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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불신'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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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불신'이 문제가 아니다

[정욱식 칼럼] 북미관계가 풀리지 않는 '본질적인 이유'

한반도 정세는 2017년 극단의 위기를 딛고 2018년에는 극적인 반전을 경험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의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김정은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관계 역사상 최초의 정상회담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는 오히려 교착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흔히 북미 간의 '신뢰의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북미관계가 약 70년간의 적대 관계에 있었던 만큼, 신뢰 구축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두 가지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불신인가 이익의 불일치인가?

하나는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약 6개월 동안의 교착 상태는 70년간의 불신 관계를 고려할 때 납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북미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신뢰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해 7일 중국을 방문한 리용호 외무상은 "북미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북한 외무성의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역시 16일 담화에서 "뿌리 깊은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가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우리는 신뢰조성을 앞세우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단계별로 해나가는 방식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풀리지 않는 이유를 신뢰의 유무에서 찾는 것은 별로 맞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못하다. '신뢰의 부족'보다는 '이익의 불일치'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풀어야 할 절박한 사유와 기대 이익이 있다. 반면 미국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북한과의 적대관계에서 고착화된 이익에 대한 집착은 강하고 북한과의 평화관계 수립으로 얻게 될 이익은 막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근본 문제를 풀지 못하는 한 비핵평화 프로세스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북미관계를 '이익의 불일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1990년대 이후 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번번이 실패했는가에 관한 본질적인 원인을 규명할 수 있게 된다. 공교롭게도 한반도 정세가 근본적인 전환의 조짐을 보일 때마다 북핵 문제라는 것이 등장했다. 그리고 미국의 강경파들이 꺼내든 북핵 문제는 때로는 과장되고 때로는 실체가 모호했지만, 그 목적은 대부분 달성되기도 했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졸저 <비핵화의 최후> 참조하길 바란다.)

이는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북미관계의 교착 상태 원인을 찾고 향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하는 데에도 대단히 유용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에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반작용에 제압당해온 평화를 향한 작용

'이익의 불일치'라는 분석틀은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분석틀로도 이어진다. 기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한반도의 평화적인 현상 변경을 잉태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한반도의 현상 변경은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현상 속에서 익숙해진 이해관계의 전면적인 재조정도 잉태하게 된다. 여기서 한반도 '현상(status quo)'이란 1945년 이래 지속되어온 분단과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적 쌍생아(historical twins)인 정전체제와 한미동맹을 의미한다.

이는 곧 한반도의 현상을 변경하고자 하는 작용이 일어나면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반작용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여러 차례의 작용은 번번이 반작용에 제압당했다.

올해 들어 트럼프가 '한반도 피스메이커'로 간주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인들, 특히 백인 남성들의 추락과 '세계경찰론'을 신봉해온 미국 주류에 대한 반감은 '트럼프 현상'의 밑거름이었다. 그래서 그가 천명한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의 밑바탕에는 고립주의가 깔려 있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주류는 사드를 비롯한 주한미군에 대해 거의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 반면에, 트럼프는 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그리고 트럼프의 이런 의구심은 체화된 것이기도 하다. <비핵화의 최후>에 담긴 내용이다.

"트럼프가 소유주인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 들어가면 한국의 LG와 삼성이 만든 초대형 텔레비전이 건물 곳곳에 붙어 있다. 자신의 건물에 한국산 제품이 즐비한 것을 본 탓인지, 트럼프는 종종 한국을 '위대한 산업 국가'로 치켜세우곤 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한국산 TV를 통해 북한의 처참한 현실을 봤을 것이다. 그가 2017년 한국 국회에서 남한을 '천국'으로, 북한을 '지옥'으로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트럼프에게 주한미군과 사드 배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위대한 산업 국가'가 된 한국이 먹고 사는 것도 버거워하는 북한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현실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양자택일의 화법을 즐겨 사용해왔다. '미군을 빼거나 한국이 돈을 다 내거나.'"

하여 트럼프는 미국 주류에겐 '공포의 대상' 그 자체이다. 밥 우드워드가 <공포 : 백악관의 트럼프>라는 책에서 미국 고위 관료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행정적인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고 결론을 짓고, 익명의 현직 고위 관료가 자신을 "저항세력의 일원"으로 소개하면서 <뉴욕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낼 정도로 말이다.

놀랍게도 우드워드의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라가 바로 '북한(North Korea)'이다. 그만큼 트럼프가 북한을 "화염과 분노"에 휩싸이게 하는 것도, 주한미군의 철수를 야기할 수 있는 북한과의 대타협을 하는 것도 미국 주류에겐 공포의 대상인 셈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북미관계에 훼방을 놓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조차도 마음이 바뀌었거나 크나큰 착각에 빠진 것 같다. 그 실상과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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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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