 벌어지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정치적 이득까지 챙겼다.

무엇보다 1998년 한나라당이 제기한 안기부 사찰 의혹은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국정원 직원의 선거 개입은 검찰 수사 결과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2013년 현재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정국의 뜨거운 이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전혀 알지 못한다"며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15년 전 사건을 되짚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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