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워킹그룹의 권고안이 산업부에 전달되었다. 75명의 에너지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토론하고 나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한다. "중장기적 에너지 전환 비전을 설정하고 흔들림 없이 추진" 해 갈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과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에너지 수요관리를 강조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통합스마트에너지시스템' 개념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으며, 에너지 분야의 갈등을 다루기 위한 상설 기구와 중앙-지역간 에너지 정책 조율체계 구축 등을 권고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진일보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권고안은 '수사의 화려함으로 감춰진 에너지 전환의 전략과 의지의 부족'의 산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워킹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서, "권고안의 성격은 정부에 우리나라 에너지 전환 정책의 중․장기 추진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중·장기 추진방향이 혹시 '현상 유지'가 아닐까 싶다.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절박함은 보이지고 않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복지부동의 자세만 읽힐 뿐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204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다. 권고안은 시나리오라고 표현하면서 2040년 목표를 25%, 30%, 40%의 세 가지 안으로 제시하였다. 일단 IPCC 1.5도 특별보고서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70~85%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대비된다. 물론 2040년과 2050년 목표 시기가 상이하며, 전세계 평균과 한국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요구받고 있는 도전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40% 목표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25% 목표도 시나리오 중의 하나로 권고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설명이 흥미롭다. 25%는 "IEA에서 계통 안정성에 대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권고한 비중"이라고 한다. 질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향후 20년 동안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수용하기 위해서 계통 안정성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말인가? 에너지 전환을 하겠다는 정부에게 보내는 권고안의 시나리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극적인 것인 것이 아닌가.
물론 현실에서는 그렇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까지 확대하겠다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정부는 전력계통에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 그래서 어떻게 확충․보강해야 할지를 검토하지 않았다. 그 후 8차 송변전계획을 세우면서 역시 이를 검토하지 않았다. 에너지 전환계획을 시작하면서 이랬으니, 2040년까지 계통안정성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겠구나 하는 비관주의자들이 모여 앉아서 시나리오를 짠 것이 틀림이 없다.
이들이 어찌나 소심하던지,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세우기 위한 전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통해 '30년(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0%가 달성된 것을 전제로 '30년 이후의 추가 확대 가능성 검토".
마치 3020년 이행계획이 달성되나 두고 보자는 뉘앙스까지 느껴진다. 요즘 내 마음같다. 정부가 엄선한 전문가들이 모여 앉아서, 이런 시나리오를 짜고 있으니 그렇지 않겠나.
권고안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운 것이 더 있었다.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일텐데, 2040년의 온실가스 감축량(혹은 배출량)이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설명은 이렇다. "'30년 이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력수급계획 등을 통해 전원믹스 등의 정책방향이 결정된 이후 산정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 목표인 온실가스 감축 방향과 속도를 검토해야 할 최상위 에너지계획에서 공백으로 놔두고 하위 계획으로 넘긴 것이다. 이럴거면 왜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나.
뿐만 아니다. 최근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수정보완 했다. 실망스럽게도 이전 정부가 정한 목표 온실가스 배출량 5억3600만 톤이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국제단체들의 평가에 따르면 2도씨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한국의 배출 책임과 역량을 고려했을 때 "매우 불충분한" 목표였다. 그러나 이 조차도 적지 않은 양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감축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번 수정보완에서 쟁점은 이를 국내로 돌리느냐 마느냐로 시간을 보냈다. 한심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권고안의 정량목표를 보면, "에너지연소 온실가스 배출량"의 2030년 목표가 5억3650만 톤으로 제시되어 있다. 에너지 부문과 비에너지 부문까지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가 5억3600만 톤인데, 에너지 부문의 목표량이 5억3630만 톤이라니….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부분이 전체보다 더 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 봤지만, 명쾌히 설명하는 이가 없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설명하지 않으면 모르겠다는 결론이다.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워킹그룹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설명 요구를 워킹그룹에 참여한 전문가들에게 하는 것이 맞는지 자신은 없다. 워킹그룹의 권고안은 대략 한 달 전쯤에 산업부 장관에 전달되도록 예정되었으나, 특별한 설명 없이 지금까지 연기되었다. 게다가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워킹그룹 내부에서 격론 끝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0%로 정하기로 했으나 재논의도 없이 25~40%의 범위로 수정되었다. 워킹그룹에 참여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문제를 두고 공개적인 토론 자리에서 언쟁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권고안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 의혹에 대해서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산업부와 독립적인 워킹그룹이라는 형식을 차렸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워킹그룹 전문가들이 보여준 소극성과 무책임의 근원은 산업부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전환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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