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언론에 따르면 '강사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대학들이 강사들에 대한 대대적 해고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강사법은 원래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 서정민 씨가 열악한 처우와 임용 비리를 고발하면서 목숨을 끊은 일이 계기가 되었다. 2013년 1월 시행 예정이었던 강사법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4번이나 유예됐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강사법은 대학 측 대표들과 시간강사 대표, 정부·국회가 추천한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대학 강사 제도개선 협의회'가 기존 강사법을 보완 수정한 것이다. 이번 합의안은 무려 18차례의 토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지금 국회에 넘어가 있는 강사법은 시간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1년 이상 임용을 기본으로 하면서 해고를 위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3년까지 재임용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지급도 있다. 강사법이 직업적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는 강사들의 권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강사법의 핵심취지는 시간강사라는 불안정한 직업을 교원이라는 보다 안정적인 지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학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시간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하고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강사법의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은 대규모 강사해고라는 위협을 하고 있다. 2011년 입법을 추진한 지 8년 만에 나온 합의안이지만 대학들은 재정부담이라는 엄살을 떨며 강사 줄이기에 골몰하고 있다.
"사립대총장협의회는 지난 9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 "강사법 시행을 1년 유보하고 강사 인건비를 지원해달라"고 건의했다. 23일에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만나 이런 입장을 다시 전달할 방침이다. 지난 20일에는 서울대 단과대 학장들과 대학원장단이 "결국 대학들이 강좌 수를 줄이고 대형화해 교육의 질이 저하할 것"이라며 강사법 반대의사를 밝혔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등록금은 10년째 못 올리게 막아놓고 강사법을 시행한다니, 어디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나 걱정"이라면서 "강사법이 시행되면 강사 절반 이상이 학교를 떠나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경향신문> 11월 22일 자 ''강사법' 시행 앞두고, '시간강사 줄이기' 나선 대학들' 중)
강사법이 시행된다면, 재정적으로 부담된다는 대학 측 변명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대학은 매년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왔다. 대학에 지원되는 정부보조금의 액수는 다음과 같다. 2016년의 경우 사립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은 10개 대학의 순위는 연세대(3,105억 원), 고려대 (2,763억원), 한양대(2,576억원), 성균관대(2,202억원), 경희대(1,417억원), 포항공대(1,398억원), 건국대(1,380억원), 이화여대(1,239억원), 영남대(1,150억원), 중앙대(1,136억원)이다. 사립대학의 전체 예산 가운데 국가보조금의 비율은 2016년의 경우 무려 22.6%에 달한다. 보조금 가운데 평균 37% 정도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국가장학금이기는 하나 남은 것만 해도 큰 액수이다.(1월 29일 자 <한국대학신문> 기사 참조)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가 중앙대를 놓고 산정한 계산을 살펴보자.
"2018년도 예산 가운데, 강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교원급여 995억9000만 원에 각종 수당 70억7000만 원을 합해 총 1066억6000만 원이다. 반면, 시간강사료는 96억5000만 원에 불과하다. 교원급여의 9% 수준이다. 하지만 강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방학 4개월 동안 받는 강사료 및 4대보험료와 퇴직금 등은 기존에 받던 것보다 63% 정도가 늘어난다. 강사료 전체 액수로 치면 60억7000만 원으로 교원급여에 비해서는 14.7% 증가한다. 하지만 중앙대 전체 예산 3945억 원에 비교하면, 1.2%에서 1.5%로 늘어나는 수준이다. 크게 부담스러운 액수는 아니다. 중앙대에서 시간강사들은 학부 강의의 33.5%, 대학원 강의의 18% 정도를 맡고 있다. 학교 전체 강의의 3분의 1이 교원급여의 9% 비용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재단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시간강사 500명을 자르겠다고 하고 있으니…." (10월 17일 자 <프레시안> '강사법 개정안 국회 발의와 일부 대학의 저질 대응' 중)
강사법이 통과되면 강사를 어쩔 수 없이 잘라야 한다는 대학 측 의견은 재정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강사법 운동'을 주도한 채효정 전 경희대 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채효정 강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일부다.
""교육부는 내년 예산에 국립대와 사립대 시간강사 처우개선비를 반영하길 바랐지만 사립대는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편성에서 빠졌다.' 위 내용이 "강사법은 시행하지만 예산은 없다"는 식으로 오해되고 있다. 그러면서 대학들의 사전 해고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중략) 통과되지도 않은 법을 미리 예비하여 예산부터 편성해주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협의회에서 다각도로 사전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설득 논리를 고안했지만 법 시행이라는 선행 조건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강사법이 통과되어야 예산 지원의 법적 근거가 생기는 것이고, 그래야 기재부든 교육부든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요구하는 입장에서도 근거가 생긴다."
채효정의 지적대로 강사법이라는 든든한 법적 울타리가 있어야 정부 입장에서 지원할 명분이 생긴다. 대학 측은 강사법을 핑계로 시간강사 해고라는 악수를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몇 해 전 박구용 전남대 교수가 <경향신문>에 '사회학자 김덕영'(2013년 11월 29일 자)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쓴 파격적인 칼럼이었다. 박구용 교수는 칼럼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사회는 자연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이론을 요구한다. 사회의 눈빛으로 새 세상을 만들려면 그만큼 탄탄한 사회이론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론 없이는 수량화된 연구에 의미 있는 질적 해석을 덧붙일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나라 사회학계는 사회이론 연구자들을 교묘하게 유폐하고 무시한다. 대표적 피해자가 김덕영이다. 사회학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회학에서 두 개의 큰 산맥을 이루고 있는 베버(M. Weber)와 짐멜(G. Simmel) 연구자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논문으로 독일에서 박사 학위만이 아니라 교수 자격까지 취득한 학자를 이 나라 대학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사회학자 김덕영에 대한 흠모와 연민이 깊게 배어있는 문장이다. 박구용은 김덕영을 '처절하게 학문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김덕영은 한국에 없지만, 김덕영처럼 공부하는 지식인들은 한국에도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시간강사이거나 시간강사와 다를 바 없는 연구교수의 신분이다. 정부의 재정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강사해고를 추진하고 있다. 김덕영을 한국으로부터 유폐시켰듯이 또 다른 김덕영들을 대학으로부터 유폐시키려는 움직임은 한국 지식인 사회의 자살 행위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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