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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닮은 재형저축, 추억에나 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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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닮은 재형저축, 추억에나 묻어라

[정책쟁점 일문일답] <13> 재형저축보다 부채 연착륙, 복지 확대 중요

1.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재형저축이 18년 만에 다시 선을 보였습니다. 이 제도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 재형저축은 '근로자재산형성저축제도'를 축약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1976년 박정희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외채가 급증하여 외채 중심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봉착해 국내 저축을 강제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동 건설 붐을 따라 그곳에 나가 있던 근로자들의 저축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해외 근로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았는데, 국내에 있는 가족들이 송금 받은 이 돈을 충실하게 저축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 재형저축 제도를 도입했는데요. 다른 예금, 적금에 비해 혜택이 많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2. 재형저축도 박정희 정부의 '불균형 성장 전략'과 관련이 있나요?
⇨ 관련이 많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불균형 성장 전략'이란 '규모의 경제'를 모색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근로자들과 농민들, 그리고 기타 서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재형저축도 외채 규모가 위험 수위로 올라가자, 서민들의 강제 저축을 통해 기업들의 자금을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재형저축을 통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보았을까요? 서민들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대기업들이었습니다. 대기업들은 재형저축 추진 과정에서 쥐꼬리만 한 부담을 하고 막대한 저리의 정책 자금을 받아갈 수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재형저축의 금리는 사실 근로자들과 농민들, 그리고 기타 서민들이 충분한 임금과 곡물가 등을 보상받지 못한 것에 대한 정부의 작은 위로금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지금은 기업들에 많은 현금이 쌓여 있어 증권 시장도 자금원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할 정도로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재형저축의 존재 의의는 1970년대에 비해서 매우 적다고 볼 수 있겠네요?
⇨ 일부 학자들이 1970-1980년대에 나온 교과서에 의존해서 막연하게 저축률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높여야 한다, 그래서 재형저축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일본을 보세요. 저축을 안 해서 위기가 왔나요? 소비를 안 해서 위기가 왔나요? 소비를 안 해서 위기가 왔습니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1970년대 후반 재형저축으로 저축률이 다소 높아졌지만 소비 성향이 급락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이 재형저축의 긍정적 영향에만 주목하지 말고, 부정적 영향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재형저축이 18년 만에 부활했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 영업점에서 고객이 은행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4. 일부 학자들은 재형저축이 가계부채 해결책이라 주장합니다.
⇨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입니다. 가계는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순저축이 플러스인 가구이고 다른 하나는 순저축이 마이너스인 가구입니다. 전자는 가계부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재형저축은 이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형저축은 가계부채 해결책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습니다. 간접적으로 관련될 뿐.

5. 정부가 양쪽에 다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요?
⇨ 물론 정부에 무한한 재원 동원 능력이 있다면 양쪽에 다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겁니다. 지금 정부가 금융기관에 유형·무형의 협조를 요구해 하우스푸어들의 가계부채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여기에 재형저축까지 끼워 달라고 하면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 정책을 추진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금융기관의 저항이 커지면 전자의 정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대통령의 권력이 가장 큰 정권 초기이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조만간 이들이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조직적으로 저항할 겁니다. 비유하자면 재형저축은 4대강 사업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정부는 한정된 재원으로 중소하천 홍수 예방과 수질 개선을 추진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런데 MB정부가 별로 시급하지도 않은 4대강 사업을 추진한다면서 22조 원의 예산을 낭비했습니다. 최근에 부활한 재형저축도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4대강 사업과 유사한 성격을 가집니다.

6. 일부 학자들은 재형저축이 가계로 하여금 빚을 안 지게 하기 때문에 부채 해결책이라 주장하는 것 아닐까요?
⇨ 그러니까 재형저축이 4대강 사업과 유사하다는 겁니다. 전국의 대도시 하천과 중소하천은 30년 빈도 홍수(30년 중 가장 큰 피해를 준 홍수)도 대비하지 못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대강 사업 추진론자들은 4대강 대하천에 200년 빈도 홍수 대비 장치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재형저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지금 하우스푸어들의 가계부채 연착륙을 추진하기에도 벅찹니다. 그런데 누군가 빚 없는 사람의 잠재 부채부터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자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한가한 주문입니까?

7. '하우스푸어'들의 가계부채 연착륙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 정부가 무턱대고 '하우스푸어'들의 부채를 탕감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이 '하우스푸어'의 자구 노력에 따라 고금리를 저금리로 바꾸어 주고, 또 만기를 연장해 주는 방식으로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공동 노력을 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현 정부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가계부채 연착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분적으로 정부 보증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돈이 듭니다. 또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하우스푸어'가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돈이 듭니다. 재형저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8. 일부 사람들은 '하우스푸어'들이 자신의 탐욕에 의해 희생되었기 때문에 정부가 별도로 돈을 들여 구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 정부와 정치인, 혹은 지식인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면 매우 무책임한 것입니다. 제가 상당히 오랜 기간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꼼꼼하게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투기와 거품 책임의 80% 이상은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지식인들에게 있습니다. 정책 수단이 없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비전문가들은 많은 부분을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지식인들에게 의존합니다. 그런데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실책을 남발하고 나서 그 책임을 비전문가들에게 묻는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9. 1970년대 재형저축 도입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 재형저축의 금리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나요?
⇨ 1977년 당시 <신아일보>의 임승준 주필이 월간지 <세대> 9월호에 기고한 논문, '해외취업자와 저축-재형저축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당시 재형저축 금리는 2년제가 23.8~25.8%였고, 3년제는 24.2~27.2%였습니다.

10. 재형저축은 정기적금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데요. 당시 재형저축과 정기적금의 금리 차이가 어느 정도였나요?
⇨ 당시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요경제지표'에 따르면 1976년 기업에 대한 1년 이내 일반대출 금리는 18%였고,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금리는 16.2%였으며, 1년 만기 정기적금 금리는 14.2%였습니다. 다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제가 한국은행과 경제기획원, 통계청 자료를 모두 찾아보았지만 1970년대 후반의 3년 만기 정기예금과 정기적금 금리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11. 그렇다면 1980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3년 만기 재형저축과 정기예금·정기적금의 금리 차이는 어느 정도였나요?
⇨ 경제기획원이 발간한 <한국통계연감 1985>에 따르면 1980년 말 기준으로 3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계 우대금리 포함)는 21.6%였고, 3년 만기 정기적금 금리(가계 우대금리 포함)는 22.5%였으며, 3년 만기 재형저축 금리는 33.5%였습니다. 정기적금 금리에 비해 11%포인트 높았습니다.

12. 재형저축 금리가 정기적금보다 11%포인트 높은 것은 많은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인데요. 어떤 혜택들이 주어졌습니까?
⇨ 앞에서 소개한 임승준 전 주필의 논문에 따르면 재형저축에는 이자소득세가 면제되었고, 주민세와 방위세가 감면되었으며, 다른 은행에서 취급하는 정기적금 금리가 보장되었습니다. 또 덤으로 정부는 2년제에 대해서는 원금의 11%, 3년제에 대해서는 15%의 법정장려금을 지급했고, 또 기업주들이 2년제의 경우 원금의 2%, 3년제의 경우 3% 이내에서 임의로 장려금을 지급할 경우 이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었습니다.

13. 최근 일부 언론들이 과거에 재형저축 가입자들이 연 10% 기본 금리에 정부와 회사에서 주는 장려금까지 합쳐 총 14~16%의 높은 금리를 받았다고 보도했는데, 그 보도는 오보인가요?
⇨ 그 보도들은 1990년대 재형저축에 대해서 서술한 듯합니다. 1980년 이후 재형저축 금리도 많이 낮아졌습니다. 1980년 재형저축(3년 만기) 금리는 33.5%에 달했으나, 1985년에는 18.2%로 낮아졌고, 1994년에는 14%로 낮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정기적금(3년 만기) 금리와 격차도 1980년 11.6%포인트에 달했으나, 1985년에는 8.2%포인트로 낮아졌고, 1994년에는 5%포인트로 낮아졌습니다.

ⓒ홍헌호

14. 정부가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재형저축 가입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는데요. 그로 인해 저축률이 많이 높아졌나요?
⇨ 과거에 정부가 재형저축 가입자들에게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기 때문에 저축률(=저축액/가처분소득)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파격적인 혜택이 저축률에 끼치는 영향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를 보면 가계의 총저축률이 도입 전해인 1975년 10.3%에서 1979년 18%로 7.7%포인트 높아졌습니다. 또 같은 기간 순저축률(순저축=총저축-고정자본 소모분)도 1975년 7.1%에서 1979년 15.5%로 2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80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총저축률이 10.8%로 급락했습니다. 5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간 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80년대에는 재형저축 금리가 33.5%(1981년)에서 15.5%(1989년)로 지속적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저축률은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기간 총저축률은 8.8%에서 23%로 2.6배 상승했고, 순저축률은 8.4%에서 17.8%로 2.1배 상승했습니다. 이 지표들은 1980년대 저축률 상승의 주요 원인이 재형저축의 금리가 아니라 3저 호황과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의 근로자 임금 현실화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홍헌호
ⓒ홍헌호

15. 또 재형저축과 관련하여 우리가 매우 중요한 점을 놓쳐서는 안 되는데요. 1976년 재형저축 도입 이후 가계의 소비성향이 급락하기도 했지요?
⇨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 1975년 90.4%였던 가계의 평균소비성향(=가처분 소득 대비 소비지출액 비율)은 1979년 77.1%로 13.3%포인트나 급락했습니다. 주의해서 보아야 할 지표입니다. 1980년 이후 지난해까지 31년간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이 77.5%에서 76%(통계청의 구분류 통계로는 76%, 신분류로는 74.1%)로 1.5%포인트 낮아졌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당시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이 5년간 13.3%포인트나 급락했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홍헌호

16. 1976년 재형저축 도입 이후 가계의 저축률은 상승했지만, 평균소비성향은 급락했습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 1970년대에는 저축은 선이요, 소비는 악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했습니다. 심지어 정부는 국민들에게 '소비 절약 운동'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희생해서 강제 저축을 하게 하고, 이것을 기업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서 기업들을 키워주워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생각이었습니다. 1976년에 도입된 재형저축도 이와 같은 당시 정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그런 정부의 생각이 유효하냐 하는 겁니다. 저는 당시 상황에서 정부의 생각이 옳았느냐와 무관하게 지금 상황에서는 그 생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봅니다.

17. 지난 6일 15개 은행이 새로운 재형저축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혜택이 많지 않아서 국민들의 실망이 크다고요?
⇨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5개 은행이 내놓은 재형저축 상품들의 3년간 기본금리는 3.7~4.3%이고, 우대금리는 0~0.4%이며, 최고 금리는 4.1~4.6%라 합니다. 지난 1월 은행들의 3년 만기 정기적금의 금리가 3.78%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재형저축의 금리 혜택은 0.32~0.82%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재형저축은 이자소득에 대해서 비과세되므로 가입자들의 금리 체감도는 이보다는 높을 것입니다.

18. 새로운 재형저축 상품의 금리 혜택이 이렇게 적은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 과거의 재형저축 상품에는 정부가 많은 재정투자를 해서 금리 혜택을 주었지만, 새로운 재형저축 상품에는 정부의 재정투자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19. 새로운 재형저축 상품에도 정부가 재정투자를 할 필요가 있지 않나요?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0. 얼마 전부터 일부 지자체에서도 재형저축과 유사한 상품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 저도 일부 지자체의 그런 움직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정책에 대한 저의 판단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지자체에 저축을 독려할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복지를 늘려서 소비를 늘리고 기업 매출이 늘도록 유도하는 게 낫습니다. 돈이 금융기관 안에 쌓여 있으면 경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부자 감세'에 반대했던 것도 돈이 재벌들의 금고나 금융기관에 쌓이는 것보다는, 복지를 늘리고 소비를 늘리고 기업 매출을 늘리는 데 활용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재형저축이 가계부채 감소에 효율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한정된 재원을 하우스푸어의 가계부채 연착륙에 우선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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