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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어머니가 낯선 '처치실'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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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어머니가 낯선 '처치실'에 있었습니다"

[토론회] "임종 돌봄 질 향상 위해 사회적 합의안 만들어야"

"파킨슨병으로 입원 중이던 어머니.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평생을 힘들게 저 하나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신 어머니께서는 병실이 아닌 간호사실 옆에 있는 어수선하고 사방이 개방된 낮선 '처치실'이라는 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1인실 사용을 권유받았지만, 하루 20만 원이라는 부담에 형편상 그럴 수가 없었는데 다인실 환자의 임종은 다른 분들 불안해하시니 어쩔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낸다는 사실과 가난해서 마지막조차도 이런 초라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저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고 미안했습니다."

지난 10월 13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병원마다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이사장 최윤선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등의 주도로 시작한 이 청원에는 2653명이 서명하며 지난 12일 마감했지만,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임종 가능성 '1~6개월 전에 알고 싶다' 73.8%…현실은 수일 전 고지

최윤선 교수팀은 2018년 1년간 석천나눔재단의 지원을 받아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잘 돌보려면 어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연구에 돌입했다. '병원에서 임종기 돌봄에 대한 국민 인식 및 요구도' 설문조사 등을 진행했고, 그 중간 결과물을 발표하는 심포지엄이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의 주최로 14일 열렸다.

대국민 설문 조사 결과 한국 국민의 75%는 본인의 임종 가능성에 대해서 '알기를 원한다'고 답했고, 25%는 '모르고 지내는 편이 낫다'고 답했다. 임종 가능성을 알고 싶은 시점은 '임종 예상 1개월 전'이 26.6%로 가장 높았고, '3개월 전'이라는 응답은 24.6%, '6개월 전'은 22.6%였다. (10월 22일부터 31일까지 전국 성인 500명 대상 일대일 대면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4.38%포인트)

자신의 죽음을 최소한 6개월에서 1개월 전에 알고 싶다는 환자들의 바람은 한국의 일반적인 병원 현실과는 다르다. 발표에 나선 김대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의과대학 교수는 "한국에서는 임종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대개 사망 며칠 전에 이뤄지고, 그마저 의학적인 상태에 대한 설명에 그치고 있어 심리적·사회적 지지나 임종 교육은 병원 현장에 사실상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가족에게 임종 가능성 '알리지 않겠다' 30%

가족의 임종 가능성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0%가 '가족에게 알리기를 원한다'고 답했고, 30%는 '모르고 지내는 편이 낫다'고 답했다. 하지만 희망하는 통보 대상을 묻는 질문에는 '보호자에게 우선 통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52.6%였다. '환자 본인에게 먼저 통보해야 한다'는 의견은 47.4%였다. 환자 본인에게 통보하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환자가 겪을 절망감에 대한 두려움'(52%)이 꼽혔다. 환자 가족이나 보호자들이 환자 본인에 대한 임종 고지를 꺼리는 경향은 의료진이 환자 본인과 '죽음'에 대해 상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유럽 등 선진국과는 다른 풍토다.

문제는 환자 본인이 임종 고지를 받지 못하면 호스피스와 같은 제도적 지원에서도 제외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말기 암 환자가 급성기 병동에서 '호스피스 완화 의료' 돌봄을 받으려면, 자신이 말기 상태에 있음을 인지하고 동의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자신이 말기라는 사실을 모르면,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길이 막힌다. (☞관련 기사 : 의사가 환자에 말해줘도 좋습니다. '죽어도 괜찮아요')

▲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2013년 폐원시키기 전의 진주의료원의 호스피스 병동. ⓒ프레시안(김윤나영)

"간병 지원 필요" 92.4%, "임종실 건강보험 적용" 요구도 84.6%

응답자들은 임종기 환자와 보호자에게 필요한 지원(중복 응답)으로 '간병 지원(92.4%)'을 가장 많이 꼽았다. 편의시설 지원(90.6%), 안락한 병실 환경(89.4%)도 꼽혔지만, 1인실(임종실)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요구도 84.6%에 달했다.

선진국에서는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돕기 위해 '임종실'을 마련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일반 병원의 임종실 마련에 대한 의무 규정이 없다.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임의 공간인 '처치실'에서 임종을 맞이한 환자 가족들이 울면, '다른 환자들이 불안해 하니까 여기서 우시면 안 된다'고 의료진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한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1인실에서 가족들과 임종을 맞이하려면, 적게는 하루에 10만 원에서 많게는 50만 원까지 부담해야 한다. 가난한 환자일수록 병원 처치실에서 '초라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다.

김대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교수는 "호스피스 병동이 설치된 의료기관 외에는 임종실을 운영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별도의 임종 돌봄 관련 수가도 없어서 적절한 인력을 투입하기도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대균 교수는 "1인실이 중요한 비급여 수익인 만큼, 대형 병원일수록 1인실을 임종실로 활용하기 어려워진다"면서 적어도 임종 며칠 전에 돌입했다는 판단을 받은 환자에게는 1인실 이용을 국민건강보험이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누구도 돈이 없어서 병원 복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의료진 임종 돌봄 교육 제도화해야"

앞으로 질 높은 임종 돌봄에 대한 요구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5명 중 1명 꼴이지만, 출산율이 이대로라면 약 30년 뒤인 205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70%로 대다수를 차지할 전망이다. 2017년 사망자의 76.2%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할 정도로 병원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 호스피스 완화 의료에 대한 수가 제도는 2015년에 시작했고, 2016년 국회를 통과한 '연명의료 결정법'이 지난 2월부터 시행되는 등 병원에서 '질 높은 임종 돌봄'에 대한 논의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김대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교수는 특히 한국 정부도 선진국처럼 '임종 돌봄에 대한 의료진 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균 교수는 "의료진들은 임종 환자 돌봄에 대한 교육이나 수련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임종 환자나 그 가족들을 대하는 시간을 부담스럽고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김 교수는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는 정부가 나서서 지역 사회와 병원이 연계된 '환자 중심의 임종기 돌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윤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장도 "한국의 급성기 병원에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는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한국도 선진국처럼 정부가 나서 의료 제공자와 이용자가 모두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생애말기 돌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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