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26일 철도산업위원회를 열고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확정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방안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의 계획에 따르면 코레일 자회사가 운영하는 수서발 KTX는 2015년에 개통된다. 이 외에도 2014년까지 철도 물류 자회사를 만들고, 2015년에는 일부 적자 노선을 민간에 개방하는 방안이 담겼다. 2017년에는 코레일을 6개 회사로 쪼개 철도지주회사를 탄생시킨다. 철도노조와 몇몇 시민단체들은 이것이 '민영화의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지난 정부에서 철도 문제 해결을 위해 수서발 KTX 운영을 민간에 맡기는 방식의 경쟁 도입을 추진하였으나, 철도의 공공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이에 따라 정부는 철도 운영의 공영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쟁을 유도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현재와 같은 방식(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의 철도 민영화는 반대"라는 공약을 내건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명박 정부의 철도 민영화 정책이 "철도의 공공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등 새로운 방식으로 '박근혜식 로드맵'을 만들어가겠다는 논리다.
기초연금, 의료비 등 복지 공약 후퇴, 경제 민주화 공약 후퇴 논란에 시달린 박 대통령은 최근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공약을 뒤집었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외에도 국토부의 방안에는 2015년 적자 노선을 민간에 개방하겠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어, 후보 시절 내놓은 '철도 민영화 반대' 공약까지 뒤집었다는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 국토부의 KTX 쪼개기 강행으로 철도 민영화 논란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국토부, 민영화 위해 사상 초유의 회사 탄생시키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절차는 국토부가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코레일로 하여금 자회사 법인과 정관 등을 만들게 한 후 전체 지분의 '30% 수준'을 출자토록 한다. 여기에 국토부 등이 각 부처와 협의해 연기금을 끌어와 70% 수준의 나머지 출자를 성사시키게 된다. 수서발 KTX 자회사에 코레일이 '30% 수준'의 출자를 하는 이유와 관련해 국토부는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이 무산되면서 자본이 급감하고 부채 비율이 400%를 넘어가며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는 철도공사의 재무 여건을 감안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이어 "나머지는 공적 자금으로 지원하게 되며, 철도노조 등 일부에서 제기하는 (수서발 KTX 자회사의) 공적 자금 지분의 민간 매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민간 매각 제한에 동의하는 자금만을 유치하고, 투자 약정 및 정관에도 이를 명시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국토부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먼저 공공 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코레일이 30% 이상을 출자할 경우 공공 기관으로 지정된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를 피하기 위해 '30% 수준' 출자로 애매하게 명시했다. 실제 여형구 국토부 2차관은 "신설 회사를 공공 기관으로 지정하면 경영 계획이나 평가 등에서 규제를 받게 되므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공공 기관으로 지정하지 않고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 차관의 말에 따르면 코레일은 수서발 KTX 자회사 지분의 30% 미만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사상 초유의 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첫째, 이 회사는 공공 기관이 아니면서 민간 매각을 제한받게 된다. 둘째, 70% 이상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기관은 연기금 등 재무적 투자자일 뿐이다. 모회사와 '경쟁' 구도를 확보하기 위해 지분 30% 수준을 확보한 "코레일이 자회사의 경영에 간섭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할 경우, 누가 경영의 주체가 되는지조차 불분명해진다. 이와 관련해 철도노조 측은 "그렇다면 수서발 KTX 경영의 주체는 과연 누구라는 말인가"라며 "결국 국토부의 민영화 꼼수가 만들어낸 코미디"라고 지적했다.
셋째, 운영 과정도 문제다. 국토부의 구상대로라면 공공 기관인 모회사 코레일, 그리고 '모회사가 경영에 참여할 수도 없고 공공 기관도 아닌' 자회사 '수서발 KTX 회사'는 동일 노선에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 경쟁에서 자회사가 승리하면 모회사가 손해를 보게 돼 있고, 모회사가 승리하면 자회사가 손해를 보게 돼 있는 구조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형태의 구조는 없다(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위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두 회사가 경쟁적으로 운임을 깎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 김경욱 철도국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코레일과 코레일 자회사의 운임 경쟁을 통해 운임은 지속적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모회사와 자회사의 경쟁을 국토부가 주장하는 '독점 타파'로 볼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도 노정돼 있다.
이런 숱한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하려는 이유가 뭘까. 박흥수 객원연구위원은 "국토부가 아무리 복잡한 설명으로 본질을 숨기려고 해도 수서발 KTX 노선을 민관 합작회사에 맡기겠다는 것은 한국 철도의 중추인 간선을 민영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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