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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대표는 어쩌다 '투명인간'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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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대표는 어쩌다 '투명인간'이 됐나

[기자의 눈] '이건희 사면'에 또 물 먹은 집권당 대표

대한민국 집권 여당 대표의 발언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단독 사면이 확정됐다. 169석 집권 여당을 이끌어가는 정몽준 대표가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른 감이 있다"며 만류했지만 사면은 보란듯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당초 정 대표의 이같은 발언에 많은 이들은 의아해한 것이 사실이다. 그 자신이 현대중공업 대주주로써 이 전 회장과 같은 재계 유력 인사 출신이고, 체육계를 통털어 세계 최대 조직중 하나인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 아닌가. 그런 정 대표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인 이 전 회장의 사면 여론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앞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이 전 회장의 사면을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공언한 터라 정 대표의 발언은 여권 내부에서 더 논쟁적이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15일에도 "중요한 사회 지도자로서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한 것"이라고 '소신'임을 거듭 강조했다.

정 대표가 언급한 "중요한 사회 지도자"인 이 전 회장은 배임,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지 불과 4개월도 채 안된 상태다. 그는 형이 확정되기 전인 지난해, 재판 도중 IOC 위원 직무를 자진 포기했었다.

'재벌 이미지'를 상쇄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눈총은 있었을지언정 사회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친 정 대표의 발언을 대놓고 잘못됐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정 대표가 지난해 친형인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사면이 걸린 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사면제도가) 법을 위반하는 기업인들까지 도와주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던 적이 있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존재감' 사라진 정몽준

그러나 정 대표의 발언 이후 사면권을 쥔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발언에 '무게감'이 없었을까? '몽니'로 보였을까? 급기야 여권 핵심 관계자는 22일 "이 전 회장의 사면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재계 사기 등을 감안했을 때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사실상 사면장에 도장을 찍었다.

청와대가 정 대표의 발언을 가볍게 치부하고 내부 검토를 이어간 것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다. 많은 언론을 통해 활자화된 집권여당 대표의 발언이 순식간에 '휘발'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5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정 대표는 여야 당대표 회담, 그리고 다음 날엔 '이명박 대통령+여야 당대표 회담'을 차례로 제안했다. '파국'으로 치닿는 국회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시도였다. 야당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반응은 "처음 들어본다", "사전 조율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가 계획을 갖고 제안한 게 아니라 여당에서 나온 이야기인 만큼 청와대로서도 검토할 시간은 필요한 게 아니냐"고 되려 반문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파열음은 당 내에서 나왔다. 대표적인 주류 강경파 장광근 사무총장은 청와대와 이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는 "예산안은 대통령과 얘기할 것이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한데 이어, "원내대표 회담의 정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행보"라고 정 대표를 직격했다. 결국 3자 회담은 사실상 청와대의 거부로 무산됐다.

정몽준 탓인가?

집권당 대표의 발언이 이처럼 한없이 가볍기만한 정치현실. 원인은 어디 있을까?

대부분 정 대표의 '아니면 말고' 식의 소심한 태도를 1차 원인으로 지목한다. 더불어 한나라당에 입당한 지 갓 2년차가 된 정 대표의 당내 입지가 여전히 약하다는 한계도 거론한다. 거대 여당을 이끌어가는 당 대표의 자질과 리더십 문제로 보면 이런 지적들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정 대표 개인 탓으로 귀속시키는 건 편리하지만 근본적이지는 않다. 승계직 대표가 아니라 당당하게 선출된 전임자인 박희태 대표 시절도 당 대표의 존재감은 마찬가지였으니까.

당 내에서는 '돌격대'들의 의도적인 '정몽준 무시'가 눈에 띈다. 장광근 사무총장은 정 대표에게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역시 주류 강경파인 안상수 원내대표와 정 대표의 미묘한 갈등은 오래된 얘기다. 안 원내대표는 정 대표의 대표직 '승계' 자체를 불쾌해했다. 비공식석상에서 이같은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은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근본적으로는 '여의도 정치'에 관심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은 '여의도 정치'를 깔아뭉개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청와대 사람들은 말 잘 듣는 당 대표는 '거수기'로, 이따금 삐딱한 모습을 보이는 대표는 '허당'으로 만드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당 대표도 '바보'가 되는 마당에 일부 의원들이 혼자 혹은 삼삼오오 내는 목소리가 청와대 담장을 넘을 리 없다.

한나라당 황우여·강명순·김기현·김충환·남경필·원희룡·이경재·이혜훈·허천 의원은 지난 24일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예산안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성명을 냈다. 당내 재정통인 이한구 의원은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게 중요하다"고 했고 권영세 의원도 "이 대통령이 나서라"고 했다.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과 관련해선 판사 출신 이주영 의원이 "욕심이 나더라도 (이건희 사면) 이런 걸 자제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정 대표를 거들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라고 썼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부의 '돌격대'들만 장단을 맞추는 여권의 질서에서 이들은 죄다 정몽준 대표와 같은 '투명인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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