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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억 배임 사주, 왜곡된 지면…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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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0억 배임 사주, 왜곡된 지면…견딜 수 없었다"

[인터뷰] <한국일보> 노동조합 정상원 비상대책위원장

"배임 횡령 장재구, 종신 콩밥 각오하라."

23일, <한국일보> 기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한국일보> 비대위 특보'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피케팅도 했다. 이날 오후 찾아간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 사무실. 수박이 놓여 있었다. "사진부가 보내왔다"며 몇 조각을 권했다. 무더위가 슬슬 시작되고 있는 참이다. 좁은 사무실에는 신문과 비대위 특보, 성명서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장재구 체제 10여 년, <한국일보>는 피멍이 들었다. 설립자 장기영 전 회장의 차남인 장재구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후 <한국일보> 회장에 오른 것이 지난 2002년이다. 이후 <한국일보>는 연속되는 악재에 시달렸다. 먼저 장 회장은 <한국일보> 경영권을 확보한 후 700억 원 증자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또 지난 2006년에는 중학동 사옥을 한일건설에 넘기면서, 건물이 완공된 후 싼값에 입주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했으나, 이를 팔아 200억 원 상당의 개인 빚을 갚았다.

지난 2011년, 이 같은 사실은 "왜 중학동 한일빌딩으로 입주하지 않고 있을까" 의아해하던 기자들에게 들통이 났다.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자 장 회장은 개인 자산을 팔아 200억 원을 <한국일보>에 돌려놓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아무런 조치도 없다.

회사만 어려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사이 "<한국일보> 지면 제작의 왜곡"이 나타났다는 게 정상원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원장의 지적이다. 필자들에게 원고료도 지급하지 못해 좋은 글을 소개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기자들의 열악한 급여 수준도 개선되지 못했다.

<한국일보> 출신 한 언론계 인사는 "1993년 이후 <한국일보> 사주 일가들은 기자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있다. 장기영 회장의 장남 장강재 사장이 세상을 떠난 후 동생들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기자들까지 라인을 만들고 편집국을 왜곡시켜 왔다. 그런 기형적인 사내 분위기가 쌓이고 쌓이면서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결국 족벌 사주들에 맞선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결단을 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장 회장을 고발하기로 했다. 장 회장은 기자들에게 고발을 당하는 수모를 자초했다. 회사 사주를 고발한 기자들의 뼈아픈 심경은 어떨까. 그런데 장 회장은 이영성 편집국장을 보직 해임하고 창간60주년기획단장으로 발령 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불이 붙었다. 기자들은 총회를 열고 99%에 가까운 의견으로 '이영성 편집국장 해임 반대' 의사를 확인했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기자들은 '회장의 불법 인사를 거부한다'는 성명을 <한국일보> 2일 자 1면에 실었다. 여기에 대해 사측은 '1면 바꿔치기'로 응수했다. 15일 자 지면 제작이 완료돼 멀쩡히 인쇄돼 나갔던 '박 대통령 광고업계 일감 몰아주기 지적에…공정위 납품가 후려치기 조사 착수'라는 단독 기사가 41판에서 갑자기 빠진 것이다. 사측은 기세를 몰아 21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이영성 편집국장 해고 통보 결정을 내렸다. 70여 명의 기자들이 사장실로 몰려가 항의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영성 편집국장 해고 통보를 사측이 슬그머니 취소한 것이다. 절차상 실수였다. 사측 역시 당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일보> 사측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정상원 비상대책위원장은 2000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정치부, 국제부, 사회부 등을 거친 중견 기자다. 그는 펜대를 놓고 지난 8일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그가 말하는 '<한국일보> 사태'의 진실은 무엇일까. <편집자>


▲ 정상원 <한국일보> 노동조합 비대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힘들지만 동력은 떨어지지 않는다…투쟁 와중에 특종도"

프레시안 : 21일 이영성 편집국장이 해고당한 것으로 안다.

정상원 : 어제(22일) 회사 쪽에서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는 취소한 상태다. 인사위를 열어 해고 통보를 했는데, 알고 보니 (해고는) 이사회를 거치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 인사위 결정 자체는 유효한 것인가?

정상원 : 그런 것 같은데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이영성 편집국장은 출근을 계속하지만 지면 제작에서는 빠져 있다. 지면 제작 시스템은 현재 (사측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하종오 국장 체제는 아니다.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사측이 편집국장 발령을 일방적으로 냈던 5월 1일 이전 체제로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다.

프레시안 : 신문 제작과 싸움을 병행하고 있는데 힘들 것 같다.

정상원 : 신문을 제작하는 게 가장 우선적인 일이다. 그리고 일과 시간 틈틈이 집회하고, 사장실 앞에서 항의 선전전을 한다. 오늘(23일) 아침에도 집회를 한 후 시민들에게 비대위 특보를 배포했다. 본연의 업무와 장재구 회장 퇴진 투쟁을 병행한다.

프레시안 : 여론의 관심도가 비교적 낮은 것 같은데?

정상원 : MBC나 YTN 사태 때보다 관심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게, 앞서 언급한 경우는 정권을 상대로 한 투쟁이었다. 일정 부분 관영 언론의 성격을 갖고 투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저희는 민영 언론이다. 쉽게 보면 회사 내부 노사 갈등 프레임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면의 편집권 관련 싸움이 걸려 있다. 그동안 <한국일보> 지면은 장재구 회장 체제에서 왜곡돼 왔다. 더 이상 저희가 견딜 수 없어서 고발을 한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 회사가 보복성 조치를 취해서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대단하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신문업계에서 보자면 MBC나 YTN 못지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정상원 : 내부 동력은 수치로 드러난다. 두 차례 투표가 있었다. 5월 1일 편집국장 해임 인사에 동의하는 4~5명, 그리고 현재 해외 출장자를 제외하면 기자 대부분이 투표에 참여했고, 99%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회장의 인사안에 반대했다. 신문 제작이나 취재를 하고 있는 중간 중간,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기자들이 회사에 열성으로 들어와서 총회에 참석하고, 선전전과 항의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21일, 인사위 저지 투쟁을 할 때도 7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왔다. 170명 정도의 기자 중 그 정도 인원이 참여했다는 것을 보라. 신문 제작의 퀄리티(질)도 떨어지지 않는다. 투쟁하는 와중에도 특종을 내고 있다.

프레시안 : 힘들지 않나?

정상원 : 일도 빠지지 않고 투쟁에도 열심이다. 모두 힘들다. 힘든 상황이지만, <한국일보>에 있었던 적폐를 씻어내고 역사적·사회적 책무를 다 하겠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강하다. 그런 부분에 모두 동의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동력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싸움을 이끌고 있다.

"장재구, 200억 돌려놓고 물러나면 된다"

▲ "장재구 회장이 회사에 200억 원의 손해를 끼친 것을 돌려놓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사측과 대화 채널은 있나?

정상원 : 해결을 하기 위한 것(대화 제의 등)들은 우리 쪽에서가 아니라 회사 쪽에서 먼저 나와야 한다.

프레시안 : 요구 사항은 뭔가?

정상원 : 장재구 회장이 회사에 200억 원의 손해를 끼친 것을 돌려놓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된다. 편집국장 해임 사태도 우리(노조)가 장재구 회장을 (배임으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에 온 것이다. 장 회장이 물러나면 인사도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일 회사 측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그것을 내놓아야 하고, 그러면 또 얘기를 해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장 회장이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을 의미하나?

정상원 : 장 회장은 배임 혐의로 고발됐다. 200억 원은 어찌됐든 돌려놓아야 한다. 개인 자산이 없다면 <한국일보>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 그 지분은 회사 사원들이나 회사 대표, 아니면 장재구 회장을 제외한 제3의 투자자 등 <한국일보>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 우리사주조합도 좋다. 방식은 (사측이) 제안을 해야 한다. 장 회장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부분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하고, <한국일보>에서 물러나야 한다.

프레시안 : 이른바 '1면 바꿔치기 사태'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삼성 계열 광고 회사인 제일기획이 관련돼 있어 사측이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상원 : 회사 측에서 공식적으로 그런 부분과 관련해 설명한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설명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삼성 기사든, 현대 기사든, 청와대 기사든 상관없다. 회사 밖에 편집국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바꿔치기를 한 것 자체가 문제다. 그게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편집권 침해 문제다. 회사에서는 자기들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하지만, 광고주 눈치를 보다가 일어나게 된 참사라로 보고 있는 시각도 있다.

프레시안 : 보통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가?

정상원 : <한국일보> 문제를 국회 문방위에서 다루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국회 법사위에서 다루겠다는 사람도 없었던 게 아니다. 우리는 <한국일보>라는 기업 내부의 편집권 독립 싸움을 하고 있다. 정권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 굳이 그쪽(정치권) 힘을 빌려서 한다고 해서 (싸움이) 더 잘될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길을 찾아서 간다. 그리고 정치권과 함께할 만한 부분도 없다. 이를테면 법사위에서 누군가 검찰에 '빨리 수사하라'고 해서 검찰이 더 빨리 수사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검찰은 비리 사건 자체에 대한 수사를 하면 된다. 현재 장재구 회장 배임 의혹 사건은 경제 범죄를 전담하는 형사 5부에 배당돼 있다. 최근 대기업의 행태와 관련해 경제 민주화가 많이 회자되는데, 언론사 사주라도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검찰 고발인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에서도) 언론 등에 나오는 내용들을 보고 있더라. 고발인 조사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수사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일보>를 바로 세우는 싸움이다"

프레시안 : 이번 투쟁의 의미를 설명한다면?

정상원 : 지난달 29일(노조가 장재구 회장을 고발한 시점) 이후 계속 총회를 하면서 얘기하고 있는 게 있다. <한국일보>가 바로 설 수 있는 길로 가도록 하기 위해 이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고발을 하게 된 계기 역시 회장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돈은 가져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 <한국일보> 지면 제작의 왜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일보>가 한국 사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이 훼손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종의 반성이 있었다. <한국일보>가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쳐왔지만, 회사 내부 문제에 있어서는 파헤치기보다 어떻게든 타협을 해보려고 했던 게 사실이다. 이 싸움을 시작했을 때, '우리가 지난 2년간 눈을 감아왔던 것 아니냐' 하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프레시안 : 족벌 언론에 맞선 싸움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상원 : <한국일보>는 비판적 중도를 추구해왔다. 우리는 그동안 자유롭고 공정하고 비판적인 지면을 제작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번 싸움을 한국 사회에서 <한국일보>의 역할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족벌 언론 사주에 맞선 싸움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던데, 그것은 우리가 내세운 목표라기보다 사람들의 해석에 가까운 부분이다. 가치와 정체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싸움이 끝났을 때 '족벌 언론 사주에 맞선 싸움'이라는 평가가 붙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목표는 불합리와 부조리를 바로잡겠다는 것, 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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