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궤도 위를 달리는 시스템이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산업혁명 이전, 그러니까 동력을 가진 기관차가 선로 위에서 본격적으로 운행되기 전에 이미 말이 끄는 궤도형 마차가 광범위하게 존재했었다. 지금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더 근원적 형태의 기원을 찾아가보자. 생물의 계통이 종, 속, 과, 목의 단계로 세밀화되듯이 궤도라는 길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면 결국 길을 만나게 된다. 인류는 유전자에 입력된 생존과 번영이라는 생물학적 지상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지구 곳곳에서 삶의 터전을 찾아 이동해야 했고 그 발자국들을 따라 길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4회에 걸쳐 본격적으로 기계 문명으로서 철도가 시작되기 전까지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철도의 흔적을 찾아 떠날 예정이다. 인류가 어떻게 이 궤도라는 것을 삶에 이용해왔는지 지나온 역사를 되짚어 보자.
▲ 철도를 달리는 열차. ⓒ프레시안(박세열) |
피라미드 거석은 어떻게 운반됐을까
중학생 시절, 매주 일요일에 방영되던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다. 고등학생들이 TV에 나와 문제를 맞춰 우승자를 가리는 것으로, 포맷은 다르지만 요즈음의 '도전 골든벨'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학교의 수업 시간에도 가끔씩 퀴즈 대회가 열리곤 했다. 몸풀기식 기본 상식 문제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같은 것은 단골 출제 문제 중의 하나였다. 아이들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고 대답해서 곧잘 틀리곤 했다. 과거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지만 이제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이라는 설명과 함께 둘 다 미국 뉴욕에 있다는 해설이 덧붙여졌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9.11사태로 사라져버리고 지금은 없지만,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수시로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2010년 완공된, UAE의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로 162층에 828미터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세운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높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했던 건축물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다. 최소 3800년 이상, 학자들에 따라서는 4500년 이상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했었다고 본다. 이집트의 네 번째 왕조인 파라오 쿠푸의 무덤인 기자의 피라미드는 현재 138.8미터의 높이고 고대에는 146.5미터의 높이였다고 한다.
모든 생물은 물이 존재해야만 생존이 가능하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은 물에 대한 의존도가 커서 물이 없으면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존재다. 고대 4대 문명의 발상지가 강을 끼고 발달한 것은 당연했다. 공동체가 형성되자 권력이 생겨나고 문명이 일어났다. 문명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길뿐만 아니라 생활을 위한 길을 만들어 내야 했다. 생활과 건설을 위한 길을 쫓아가다 보면 철도의 원시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고대 이집트다.
기원전 30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5000년 전에 나일강 유역에서 발생한 이집트 문명은 고대 세계의 가장 위대한 문명이다. 이집트 문명에서 우리가 맨 먼저 떠올리는 것은 피라미드다. 거의 모든 이집트 여행 책자의 표지 모델은 이 피라미드일 정도로 이집트와 피라미드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3000년이라는 유구한 기간을 버텨낸 고대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문명의 세계로 한 발 들어가 보자.
임호텝은 멀리 수도 멤피스가 보이는, 높이 솟은 목재 전망대에서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옮겨지는 것을 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 제3왕조의 두 번째 왕 조세르의 오른팔이자 재상이면서 나중에 조세르왕의 무덤이 될 사카라에 있는 계단 피라미드의 건축 책임자이기도 한 임호텝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들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고대인이다. 서구 중심적 세계관과 유대인 자본의 파워가 지배하는 할리우드의 속성상 이교도인 임호텝은 악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세계 최초의 석조 건물이자 규모가 엄청난 건축물의 건설 책임을 맡을 정도로 지혜와 학식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천문학자이자 건축가이며 의사이기도 했던 임호텝은 훗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로마 지배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신으로 떠받들 정도로 숭배를 받았다. 임호텝은 선대의 노동 과정으로부터 얻은 지혜를 집대성하여 돌을 효과적으로 운반하는 방법을 더욱 개선할 수 있었기에 거대한 조세르 왕가의 피라미드 단지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피라미드를 이루는 재료는 돌이다. 웅장한 석조 건물인 피라미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몇 가지 가설과 추측만 있을 뿐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돌들 중에는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채취한 화강암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피라미드 건설 지역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석회암을 사용했다.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설 현장으로 건축 자재를 이동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떤 방식으로 이동시켰을까?
▲ 피라미드. ⓒ이집트정부관광청 |
5000년 전 이집트 도로와 KTX 고속열차 선로의 놀라운 비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석한 바에 따르면 돌들은 나일강을 따라 배로 이동하다 건설 현장에 가까운 나루터에서 육지로 내려진 후 다시 옮겨졌다. 석재 채취 현장부터 일정한 크기로 잘린 돌들은 나무로 만든 썰매 위에 올려져 배에 실렸다. 나루터에서 육지로 썰매째 내려진 거대한 돌들은 오직 사람이나 동물의 힘으로 건설 현장까지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상당수 피라미드들은 아예 석재가 많은 곳 주변에 건설되기도 했다.
아메넴헤트 3세의 신전이 있는 다흐슈르의 붉은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는 남쪽과 남동쪽으로 채석장 유적이 발견되었다. 석재 채취 장소부터 피라미드까지는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로 3개의 이동로가 있었다고 한다. 이 도로의 폭은 12-15미터에 이르는데, 나중에 소개되겠지만 고대 로마의 가도나 KTX 고속열차의 복선 폭도 이와 비슷하다. 여기에는 자연계의 원시적 이동 수단이 진화를 거듭해 기계의 힘으로 대체된 긴 역사의 과정이 담겨 있다. 최첨단 고속열차의 유전자에 오래전부터 유지된 어떤 통일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인 바, 그것은 네발 달린 짐승 두 마리의 엉덩이 폭에서 시작됐다.
피라미드 건설에서는 자연에 존재하는 돌들이 자재 창고 역할을 한 셈인데, 가까운 곳은 건설 현장으로부터 1-2킬로미터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짧은 거리라 해도, 무거운 돌을 움직이기에는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이 접근로들로 매일 300~600개의 돌이 운송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 단지로 가장 유명한 기자 지구의 멘카우라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인근에서 옮겨진 돌 하나의 부피가 8.5x5.3x3미터에 달하고 무게가 220톤이나 됐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길을 닦아야 하는데, 그 길은 보통의 인간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무거운 석재를 옮기기 위해 잘 닦인 평평한 길이어야 했다.
인간이 다니는 보통의 길을 자세히 보면 짧은 구간에도 진흙을 압축했을 때 나타나는 주름처럼 많은 높낮이가 있다. 사람이 걸을 때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이다. 그러나 무게가 엄청난 재료를 옮길 때 길이 너울처럼 파도치면 곧바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길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철도에도 이 평탄한 기초가 반드시 필요하다. 철도 용어로 노반이라고 부르는 레일을 바치는 평탄한 길이 없으면 기차는 달릴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철도 하면 레일 위에 기차가 달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철도를 아는 사람들은 노반이라는 평탄한 길 위에 레일이 놓여 있고 그 위를 달리는 기차를 생각한다.
이걸 측면에서 보면 잘 다져진 단단한 노반과 그 위에 얹힌 레일, 이 레일을 일정 간격으로 지지하며 고정시키는 침목과 쇠못, 다시 노반과 침목에 얹힌 레일을 단단히 결합시키고 거대한 기차로부터 가해지는 충격을 분산시키는 자갈을 생각한다. 자갈밭에 놓인 레일 위에 기차가 있고, 만약 전기로 달리는 기차라면 그 위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차선까지 그려 놓아야 완결되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가장 밑에서 지지하는 노반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봄철 해빙기나 여름의 홍수나 태풍 등으로 선로가 영향을 받았을 경우 선로 시설 관리자가 챙겨야 할 중요한 점검 부위가 바로 레일을 지지하고 있는 노반이다. 노반의 지력이 약하거나 부실한 상태일 경우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선로는 공중에 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반 유실에 따른 열차 사고는 곧바로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가끔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철도 사고 관련 자료 사진을 볼 때, 노반이 유실되어 긴 선로와 침목이 계곡에 놓인 흔들다리처럼 공중에 매달린 모습을 접하면 기초가 약한 노반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철길'은 고대에 시작됐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루터에서 피라미드 공사 현장까지 철도의 노반처럼 평탄한 길을 닦았다. 그런데 초기에는 돌을 실은 썰매의 무게 때문에 썰매의 날이 땅속으로 박혀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집트인들은 강도가 높은 나일강의 진흙을 퍼다가 썰매가 다니는 길에 발랐다. 나일강의 진흙이 굳은 덕분에 단단해진 노반은 썰매의 날이 땅속으로 박히는 걸 막아주었다. 또 땅바닥과 썰매 날의 마찰을 줄여주기 위해 윤활제를 발랐는데, 자연에서 채취한 기름을 붓기도 했지만 다량의 우유를 뿌려 마찰을 줄이기도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렇게 한 후에야 비로소 수월하게 돌을 운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른 진흙이 단단하다 한들 수백 톤이 나가는 돌의 무게를 완벽하게 받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썰매의 날은 땅에 박히진 않았지만 길게 두 줄로 팬 길을 만들었고 이것은 음각 궤도가 되었다. 썰매는 이 궤도 위를 지나 공사 현장으로 이동했다.
썰매를 끄는 데는 주로 황소가 이용되었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기록에는 세 마리의 황소가 썰매에 실린 거대한 육면체의 석재를 운반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사람이 돌을 운반하기도 했는데 수십 명의 인부들이 여러 가닥의 줄을 연결해 운반했다. 벽화에 남겨진 기록에서는 석고 동상 하나를 172명의 일꾼이 끄는 모습도 보인다. 60톤에 이르는 돌을 45명의 인부가 윤활 블록을 이용해 운반했다는 기록도 있다. 열 개의 빵 덩어리와 한 잔의 맥주를 일당으로 받은 고대의 인부들은 바퀴도, 철로 된 도구도 없이 오직 인간의 힘으로만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고대인들은 운반의 수월성을 위해 썰매나 돌 밑에 둥근 통나무를 여러 개 대어서 바퀴처럼 이용하기도 했다. 이 방식 덕분에 훨씬 효율적으로 무거운 자재를 운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통나무 바퀴가 노반 위에 얹힌 레일처럼 철도와 더 가까운 형태일 수 있겠다. 이동을 위한 길이지만 분명히 다른 면이 있는 철길의 원시적 형태는 고대에 시작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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