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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탈선, 악마는 준비 덜 된 자에게 반드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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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탈선, 악마는 준비 덜 된 자에게 반드시 찾아온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안전 비용은 헛돈이 아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우리 사회에서는 두 가지 풍경이 거의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두 모습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임과 동시에 앞으로 하루빨리 고쳐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두 풍경을 차례로 살펴보자.

풍경1
8일 2019년 정부 예산이 야 3당의 반발과, 쪽지 예산, 밀실 심의 등 비판과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법정 처리 기한을 훌쩍 넘긴 늑장 통과였다. 당초 정부는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으로 18조5000억 원을 편성했다. 한데 심의 과정에서 외려 1조2000억 원이 늘어 19조8000억 원으로 확정됐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일자리와 복지 등을 중심으로 5조2000억 원을 잘라냈다. 하지만, 지역구 민심과 직결되는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이나 산업 등의 분야에서 4조3000억 원을 늘렸다.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해(19조 원)보다 4.0% 늘어난 수치로, SOC 예산이 전년보다 증가한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풍경2
내년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던 바로 그날인 8일 토요일 아침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가던 KTX 열차가 출발 5분 만에 탈선해 이 열차에 타고 있던 198명의 승객 가운데 14명과 승무원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 기관차와 객차 10량이 탈선하고 전차선과 전차선 상부에 가설한 케이블인 조가선 약 100m가 끊어지고, 레일 약 400m가 굴곡 되는 근래 보기 드문 대형 열차 사고였다. 국토교통부는 선로전환기에서 열차에 멈춤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도 정상 진행 신호가 나가면서 열차가 탈선했다고 설명했다. 완전한 인재라는 것이다. 맹추위에 복구 노동자들이 밤새 고생한 끝에 사흘 만에 서울-강릉 선 열차가 정상 운행됐다.

잇단 대형사고로 국민의 불안감 커져가

강릉선 KTX 탈선 현장 사고는 지난 두 달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경기 고양 저유소 화재, KTX 오송역 단전 사고, 한국통신(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인한 서울 지역과 경기 일부 지역 등 통신대란, 고양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로 인한 인명사상 사고, 파주 정전 등에 이은 인재였다. 이처럼 사회기반시설에 잇따라 대형 안전사고가 일어나자 국민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같은 날 일어났던 두 이벤트, 즉 국회 예산 통과와 서울-강릉선 열차 탈선 사고는 어떤 연관이 있기에 나란히 소개했을까? 물론 연관이 있다. 우리 국회, 즉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도로와 다리를 놓고 지하철 내지는 경전철 등을 까는 일에는 열성을 다하고 열심히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홍보하는데 힘을 쏟는다. 하지만 정작 이들 사회간접자본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예산 배정에는 인식하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두 풍경을 나란히 소개했다.

많은 국민을 불안케 하는 최근 일련의 사고는 이익지상주의, 성과지상주의에 매몰된 우리 사회,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업과 정부, 정부기관들이 보여준 복지부동과 무책임, 안전 소홀이 가져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조직의 책임자들이 안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조직 관리와 경영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선 안전 관리 담당자들 또한 이런 조직 문화에 물들어 최근 대형사고로 이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일련의 대형 사고를 지켜보면서 3가지를 꼭 짚어보고 싶다.

첫째, 하인리히 법칙을 늘 상기하면서 안전관리를 해야 한다. 특히 안전과 관련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안전 의식 디엔에이(DNA)에 끼워 넣어야 할 것이다.

둘째, 안전은 심리다. 위험에 대한 인식은 심리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시급히 필요하다.

셋째, 안전에 투자 하는 비용은 결코 헛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의원과 정부, 기업 모두 이런 사고를 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SOC, 특히 노후화된 SOC 안전 관리에 비용을 긴급하게 투입해야 한다. 차례로 이를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하인리히 법칙-재난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아


첫째, 하인리히 법칙은 안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세부 분야와 직위에 관계없이 꼭 자신의 뇌리 속에 깊이 박아두어야 할 내용이다. 모든 재난과 위기의 88%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심지어는 자연재난조차도 많은 부분은 인간에 의해 그 피해 규모가 좌우된다.

잘 아시다시피 300:29:1 법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은 재난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300번의 징후와 29번의 경고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과 조직은 재난을 당해 위기에 빠질 것이고 그 경고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사람과 조직은 외려 성장과 함께 신뢰를 보장받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최근 두 달 사이의 사고들은 하인리히 법칙으로 해석해보자면 경고 이상의 사건들이다. 준재난 성격의 사건도 있었다. 재난이 발생할 토양과 심각한 경고가 이미 나올 대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이들 사고보다 더 큰 규모의 사고가 생긴다면 시민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신뢰까지 잃을 수 있다.

둘째, 위험 인식에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1970년대부터 폴 슬로빅(Paul Slovic)과 같은 저명 위험인지학자들을 통해 증명됐다. 미국의 피터 샌드만(Peter Sandman)도 위험은 위험요인(hazard)에 분노(outrage)가 보태진 것이라고 설파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이 안전하지 않을뿐더러 생명까지 앗아가거나 위협한다면 피해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분노가 확산된다는 것이다.

한번 분노가 확산되면 이를 수습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란조끼의 격렬한 반정부시위에서도 이것이 잘 드러난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나 2016~7년 국정농단 규탄 촛불시위 등을 통해서 분노한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이를 수그러들게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한 바 있다.

최근 일어난 KT 통신구 화재로 인한 통신대란, KTX 정전과 열차 탈선 사고, 열수송관 파열 사망사고 등은 거의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다. 누구나가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성격이었다. 이것은 사회간접자본 사고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 경고와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고가 또 터진다면 시민들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라 분노로 폭발하고 말 것이란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재난은 준비 덜 된 자에게 찾아가는 악마

끝으로 이익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사고방식을 뇌의 사고 영역에 있는 디엔에이에 단단하게 집어넣어 그 어떤 환경에서도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신앙처럼 모셔왔던 물신숭배주의, 천민자본주의 허물을 벗어내고 안전·생명우선이라는 메시아를 받들 때가 됐다.

이번에 국회가 SOC 예산을 정부 요구보다 더 늘린 것은 보기에 따라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물론 끼워 넣기로 확보한 SOC 사업이 지금 이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이었느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사회간접자본 예산 확대에 걸맞게 이들 안전 관리 분야 예산도 제대로 확보했느냐가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정부도, 국회도, 전문가도, 시민단체도, 시민들도 두 눈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1970~1990년대 우리 사회는 압축 고속성장을 해오면서 많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이상 된 노후 시설 등이 곳곳에 있다. 재난이 발생할 충분한 토대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재난은 그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한 자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두려운 악마처럼 다가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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