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단식 이틀째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적극적 자세를 주문했다. 손 대표는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다른 야당들의 '선거제도 개혁-예산안 처리 동시 합의' 요구를 거부하고 예산 협상을 타결시킨 데 대한 항의의 뜻으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손 대표는 7일 단식농성장인 국회 본청 내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대통령은 '연동형 비례제 하겠다'고 했던 대선 때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민주당과 대통령이 결단해야 하고, 한국당은 시대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지난 5일) 한병도 정무수석이 국회에 왔다 갔지만 특별히 보고받은 게 없다"며 "청와대 정무수석이 와서 조금이라도 양보된 의견,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긍정적 의견이 있었으면 보고되고 의논했을 텐데, 청와대는 꼼짝도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대표는 "청와대는 '그렇게 되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 '김정은만 빨리 왔다가면 좋겠다'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안 된다"며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답방으로 정치적 난국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손 대표는 예산 합의 주체는 민주당-힌국당인데 청와대를 겨냥한 배경과 관련해 "우리나라 정치 권력은 모두 청와대에 있다"며 "촛불혁명의 결과가 뭐냐. 정권 바뀌고 사람만 바뀌었지 그대로 모든 것을 청와대가 쥐고 흔들고 국회는 허수아비, 여당은 앵무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선거제도를 바꿔서 국회 의석에 국민 듯이 반영되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가 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지만, 청와대는 아직까지 손 대표 단식 등 선거제도 관련 문제에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예산안 심의로 국회에 대기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기획재정부 김 모 서기관이 입원한 병실을 찾아 "새벽까지 국가 예산 일을 하느라 애를 쓰다 이렇게 되니 대통령으로서 아주 아프고 안타깝다"며 쾌유를 빌었다.
손 대표는 이어 "어제 오전에 민주당-한국당이 짬짜미로 예산을 통과시키면 어쩌나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민주당이 한국당과 짬짜미를 하고 연대·합작을 하겠느냐'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냥 나타났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고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며 "어떻게 더불어한국당이 되느냐"고 비난했다.
손 대표는 단식투쟁 출구전략을 묻는 질문에는 "저는 출구전략이란 것을 고민해본 적 없다. 단식할 때는 죽겠다는 각오로 해야지, 적당히 어느 선에서 물러나서 빠져나갈까 하는 것은 없다"고 결기를 보였다. 협상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점이 어디까지냐는 질문에도 그는 "선거제도가 연동형으로 확실히 되는 것"이라며 "너무 (시간을) 끌면 도로아미타불 된다. 이 기회에 확실히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그대로 갈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이날 본회의를 앞두고 바른미래당을 포함한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마주앉았지만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선거제도 개혁 합의와 예산안 처리의 동시 이행을 주장했지만 양당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김 원내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도 진전이 없다"며 "우리는 계속 농성하고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대표는 야3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예산안과 연계시킨 것은 정치적으로 불리한 선택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단식하는 게 예산 편성 거부가 아니다. 거대 양당이 짬짜미로 예산 합의를 한 자체가 지금 가장 큰 현안인 선거제도 개혁을 거부하는 것"이라며 "야당이 힘이 없으니, 여당과 정부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예산안이니까 '연동형 비례제 안 해주면 예산안을 못 통과시키겠다고 한 것이지 예산을 억지로 걸려고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민주당이, 자기들이 얘기하는 '적폐 청산' 대상인 한국당과 저렇게 짬짜미 야합을 할 줄은 몰랐다"며 "양당제도의 폐해가 이번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싸울 때는 끝없이 싸우다가 이해관계가 맞으면 야합을 하니 다른 야당은 꼼짝도 못 한다"고 여당을 재차 비판했다. 그는 "이건 다른수가 없다. 예산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통과 전에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확실한 답안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의 기자회견 직후,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농성장을 찾기도 했다. 손 대표는 홍 원내대표에게도 "선거제도 개혁이 어느 정도 합의가 되고 나서 예산안을 통과시켰어야 한다. 그 정도 의석을 가졌으면 '선거제도 개혁을 언제까지 어떤 것을 하겠다'고 해서 예산안을 통과시켰어야지…"라고 지적했다.
이에 홍 원내대표가 "민주당은 정개특위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야3당이 합의한 (정개특위 위원장-간사 간 잠정)안에 대해 저희 당은 100% 동의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한국당이 '도농복합형도 논의하자'고 해서 그것은 저희가 수용하기 어렵다고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손 대표는 재차 "그랬으면 민주당이 야3당하고 합의한 것을 가지고 예산안을 통과시켜야지, 민주당과 한국당은 선거제도도 합의 못 하는데 예산안만 하자는 게 당면 정치 상황에서 맞는 얘기냐"고 비판을 이어갔다.
손 대표는 "정개특위에서 합의한다고 넘기지 말라. 이게 정개특위 사안이야. 정치적 사안이고, 원내대표 사안이고, 민주당 같은 경우 당 대표 사안이며 청와대 사안"이라고 홍 원내대표를 몰아붙였다.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을 믿어 달라"며 "빨리 (당 내에서) 논의를 하겠다. 이번 예산안 통과 불가피성을 이해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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