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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그의 새로운 '쇼'를 기다리며…

[기자의 눈] 문재인의 패배와 노동자의 죽음

#1.


한 노동자는 말했다.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 이겨보고 싶다. 맨날 지기만 했는데, 한 번만 이겨보면 안 되겠나."

"형님만은 안 된다. 비정규직의 상징인데 어떻게 거길 가냐"며 문재인 캠프 행을 말리는 동생에게 한 말이었다. 동생은 그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아래 형님은 파업을 시작했었다. 평생 직장이겠거니 들어가 공휴일도 없이 일한 댓가가 '계약해지'로 돌아온 기막힌 현실 속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형님은 517일 만에 무릎을 꿇었다.

비록 졌지만, 형님들의 517일은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널리 알렸다. 그로부터 7년 뒤,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잘려가는 비정규직 동료들과 함께 싸우다 정규직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해고자가 된 동생이 "다른 사람이 다 민주당에 가도 형님은 안 된다"고 했던 이유였다.

자신을 '짤랐고', 또 외면했던 민주당 정부의 재집권을 위해 형님은 뛰었다. 그리고 또 졌다. 벨소리조차 처량하던 형님의 전화를 받고 동생은 다시 말했다.

"뭐야, 이기지도 못하고."

형님은 그저, 헛헛하게 웃었다.

#2.

ⓒ매일노동뉴스(정기훈)
한 노동자가 죽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5년을 또…"

그는 유서에 적었다.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이 그를 짓눌렀고, 18대 대선 결과가 "못하겠다"는 깊은 절망을 부추겼다.

어머니가 "엄마가 먼지 가야지 우째 시퍼런 니가 먼지가노 이누마야. 강스야. 엄마도 델꼬가라. 엄마가 가께. 니 없이 내가 우째사노 강스야"라며 울어도, "'우리 마누라 이쁘지예' 자랑하던 이쁜 마누라가 자기야 일나서 집에 가야지, 자꼬 한말 또 하며 울어도"(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한 번 감은 그의 눈은 떠지질 않았다.

그의 죽음으로 그의 동료들은 또 한 번 동료의 장례식을 치르게 됐다. "35m 크레인에서 한 사람의 관이 내려오고, 10m 아래 도크에서 또 한 사람의 관이 올라오는", 그 기막힌 풍경이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거진 10년. 잊을만하니 다시 '해고'를 들이미는 회사에 맞서 싸우고 또 싸워 얻어낸 약속, 그러나 지키지 않는 회사를 보며, 5살 7살 두 아이의 아빠가 한 가닥 걸었던 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민주당 정권이었을까. "돈이 없어서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던 그의 유서는 18대 대선 다음날 날짜였다.

#3.

한 남자가 졌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약속은 부질 없는 것이 됐다. "사람이 먼저다" 남자는 외쳤고,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하다"(9월 21일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며 울었지만, 그는 "평생 꼭 한 번은 이겨보고 싶었던" 이들에게 승리를 주지 못했고, 조금이나마 다른 세상이 오리라던 실날 같은 기대도 현실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 대선에서 패배한 문재인 후보 ⓒ뉴시스

그 남자가 속한 정당의 대변인은 24일 "처절한 고공농성으로 생존권을 주장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내려올 사다리 하나 만들어드리지 못한 점, 대선패배가 두 분 노동자에게 절망을 안기고 죽음을 끌어안게 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책임은 그 끝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곧 '사다리'였을까. 생각해보면 그 남자는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를 불러 온 첫 단추, 해외매각을 추진한 정부의 민정수석이었고,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죽음에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던 대통령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법원의 판결에도 꿈쩍 않는 현대차 불법파견 논란이 시작된 정부의 2인자였다.

중요한 것은 정권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정치를 펼칠 것인가다. 10년 전 그의 친구에게 표를 던졌던 40대가, 10년 후 "참여정부의 과오를 반성한다"는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50대가 됐다. 그와 그 세력이 보여준 정치의 한계였다.

대표 직무대행을 겸임했던 그가 비대위원장을 지명할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그가 속한 정당은 며칠째 시끄럽다. 그를 후보로 만들고 선거를 주도해 온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가 책임론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패배한 그의 '의원직 사퇴' 주장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4.


또 다른 남자를, 그에게 소개하고 싶다.

2007년 최악의 표차로 패배한 남자. 자신의 패배가 불러온 비극에 뒤늦게 눈을 떴다는 남자.

그 남자는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줬던 정당의 비난과 세간의 조롱에도 무소속으로 재보궐 선거에 나와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각종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아다니며 '쇼'를 벌였다.

그런 갚음도 있다. 한때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의 의원직 사퇴보다,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누가 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자신에게 걸었던 노동자, 그들에게 '우리가 아직 여러분 곁에 서 있다'고 말해주는 것 아닐까.

힘 없는 이들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5년, 내 비록 가진 것 없으나 결코 당신들의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는, 처절한 '쇼'를 벌이는 광대가 되겠노라는 약속과 실천이 먼저다. 그것이 민주정부 10년의 배신을 묻어두고 한 남자와 그 세력의 집권을 위해 기도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예의다.

그와 그 정당에는 127명의 의원이 있지 않은가. 대선패배의 책임론과 수습방향을 논의하느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는 24일 민주통합당의 당무위원회와 의원총회 연석회의에서 노동자들의 잇딴 자살 사태에 대한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대책팀 구성"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힘 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성탄 선물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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