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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신 유행곡 '세월이야 가보라지'를 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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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신 유행곡 '세월이야 가보라지'를 부르면서

[기고] 노래 한 소절로 전한 인사

북에서는 '륙십 청춘, 구십 환갑'이라는 시대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처음 듣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보통나이를 쓰다 보니 내일이 형 팔순입니다.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기 바랍니다"라는 서울 동생 편지에, "팔순? 아냐! 난 미국식으로 79살, 70대야"라고 답장을 보냈다. 가수 이애란의 <백세 인생>에서도 70대엔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 아직도 나는 1년 열두 달이나 남은 70대라고 혼자 되뇌어 보았다.

그러지 않아도 3년 전 음력 설날에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 '진보의 벗'을 비롯한 후배들이 나에게 "미주 한인 사회와 한반도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에 헌신해오신 데 감사드린다"면서 '늘 푸른 청년상'을 안겨줬다.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나의 청춘은 이미 그때부터 저물기 시작했나 보다. 그래서 더 늙지 못하게 '청년 상패'를 안겨준 모양이다.

미국에서 정형외과 의사 수련을 마치고 모국으로 돌아가 후배들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으로 1970년 이 땅에 왔다. 생각했던 대로 돌아갔다면 오늘은 누이들, 동생네 가족들과 함께 했을 날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만 멀리 떨어져 살아온 지 48년이다.

물론 그동안 때마다 고국에 들락거려 왔지만 큰아들로서 아버님의 임종도 놓치고 허겁지겁 장례식에나 참여하면서 지내온 날들이 새록새록 되살아왔다. 형제자매들의 생일이나 경사에도 함께 해주지 못한 그 많은 날들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내 딴엔 뭐 좀 잘난 줄 알고 지내온 날들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 LA 시민사회에서 '늘 푸른 청년상'을 받은 오인동(오른쪽) 박사 ⓒ오인동

그러면서도 다음 날 해가 뜨면 바로 어제 그랬듯이 또 하루가 되풀이 되어온 무수한 날들이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아들과 딸이 이번 생일에 뭘 받고 싶으냐고 물어왔다. 그때 언뜻 내가 회원으로 있는 한국의사수필가협회에서 2년 전 펴낸 동인지의 제목 '버리고 갈 것들만 남아'가 떠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생일 전날 배달된 소포에서는 여러 색깔과 무늬와 두께의 양말들이 나왔다. 좀 머쓱했지만 요란하게 환히 빛나는 색깔들은 나를 젊게 해주었고, 두꺼운 양말은 매주 산행할 때 신고 갈 좋은 선물이었다. 이렇게 또 나의 새해를 맞았다.

그러던 생일 아침, "생일 축하 인사드립니다"라는 인사로 시작하는 주 유엔 조선대사관(북한대사관)의 리 참사관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축하 인사를 받고는 '북에서도 만 79세가 되면 팔순이라 하느냐' 물었더니, 그는 "옛 조선식으로는 오늘 팔순잔치를 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리 참사관은 "우리 로동당 시대 공화국에서는 '륙십 청춘, 구십 환갑'이라는 시대어가 태어났습니다. 요즘엔 백세 시대에 들어섰는데 박사님 구십 환갑 때 제가 술을 부어 올리는 기회를 가지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그는 "항상 청춘의 정열로 통일 애국운동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기 바라며 생신 축하 축배 부어 올립니다. 경의. 뉴욕에서 리00 올림"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축배 잘 들었어요. 분단 70여 년이지만 북에서도 우리 조상들의 예지에 따라 팔순 잔치를 한다는 얘기가 반갑네요. 특히 새 '시대어'를 언어학 박사 리 참사로부터 알게 되었으니 남녘에도 전파시켜야겠습니다"라고 답해 보냈다.

또 다른 대사관 직원으로부터도 이메일 연락이 왔다. 2008년 만났던 박 참사관이었다. 그는 "오 박사님, 80돌 생신을 축하합니다. 박사님 년세가 80이라는 이야기에 놀랐습니다. 쓰시는 글들을 보면 아직도 정열에 넘쳐 있습니다. 계속 후배들을 위해 좋은 말, 좋은 글들을 많이 해주시고 써주시기 바랍니다. 더욱 건강하시기를 바라며"라고 말했다.

2008년 유엔 조선대사관에서 만났던 박 참사관과의 인연으로 나는 매년 평양 의학대학병원에 가서 인공고/무릎관절수술을 북녘 의사들과 함께 하며 관절기 제작도 도왔다. 그런 인연의 그가 2년 전 미국 전담 대사로 부임해 와서 일하고 있다.

나는 그의 메일에 "오늘 저녁엔 나와 인연된 소중한 북과 대사관 여러분 모두가 남녘의 <백세 인생>을 들어보며 피로를 풀어 보자구요"라고 답해 보냈다.

그랬더니 또 다른 대사관 관계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안녕하십니까? 보내주신 전자우편들을 반갑게 보았습니다. 남쪽에도 '60 청춘, 90 환갑'을 노래하는 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국에서 널리 류행되는 노래 <세월이야 가보라지>를 들어보십시오. 흥이나고 젊음이 약동할 것입니다. 경의. 김00."

그는 2010년대 전반에 유엔 조선대사관에서 근무했다가 올해 미국에 부임와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이메일을 받아보고 북의 노래도 들어봤다.

나는 그에게 "제목부터 야속하게 쉬임도 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거부하며 도전하는 게 마음에 드네요. '황혼기도 청춘이니 세월이야 가보라지 우리 마음 늙을소냐 구십 환갑 노래하니 세월이야 가보라지', 아암, 그렇고말고. 난 이제부터 90 환갑날까지 계속 뛸 거야! 이 노래에 내 청춘이 되살아왔네요. 고마워요"라고 답을 보냈다.

그저 한 소절의 노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백세 인생>과 <세월이야 가보라지>을 통해 잠시나마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남녘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12월 정상회담을 온 겨레가 기대하고 있다. 2019년 새해에는 남과 북의 국민/인민들이 두 노래를 서로 바꿔 불러가며 손을 맞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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