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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샌더스'인가, '실패한 트럼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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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샌더스'인가, '실패한 트럼프'인가

[기자의 눈] '이재명 사건', 촛불 배반 아닌가?

안희정-문재인-이재명 삼각편대는 철벽같았다. 안희정은 보수층에서도 호감도가 높았다. 진보정당만큼 선명한 이재명은 민첩하기까지 했다. 2017년 5월 9일 밤, 세 사람이 광화문에서 다짐했다.

"함께 경쟁했던 후보들과 미래를 위해 같이 전진하겠습니다."(문재인)
"문재인의 나라, 국민의 나라, 진정한 민주국가를 위해 이재명도 함께 문재인 정부를 성공으로 이끌어가도록 하겠습니다."(이재명)
"문재인 대통령 5년을 우리가 함께 지켜냅시다."(안희정)

그렇게 시민들은 안희정, 이재명이 축복하는 새 대통령과 '촛불 정부'의 출범을 밤새는 줄 모르고 즐겼다.

박근혜 탄핵에 동참한 정당들이 새정부 구성에 참여하는 촛불 연정은 한국적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문재인-안희정-이재명 사이의 경쟁과 연대가 좌와 우, 급진과 중도가 뒤섞인 촛불 민의를 민주당으로 수렴시키는 효과를 냈다. 대선 정국에서 안희정의 존재감은 안철수‧유승민과 대치한 민주당의 오른쪽 경계를 지켜냈다. 박근혜 탄핵 정국과 촛불집회에서 전국적 스타가 된 이재명의 부상은 보다 드라마 같았다.

외신들까지 이재명을 조명했다. 2016년 말 블룸버그 통신은 이재명 인기의 원동력을 '기득권에 대한 분노'라며, 이는 미국 대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현상을 닮았다고 분석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탁월한 대중 소통 능력은 도널드 트럼프에 빗댔다.

'한국의 포퓰리스트'라는 부정적 꼬리표도 달았지만, 한국 정치의 타락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이재명을 매개로 폭발했다는 진단은 적확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후 자신의 책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성공한 샌더스가 되려고 한다"고 썼다.

야심만만한 인물들 중심의 여권 내부 연합은 헐거웠다. 정부 출범 열 달 만에 한쪽 날개가 꺾였다. 반듯한 사람 같던 안희정 전 지사는, 알고 보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부터 자신의 비서를 상대로 수차례 성폭력을 일삼아온 파렴치한이었다. "모두 다 제 잘못"이라며 성폭력을 시인하고 정계은퇴를 하더니, 돌연 자기는 죄가 없다며 안면몰수, 여태 재판 투쟁 중이다.

스스로 몰락한 안희정 전 지사와 달리, '이재명 사건'은 권력관계가 결부된 '복잡계'다. 누군가는 노무현 정부 초기 민주당 분당의 도화선이 됐던 '난닝구(구파)-빽바지(신파)' 논쟁을 연상한다. 열혈 지지자들 사이의 충돌, 맺지도 끊지도 못하는 당 지도부, 예상되는 자해적 결말이 닮았다는 것이다. '혜경궁 김씨' 사건을 선관위에 최초 고발한 전해철 의원도 사태가 이 지경으로 치달을 줄은 몰랐을 것이라고들 한다.

2017년 5월 9일 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확정 직후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인 민주당 대선주자들 ⓒ 프레시안(최형락)

열혈 지지층 충돌한 내전, 정치적 해법 있나?

이 사건의 사법적 쟁점은 간단하다. '정의를 위하여(@08_hkkim)' 트위터 계정주, '혜경궁 김씨'가 이재명 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냐 아니냐만 가리면 된다. 즉, 문 대통령을 '문어벙이'로 칭하며 "대통령 되면 노무현처럼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 등, '문팬'들이 보기에 대역 불경죄를 저지른 SNS 막말꾼이 김 씨냐 아니냐다.

현재까지 수사로 드러난 정황 증거는 이 지사와 김혜경 씨에게 상당히 불리해 보인다. 그렇다고 경찰과 검찰이 결정적 증거를 찾아 낸 건 아니다. 트위터 본사는 "개인정보 및 보안상의 이유로 개별 계정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는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검찰이 이 지사 자택을 압수수색했지만 김혜경 씨가 사용하던 휴대폰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검찰은 내달 13일 께 기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기소는 본격적인 법적 공방의 시작일 뿐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유죄 선고다. 언제까지 구경만 할 수 없는 민주당에 공이 넘어간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적어도 12월 13일까지는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때 가서 저희 당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기소 여부를 준거로 이 지사 문제에 관한 민주당의 입장을 정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명백한 물증이 드러나지 않은 법적 공방과 맞물려, 민주당이 쓸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은 별로 없다. 본인이 아닌 아내의 사건인 데다, 혐의만 가지고는 출당‧제명 조치는 물론이고 당원권을 정지시킬 규정도 민주당엔 없기 때문이다. 지지자들 여론에 떠밀려 당이 공천한 현직 도지사를 칼로 무 자르듯 내치면, 그런 사람을 공천한 책임론이 민주당에 다시 돌아온다.

민주당은 이 시장이 억울하더라도 스스로 거취를 판단해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이 지사는 "죽으나 사나 민주당원"이라며 "절대 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어놨다. 제 발로는 당을 떠나지 않겠다는, 장기전을 각오한 배수진이다.

이 지사가 항전 태세를 갖춘 이상, 민주당의 정치적 결정이 무엇이든 "이 지사를 당장 제명시키라"며 민주당사 앞에서 집회까지 열었던 열혈 지지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모자란다. 열혈 지지층 사이의 내분은 이미 전면전으로 비화됐고, 사실 여부를 떠나 이재명 사건은 이미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갈등 프레임 속에 갇혔다.

등 돌리는 문재인-이재명, 촛불 시민들은 무슨 죄?

열혈 지지층들의 충돌이나 정치적 프레임과 별개로, 박근혜 탄핵과 새로운 나라 건설을 바란 시민들에게도 이재명 사건은 곤혹스러운 주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이 지사의 정치적 성장을 동시에 바랐던 이들 앞에 갑자기 선택의 문제가 등장한 탓이다.

이런 '외부자' 시각에선 문준용 씨 특혜채용 의혹을 다시 끄집어내고, '이재명 죽이기'에 권력의 배후가 작동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 시장의 최근 발언들이 강퍅해 보인다. '사이다'는 사라지고 기자들을 노려보는 눈초리만 매섭다. 반면 먼나라 이야기 같던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등 개혁적 복지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이 지사의 정치적 추락과 함께 떠내려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는 촛불 정국 2년 만에 체감하는 과거 회귀 현상과 분리되지 않는 불안감이다. 정치는 상상력의 한계를 보이며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정치개혁이라는 촛불 민심의 제1과제는 온데간데없이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연대에서 뒷걸음질 친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유능한 정부인지에도 물음표가 늘어난다.

경제문제가 이끌고 '이재명 사건'이 가속도를 붙이는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는 지역과 계층을 막론한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최순실 태블릿 PC 사건 이후 최고치까지 차올랐다. 그 여파가 정치화된 언어로 등장한다. '이영자(20대, 영남, 자영업자)'가 문제라고 하니, '육영수(60대, 영남, 수도권)'가 더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대한민국의 성공한 샌더스', 과감하고 진보적인 대통령을 향한 이 시장의 꿈은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트럼프 시대에 세계적 화두가 된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한국형 논란을 촉발시키며 '실패한 트럼프'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이 시장이 정치적으로 몰락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헛물만 켜는 정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그대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던 문 대통령의 꿈을 마냥 앉아서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지지층 분열이 문재인-이재명 촛불 소연합까지 해체시킨 이상,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이재명 지사의 부활 가능성은 비례한다. 이 지사는 그 싸움을 하려고 한다. 칼자루는 문 대통령이 쥐고 있지만, 시간은 누구 편인가? 어느 쪽이 이기든 상처가 깊게 패일 싸움이다. 촛불 들었던 시민들이 무슨 죄로 이 파괴적 내전을 지켜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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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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