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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의 도전, '전환의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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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의 도전, '전환의 정치'가 필요하다

[초록發光] '유류세 인하'하며 '에너지 전환'?

노란 조끼(gilet jaunes)를 입은 시위대가 지난 주말 프랑스 곳곳의 도로를 점거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오는 주말 노란 조끼의 물결이 다시 한 번 프랑스의 거리를 메울 것으로 보인다. 노란 조끼 운동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이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는 유가 인상이다.

마크롱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과 대기오염 저감을 명분으로 유류세 인상 정책을 펼쳐왔다. 그리고 그 결과 지난 1년 사이 경유 가격은 23%, 휘발유 가격은 15% 가량 올랐다. 이와 같은 유류세 인상, 그리고 추가적인 유류세 인상 계획이 노란 조끼의 물결을 촉발한 1차적인 이유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여느 대규모 시위가 그렇듯, 노란 조끼 시위의 배경이 단순히 유류세 인상에 국한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노란 조끼 운동에서 마크롱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폭넓게 분출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의 양상도 기존의 정당이나 사회운동조직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SNS 등을 통한 자발적 조직화, 유동적 시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시위의 계기와 맥락을 더 따져봐야겠지만, 노란 조끼 운동이 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잠재된 문제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마크롱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석유중독으로부터의 탈피를 내걸고 유류세 인상을 추진해왔는데, 결국 거센 반발에 직면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크롱 정부가 저소득층 운전자 세제 혜택, 경유차 교체 지원금 확대, 에너지 보조금 수급 대상 확대 등의 조치를 뒤이어 내놓았지만 시위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유류세의 인상과 경유의 상대가격 인상은 국내에서도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 저감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로 추진력을 잃은 듯 하나 현재 100:85 수준인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을 OECD 국가 평균인 100:93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골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은 유류세 조정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경계하는 이들에게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유류세 인상과 경유의 상대가격 조정을 논의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에서 확인되는 바, 기후변화 대응과 대기오염 저감을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의 운행을 축소하는 방안이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높다. 그런 점에서 노란 조끼 운동은 정치 프로젝트로서 에너지 전환이 밟아야 할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더 눈여겨봐야할 지점이 노란 조끼 운동이 단순히 유류세 인상 반대가 아니라 마크롱 정부에 대한 반발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점이다. 마크롱 정부는 노동유연화, 철도민영화 등으로 노동조합과 대립한 바 있으며 부유세 폐지를 추진하면서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삶이 더 각박해지고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약한 상황에서 유류세 인상이 추진된 것이다. 이로 인해 유류세 인상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치러야할 사회적 비용 분담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듯, 사회기술시스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공동의 비전을 만드는 것은 전환의 정치를 이끄는 출발점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비전이 가시화될 때, 전환에 뒤따르는 비용의 분담을 이끌어내고 과정상의 갈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현상 유지 정책 속에 양념처럼 추가된 전환 정책으로는 전환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역설적으로 이것은 사회적 반발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에너지 전환 정책은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한 공동의 비전이 빈약하다. 엇박자를 내는 정책도 적지 않다. 예컨대, 클린디젤 정책의 폐기나 노후차량의 운행제한 강화 등의 조치는 반가운 일이지만 유류세 인하와는 충돌한다. 노후 경유차 폐차 지원이 강화되었으나 폐차 후 다시 경유차를 구매하는 것을 억제할 방안도 잘 보이지 않는다. 대중교통 확충 계획은 분명치 않은데 반해 대기오염 발생원 관리 예산에서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도드라진다.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개개인의 자동차 이용의 편리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전기차는 교통체계의 전환이 아닌 내연기관의 대체·보조에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눈에 띄는 몇몇 개별 정책이 강화되고 있으나 상충되는 더 많은 정책들로 인해 궁극적인 목표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한다면 더 넓게 더 과감하게 접근해야한다. 환경부에서 추진하는 사업과 다른 부처의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일관된 메시지를 주지 못하면 전환으로 가는 길은 멀어진다. 곳곳에 난관이 있겠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유류세 인상의 걸림돌로 이야기하는 유가보조금 제도의 경우, 안전운임제 등의 도입을 통한 단계적인 물류비용의 현실화와 결합시킨다면 유가보조금의 축소·폐지가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소형 화물차의 경우 영세 자영업자에게 교체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신속한 전환의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유류의 상대가격 조정을 통해 교체 이후 영세 자영업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연료비 부담을 조정할 수도 있다. 교통체계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교통에너지환경세의 개편과 연동시켜 확보할 수 있다. 즉 현재 교통에너지환경세의 80%를 차지하는 교통 인프라 부문의 몫을 줄이는 대신 환경 개선 및 전환을 위한 예산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단편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유류세 인상을 단순히 대기오염 저감이 아닌 왜곡된 물류산업 및 물류비용의 정상화, 영세민의 전환 지원으로 연결시킨다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당연히 이해관계가 복잡한 만큼 단기간에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환경비용을 내부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외면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 시각에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사회적 비용 부담을 재조정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 누가, 얼마나 더,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의 방안을 도출해내야, 장기적인 공동의 비전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설령 당장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시작이 반이라는 점을 기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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