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 남북은 어떤 나라 이름을 가져야 할까요? 지난 1992년 이후 정기적으로 남북을 오가면서 의학과 학술 교류를 진행하고 있는 재미 동포 정형외과 의사 오인동 박사가 최근 이에 대한 바람직한 답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오 박사는 통일된 국가의 이름으로 '고리', 로마자로는 'Gori'를 제안했습니다. 오 박사는 "단군조선 이래 우리겨레 역사의 대종은 추모(주몽)-대조영-궁예-왕건에 이르는 4대 '고리=高麗(고려)' 전통의 1400년"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고리'라는 국호를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인데요.
그런데, 왜 '고려'가 아니라 '고리'일까요? 오 박사는 애초부터 '고구려', '고려'라는 발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를 국내외를 아우르는 폭넓은 문헌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세 편에 걸쳐 오 박사의 주장을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통일조국의 이름은 '고리'로[통일 국호 제언]
① 105년 동안 하나의 이름으로 살지 못한 겨레② 한국, 'Korea'로 불리게 된 까닭은?
이러한 역사어원학적 연구를 진행하며 우리 선조들의 두 나라 이름인 추모(주몽)의 '고구리(高句麗)→고리(高麗)'와 왕건의 '고리'(高麗)를 오늘날 조국의 북이나 남에서나 올바르게 쓰지도, 발음해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당혹했다. 한편 우리 선조들이 2000년 전, '고구리, 고리' 라는 겨레말로 나라 이름을 정했다는 사실에 감동되어 더욱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시기에 서방세계가 부르고 쓰는 로마자 이름의 발음을 따라 우리 겨레 글로도 '코리아', '꼬레아'로 쓰자고 제언했던 꺼림칙함과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 겨레 역사에 뚜렷하게 존재했던 나라 이름들은 (고)조선, 부여, 가야, 신라, 고구리→고리, 백제, 발해, 고리, 조선 그리고 대한 등이다. 해방 뒤 조국의 남측은 상고사의 삼한(三韓)과 근대사의 대한(大韓)을 국명으로 채택했고, 북측 또한 우리 겨레의 상고사와 근대사의 나라 조선(朝鮮)을 국명으로 했다. 우리 선대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고)조선의 2300여 년, 추모의 고구리→고리가 신라, 백제와 함께한 700여 년(BC 37~ AD 668), 신라와 발해의 남북조 230년, 왕건의 고리 470여 년(918!1392), 이성계의 조선이 500여 년이었다. 그중 크게 보아 '조선'(朝鮮)과 '고리'(高麗) 두 나라 이름이 우리 겨레의 역사를 대변해 온 셈이다.
돌이켜 보면 중원의 패자 수·당(隋·唐)과 북방의 패자 동이족의 후예 고구리→고리가 맞서 동북아의 광대한 지역을 호령하던 선조들의 웅대한 얼에 대한 경외와 자부심이 치밀어 온다. 한편 신라가 외세 당을 끌어들여 '백제'를 짓밟고 광활한 '고리'의 영토를 당에 내어 준 것은 '통일'이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과 강토의 축소였다. 그나마 '고리' 멸망 30년 뒤에 '고리 사람 대조영'은 당의 압력으로 '발해'라는 국명으로 건국하고도 당과 신라에 대립하며 '고리'의 재건을 표방한 역사였다고도 볼 수 있다.
신라 말기 사회의 혼란에 견훤이 '후백제'로 분기했고, 다음 해 901년 궁예가 '고리' 재건을 시도한 가운데 918년 왕건이 옛 '고리'의 얼을 이어 건국했다. 왕건은 발해가 멸망하자 (926년) 그 유민을 포용했고 '후백제'와 '신라'를 통합해서 936년에 열국 시대를 마감하고 처음으로 우리 겨레와 나라의 자주통일을 이루었던 것이 바로 '고리'(高麗)이다.
500년 뒤 1392년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며 명(明)나라에 물어서 얻은 국명 조선(朝鮮)은 1897년 '대한'(大韓)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3년 만에 일본에 병합되었다. 그러고 보니 단군조선 이래 우리 겨레 역사의 대종은 추모-대조영-궁예-왕건에 이르는 4대 '고리=高麗' 전통의 1400년이라 할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우리 겨레가 지켜온 홍익인간의 얼이 담겨 있는 역사와 철학과 문화를 이어온 '고리' 유산을 더욱 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겨레 역사의 고증과 성찰을 통해서 얻은 성과를 남북 민족성원 앞에 내놓는다. 나라 이름조차 잃었던 35년 뒤에도 한 나라의 이름도 없이 지내온 105년이다. 앞으로 남북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또 대한과 조선을 하나로 하는 통일조국의 날에 역사적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겨레말, 겨레 글 이름은 '고리'를 채택할 것을 겸허하게 제언한다.
근현대에 쓰인 조국의 로마자 이름들
이렇게 제언하니 로마자 이름도 '고리'에 걸맞은 새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역사상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에도, 또 1897년 '대한'으로 개명한 뒤에도 로마자 이름을 정해서 쓴 적이 없다. 1948년 남북에 서로 다른 정부를 수립했을 때도 '대한'과 '조선' 이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로마자 이름을 지어 쓰지도 않았다. 서양인들이 우리 선조의 나라 고리(高麗)에서부터 시작됐던 국호인 'Corea'도 아닌, 'Korea'를 채택해 썼다.
조선이 서방세계와 처음 맺은 외교문서는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Treaty of Amity and Commerce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Corea)으로 즉 '고리'의 'Corea'가 쓰였다. 그러나 내용에는 'Kingdom of Chosen'(조선왕국)으로 썼다. 미국은 '조선'의 영문표기를 일본사람들이 써온 'Chosen'을 따라 썼다. 1883년 정부가 보빙사를 미국으로 파견할 때 'Tah-Chosun'의 'Minister Plenipotentiary and Envoy Extraordinary, Corea'(특명전권공사)라고 썼다. 정부는 '대조선', 국호는 'Corea' 라는 정립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었다. 조약의 상대국들은 각기 자국의 선택으로 영국은 'Corea'로, 독일은 'Korea'로, 러시아는 'Koreya'로 썼다.
1897년 조선 국왕 고종이 자주를 표방하며 청(靑)의 연호를 버리고 우리 고유의 연호 '광무'(光武)를 쓰며 왕을 황제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10월 16일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바꿨다. 이 결정을 각국 공사관에 한문 문서로 통고했다. 그러나 '대한'의 로마자 이름은 통고하지 않아서 미국은 'Taihan', 영국은 'Daihan', 독일은 'Tai Han(Gross Han)'으로 다르게 표기해 답신했다.
각국은 이런 표기와는 관계없이 전에 써온 대로 우리나라의 이름을 미국은 Korea, 영국은 Corea, 독일은 Korea, 프랑스는 Corée로 썼고 이에 대해 '대한 정부'도 지적을 하지 않았다. 즉 로마자 이름을 정식으로 정한 적이 없었다.
1910년 8월 22일 '대한국'은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맺었는데 1446년 세종대왕이 겨레 글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래 외교문서에 처음으로 한문이 아니고 한국문을 썼다. 일본은 일문으로 썼으나 영어 번역문은 없다. 그런데 일본은 7일 뒤 '한국병합에 관한 선언'의 영역문에서 "Declaration as to the Annexation of Korea to the Empire of Japan" 라고 썼다. 합병 이래 일본은 '대한'을 '조선'으로 개칭하고 '조선총독부'(Government General of Chosen)를 설치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대한'과 'Corea'도 'Korea'도 함께 잃어 버렸다.
1919년 3.1 항일투쟁 때 독립선언서는 'The Decl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라 썼다. 이어 중국에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영어 명칭은 상대국과 시기에 따라 'Provisional Government of Corea' 또는 '… of the Republic of Korea'로 썼다.
1948년 북위 38도선 이남에서는 'Republic of Korea', 이북에서는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라는 로마자(영어) 이름의 두 정부가 출범했다. 1991년 UN에 가입한 남은 ROK, 북은 DPRK라는 약칭으로 불리고 또 쓰고 있는 오늘이다.
로마자 이름의 역사언어학적 고찰
서양인들이 처음으로 1500년대 초에 우리 선대의 나라 '고리'(高麗)를 가장 가깝게 로마자로 표음해 쓴 단어는 'Gori' 이다. 그러나 통일조국의 로마자 이름은 역사적 성찰뿐 아니라 언어학적으로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겨레가 '고리'라고 발음하면 서양인들은 보통 'Gori' 라고 표음해 쓰지 'Kori' 라고 쓰지 않는다. 한편 라틴어계 민족의 경우 'Cori' 라고 표음도 하지만 발음은 'ㄲ'과 비슷한 소리로 들린다. 반대로 서양인들에게 'Gori'를 발음해 보라고 하면 우리겨레가 발음하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고리'라는 발음이 들려 온다.
2005년 이래 남북은 공동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사전의 성격상 남북의 로마자 표기법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공동작업으로 단일법이 마련되는 날을 기대한다. 현행 남북의 로마자 표기법에 의하면 "단모음 'ㅗ' 는 남북이 로마자 'o'로, 'ㅣ'는 'i'로 적는다고 되어 있다. 자음의 경우 파열음 'ㄱ' 은 남은 'g, k '로, 북은 'k, g'로 적고, 유음(북의 유성음) 'ㄹ'은 'r, l' 로 적는다. 이 법칙을 따라 단어를 쓸 때 'ㄱ' 은 모음 앞에서 남의 경우 로마자 g로, 북의 경우 k로 적는다. 그러나 순수음역 표기 같은 경우에는 g로 적고, 'ㄹ'은 모음 앞에서 'r'로 적는다.
예로 '고사리'를 외국인들의 발음을 위해 음역할 때 'gosari'로 적는다. 이런 예로 남에서 '구리'는 'Guri'로 적는데 고유명사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적는다. 이 표기법에 따르면 우리 겨레의 선대 나라 이름 '고리'는 남에서는 'Gori', 북에서는 'Kori'로 적겠지만 이런 순수음역 표기로 겨레말 발음에 가까운 표음인 'Gori'로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음성학에 의하면 우리 겨레말, 겨레 글 '고' 의 'ㄱ'은 안울림 소리(무성음)이다. 무성음은 목청(성대)을 울리지 않기 때문에 맑은 소리(청음)이다. 그런데 로마자의 'g'는 목청(성대)울리며 내는 유성음이기 때문에 맑지 않은 탁음이다. 한편 로마자 발음 'k'는 우리말 'ㅋ'와 같은 무성음 이어서 맑은소리이다.
그래서 'Gori' 의 'g' 는 서양인들에게 유성음이고 탁음이지만 우리 발음 'ㄱ'도 'ㅋ'도 무성음이고 청음이다. 오늘날 우리 겨레에 유성음은 없다고 한다. '고리'를 'Cori'나 'Kori'로 표기하면 '코리'로 들려 온다. 나는 우리 겨레의 발음이 서양인들로부터 달라진 발음의 고유명사인 나라 이름으로 듣고 싶지 않다. 즉 '고리'는 '고리= Gori'로 듣고 싶다.
그런데 이 표기들 중 어느 하나를 택하더라도 라틴어의 특성에 따라 나라 이름 끝에 'a'를 붙여서 'Goria, Coria, Koria' 로 쓰는 것에는 반대한다. 나라의 주인인 우리 겨레가 '고리' 라고 두 글자로 말하는데 서양인들이 '고리아. 꼬리아, 코리아'라고 세 글자로 다르게 발음하는 것을 우리 겨레가 불편하게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세계에는 라틴어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가 라틴어식 접미사 없이 나라 이름을 쓴다. 특히 나라 이름 같은 고유명사는 그 나라가 결정하고 선포한 데 따라 읽고 또 쓰는 것이 원칙이다.
남과 북 어느 쪽이 무력이나 흡수통일을 이룬다면 그쪽의 이름을 따르게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평화로운 합의통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조국 통일을 이루는 새 나라에 겨레 글 이름을 채택해 쓰는 데 논란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자 이름에 대해서는 이미 써온 Korea로 계속 하자거나 원조 격인 Corea로 바꿔 쓰자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겨레 글로도 '대한'과 '조선'을 융합한 이름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관용어가 된 '고려'를 쓰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새 겨레말 겨레 글 이름을 정하고 그에 걸맞은 로마자 이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 겨레가 지켜온 홍익인간·재세이화의 얼이 담겨 있는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고리'의 전통을 승화시키는 데에 남과 북은 동의할 수 있다고 이 재미동포는 믿는다. 그래서 통일을 이루는 조국의 로마자 이름은 겨레말 우리글 '고리'를 가장 가깝게 표음하는 'Gori'를 제언한다. 결정은 '남북연합방' 시기에서 '연방기'를 거쳐 가는 과정에서 남북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합의 아래 결정하면 될 것이다.
분단 70년과 한 나라로서의 이름도 없이 살아온 우리 겨레의 부끄러운 105년을 맞으며 남북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쓸 수 있는, 또 '대한'과 '조선'을 하나로 하는 통일조국의 겨레말 겨레 글 이름을 '고리'로, 로마자로는 'Gori'를 제언 한다. 온전한 새 나라의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우리나라 이름 '고리-Gori' 를 우리 후손만대에 물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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