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교육부가 나섰다. 지난 11일 '사배자 전형'에 대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의 핵심은 '사배자 전형' 중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에 소득 8분위 이하 가정의 자녀만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것이다. 소득 8분위는 월 소득 558만 원(연 소득 환산 6703만 원) 이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올해부터 한국장학재단이 국가 장학금을 소득 8분위 가정의 학생에게까지 지원하도록 한 점을 참고했다는 설명이다. 전체 입학 정원의 20%를 '사배자 전형'으로 채우는 규정은 유지하되, 명칭을 바꿔 '사배자 전형'을 '사회 통합 전형'으로, 경제적 사배자 전형은 '기회 균등 전형'으로,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은 '사회 다양성 전형'으로 변경한단다.
▲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과 관련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훈국제중학교. ⓒ연합뉴스 |
탈 많은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은 왜 없애지 않는 것일까?
'사배자 전형' 악용 사례에 대해 국민 여론이 워낙 안 좋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근본적으로 개선할 생각과 의지는 없고, 뭔가 바뀌었다는 모양새는 취해야 하겠고…. '변죽 울리기'를 위해 교육부가 참 고민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행간을 읽어보니, 일단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전형적인 미봉책이요, 조삼모사식 탁상행정인 것을!
전체 20%에 해당하는 '사배자 전형'에서 절반 정도는 '경제적 사배자'에게, 나머지 절반 정도는 '비경제적 사배자'에게 할당한다는 것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부모 소득에 제한을 두는 '조건'을 제외하고 생각해보자. 지금처럼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으로 50% 입학할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는 여전히 열려 있게 된다. 물론 교육부의 안대로 시행된다면, 재벌가 자녀나 국회의원의 자녀가 사배자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효과에 그칠 뿐, 악용 소지를 원천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예를 들어, 부유층 부부가 이혼하면서 아이의 양육권을 어머니에게 맡기면(양육비는 이혼한 아버지에게서 받으면서), 그리고 어머니의 실질 소득이 월 558만 원 이하라면 얼마든지 '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다. 이번 개선안이 유리지갑이라는 월급쟁이들에게는 '꼼짝 마라'가 되겠지만, 소위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들과 일부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축소해 지원하는 편법과 꼼수가 횡행할 우려는 여전히 있다. 또한 거짓 이혼과 위장 입양은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지나친 기우일까? 외국인 학교 입학을 위해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 국적을 불법 취득하는 것이 우리 사회 '상류층'이라는 인사들의 '교육관'이다. 그물로는 작은 고기는 잡지만 큰 고기는 잡을 수 없다는 말처럼, 이 정도 대책으로 어떻게 '특권을 이용한 반칙'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래서 미봉책이요, 임기응변이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개선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사립학교인 해당 학교측 입장에서는 여전히 돈이 되는 '비경제적 사배자'를 많이 뽑으려 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경제적 사배자는 또다시 '불청객', '찬밥', '들러리'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악용 소지가 여전히 있다는 것을 모르고 교육부가 대책을 내놓았을까? 아니라고 본다. 이제 더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얄팍한 눈속임 정책은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공사 실명제처럼 교육 정책에도 '정책 실명제'가 필요하다. 그래야 책임 있는, 영혼 있는 정책이 나올 것이다.) '사회 통합 전형', '기회 균등 전형', '사회 다양성 전형' 이름은 참 그럴듯하다. 그러나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가?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호박에 줄 긋는 식의 화장술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사회 통합을 해치는 '사회 통합 전형', 기회 균등을 빼앗는 '기회 균등 전형', 사회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는 '사회 다양성 전형'이 될 게 뻔하다. 교육부의 대책에서 '구호'와 '결과'가 따로 놀았던 제5공화국의 '정의사회 구현'이나 이명박 정부의 '공정한 사회'를 떠올리게 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까?
설립 취지 망각한 학교들 '설립 취소' 해야 맞다
사배자 악용을 막는 방법은 고민할 것도 없이 아주 간단하다.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을 폐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부유층이나 특권층의 악용 소지가 원천 봉쇄된다.
원래 '사배자 전형'을 도입할 당시에는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라는 게 아예 없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학생들이 학비 부담이나 차별이 두려워 국제중과 자사고 등 특수목적학교들의 '사배자 전형'을 외면하자 사배자 전형의 정원이 미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 사배자를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교육 당국과 해당 학교들이 한 행동은 어땠나? 기다렸다는 듯 은근슬쩍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을 만들었다. 누가 봐도 편법이자 꼼수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학생들이 경제적·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학교에 잘 다니게 해준다는 믿음, 그리고 진정성을 교육 당국과 해당 학교가 보여준다면, 그런 학생들은 지난 2009년 처음 사배자 전형이 도입됐을 때처럼 차고 넘치게 지원할 것이다.
이번 대책은 사배자를 두 번, 세 번 울리는 정책이다. 교육 당국과 해당 학교들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래 약속대로 사배자 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에게 학비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수업료뿐 아니라 각종 부대 비용까지 지원을 해야 마땅하다. 위화감, '왕따', 차별, 이런 아픈 말들을 떠올리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기를 펴고 당당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심리적인 배려까지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기회 균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공평한 사회'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정책이 바른 교육 정책 아니겠는가? 해당 학교는 그럴 자신이 없으면 스스로 일반 학교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는 교육적인 안목과 교육적인 논리로 영혼이 있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교육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럼에도 특수목적학교를 지금처럼 사립에 맡기는 것은 국가의 책무가 아니다. 이번에 설립 취지를 망각한 학교들은 과감하게 설립 취소를 단행해야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특수목적학교가 필요하다면 육사나 경찰대처럼 국가가 직접 국공립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 편이 그나마 부작용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 새 장관은 이전 정부와는 달라야 할 것이 아닌가? 제발 국민들을 바보로 보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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