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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먹어도 괜찮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가요?"

[인터뷰]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

"먹어도 괜찮은가요?"

과학자들이 '슈퍼돼지'를 만들어냈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받은 질문이다. 엄청난 근육질의 돼지 사진을 놓고, 기자들은 이렇게 물었다.

그에겐 익숙한 질문이다. 그는 분자 유전학자다. 최근 유전자 변형 연구가 급류를 타고 있으므로, 기자들에게 가끔 연락을 받는다. 그때마다 첫 질문은 한결 같았다.

조금 화가 났다. 그래서 그가 되물었다.

"먹어도 괜찮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가요?"

기자에게 화를 낼 일은 아니다. 기자들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을 대신 물었을 따름이다. 우리 시대, 생명과학기술이 받아들여지는 수준이 딱 그 정도다.


'DIY바이오'컴퓨터 조립하듯, '동네 연구실'에서 생명을 디자인 한다


그는 송기원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교수다. 그가 최근 출간한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머리말 내용이다. <프레시안> 독자에겐 익숙한 제목이리라. 송 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기초로 쓴 책이다.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사이언스북스
인간 유전체 계획(휴먼 게놈 프로젝트, HGP)이 15년 전에 마무리 됐다. 그 뒤 진행된 생명과학기술 연구의 성취는 폭발적이었다. 용산 전자 상가에서 부품을 사서 개인용 컴퓨터를 조립하듯, 인간이 손쉽게 생명체를 디자인할 수 있는 세상이 머지않았다.

실제로 외국에선 'DIY바이오'가 활발하다. 'DIY(Do it yourself)'란 스스로 조립한다는 뜻이다. 정보기술 산업 개척자들이 흔히 미국 실리콘밸리 주변의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DIY바이오'는 요즘 급격히 확산되는 '커뮤니티 랩'에서 이뤄진다. 제도권 밖 '동네 연구실'쯤 되겠다. 생명과학기술 연구가 대학이나 기업 울타리 밖에서 가능해졌다. 'DIY바이오' 홈페이지(https://diybio.org/)에 접속하면, 관련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애플 신화를 이뤄냈다. 이런 사례가 생명과학기술 분야에서 재연될 수 있다.

물론, 이는 거대한 위험이기도 하다. 위험한 바이러스가 공공의 통제를 벗어나서 확산될 수 있다. 아예 테러를 목적으로 연구를 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핵 기술 이상의 위험이다. 핵무기는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지만, 엄격한 감시를 받는다. 동네 차고에서 핵무기를 만드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생명과학기술을 나쁜 용도로 쓰려는 시도는 '동네 연구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동네 연구실'을 정부가 감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포스트 게놈 시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국내에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아직 많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송 교수가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를 낸 한 가지 이유였다. 인간 정상 배아의 특정 유전자를 교정하는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나온 게 지난해 8월이다. 송 교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라고 말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전과 후, 생명윤리를 둘러싼 논의 역시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 공론 장은 여전히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전 수준이다. 유전자 변형으로 만든 식품에 대해 "먹어도 괜찮은가요?"라고 묻는 수준.

책 제목 그대로, 우리는 '포스트 게놈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 유전체 계획(휴먼 게놈 프로젝트)이 끝난 뒤라서 '포스트 게놈 시대'다.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게 된 지금은, 생명과학기술의 성격이 지난 세기와 달라졌다.

마치 정보기술(IT)이 금융 및 미디어 등 다른 영역과 활발히 교류하듯, 생명과학기술 연구자들 역시 다른 과학 및 공학 분야와 만나는 면이 넓어졌다. 기계공학,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연구자와 생물학자가 함께 연구하는 모습. 지난 세기엔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는 학과별 구획이 엄격한 대학 체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19일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송 교수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먹어도 되는데, 질문거리가 그뿐인가"

- "먹어도 괜찮은가요?"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화가 났다고 했다.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유전자 변형'이 된 생물로 만든 식품을 먹어도 되나?

"먹어도 된다. 유전자 재조합 생명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로 된 식품 역시 화학적으론 여느 먹을거리와 마찬가지다. '먹어도 되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화를 낸 건, '질문거리가 그뿐이냐' 싶어서였다. 예컨대 GMO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볼 수 있다. 이는 '먹어도 되느냐'와는 다른 차원이다. 최근 화제가 된 '슈퍼돼지' 역시 마찬가지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근육이 아주 발달한 돼지를 만들어냈다. 돼지 입장에선 어떤 느낌일까.

'그토록 거대한 근육이 있는 게 고통스럽지 않을까', '과연 인간이 이런 것을 만들어도 되나' 이런 질문도 할 수 있다. 정말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 단순한 질문만 한다. 그게 답답했다."

합성생물학, 인공생명체를 제작한다

인공지능 발달이 최근 급류를 탔다. 딥러닝 연구가 변곡점이었다.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다. 딥 러닝의 활용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통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유전자 변형 연구 역시 중요한 변곡점을 지났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그 변곡점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달리, 대중적인 이벤트가 없었던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요즘 생명과학의 화두는 합성생물학이다. 미국의 대통령 생명윤리연구자문위원회는 합성 생물학을 "기존 생명체를 모방하거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생명체를 제작 및 합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요컨대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학문이다.

자연과학과 공학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뜻이다.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면 자연과학, 사람이 새로운 걸 만들어내면 공학. 이게 통념적인 정의였다. 이젠 아니다.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에는 "만들어낼 수 없다면 이해하지 못한 것(What I can not create, I do not understand.)"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인데, 최초의 합성 생명체 염기 서열 안에 연구자들이 새겨 넣었다.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은,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일과 뗄 수 없는 관계다. 과학과 공학은 이제 한 몸이 됐다. 실제로 송 교수 역시 생명과학기술이라는 표현을 썼다. 더 이상 '생명과학'이 아니다. '생명과학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유전체 편집한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기술적 진보가 있었다. 첫째, DNA를 원하는 대로 합성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차세대 염기 서열 해독 기술(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이 빠르게 발달했다. DNA 염기 서열을 해독하는 속도 및 정확도의 차원이 달라졌다.

이 두 가지는 비용 혁명으로 이어진다. 요즘 개인이 자기 유전체 전체를 해독하는 비용은 100만 원 남짓이다. 유전체 가운데 실제로 발현되는 유전자만 검색한다면 80만 원으로도 가능하다. DNA 합성 역시 주문 후 2~3일이면 완료돼 연구실로 배달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아직도 '게놈 시대' 이전 세상에서 산다.

아울러 살펴야 할 열쇠말이 '크리스퍼'다. DNA의 특정 유전자 염기 서열을 인식해서 자르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관련 연구가 급류를 탄 건, 지난 2013년께 크리스퍼 기술이 개발되면서였다.

세균 유전체 안에는 '크리스퍼'라는 유전자가 있다. 세균의 이 유전자를 다른 동물이나 식물 등 모든 종류의 세포나 수정란 속에 넣어 발현하면, 기존 '유전자 가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유전체 전체를 대상으로 원하는 부분을 편집할 수 있다. 합성 생물학 세계에서 '크리스퍼' 유전자를 활용한 '유전자 가위'의 등장은, 인간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끔 했다. 인간은 이제 큰 부담 없는 비용으로 유전체를 편집할 수 있다. 인위적인 정보로 작동하는 생명체를 만드는 길, 말 그대로 생명공학의 시대가 열렸다.


▲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대학 학과 체제, 빠르게 무너진다"

- 과학과 공학의 경계가 무너졌다. 이른바 '학제 간 융합 연구'가 화두라지만, 학문 간 경계가 이렇게까지 무너진 줄은 모르는 이들이 많을 듯 싶다.

"나만 해도, 공학자들과 협력하는 일이 잦다. 기계공학자가 보기엔, 열역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생명체다. 아직 풀지 못한 생명의 현상을 알아내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들이 필요하며, 그 방법은 공학 분야에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서로 대화할 일이 생긴다. 컴퓨터, 전자 분야와도 접점이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이뤄지는 '융합 연구' 가운데 대부분은 연구과제 수주만 융합하고, 연구는 따로 하는 경우라고 본다. 억지로 융합하라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자신이 품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분야와 만나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게 옳다고 본다.

대학이 갖고 있는 한계도 있다. 학과로 단절된 구조가 견고하다. 하지만 이젠 기존 학과 체제가 의미를 잃어간다. 과학과 공학, 과학과 의학 사이의 경계만 무너지는 게 아니다. 생명과학기술을 연구하다 보면, 신학, 철학 등을 전공한 이들과 만날 일도 생긴다. 기존 학과 체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이젠 바뀌어야 한다."

정상 인간 배아로 실험, 생명 윤리에 대한 도전

지난해 8월 3일 <네이처>에는 착상되면 인간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상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해 특정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김진수 서울대학교 교수팀과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학교 교수팀이 공동 연구한 결과다. 이는 한국도 인간 배아의 유전 정보를 교정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이보다 앞서 중국 과학자들이 인간 배아 유전 정보를 편집했었다. 하지만 이는 비정상 배아에 적용한 경우다. 반면, 지난해 한국과 미국 과학자들이 낸 연구 결과는 정상 배아에 적용한 경우였다. 이는 특정 유전자를 교정한 아기, 이른바 '맞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유전병 치료의 길이 열렸다며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래도 되나' 싶은 반응도 뚜렷하다. 한국의 생명윤리법은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를 금지한다. 따라서 김진수 서울대 교수팀은 인간 배아를 상대로 한 실험은 직접 하지 않았다. 김 교수팀은 유전자 가위를 제작하고 교정의 정확도를 분석하는 작업을 맡았다고 밝혔다. 인간 배아를 직접 다루는 실험은 미국 연구진이 진행했다. 전 세계가 똑같은 생명윤리 규정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인간 배아를 상대로 한 실험을 할 방법은 열려 있는 셈이다. 실험이 허용된 지역의 연구진과 협력하면 된다. 실험은 외국에서 하고 데이터만 공유한다면, 자국의 생명윤리 규정을 우회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정상적인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교정한 사례가 나왔다.

기존 생명윤리법에 대한 도전이다. 어떻게 봐야 하나. 송 교수는 대통령 소속 국가 생명 윤리 심의 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한다.는 지난해 김 교수팀의 발표 직후 <프레시안> 기고에서 이렇게 밝혔었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는데, 종교계는 왜 조용한가"


"판도라의 상자(정상적인 인간 배아 실험)가 열리기 전에는 열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가 배아 선별이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는 이상 인간이 인간의 유전체에 손대는 상황으로 가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미 상자가 열리고 만 현재의 시점에서는 더 이상 인간 배아를 놓고 실험해야 할지 말지를 논의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 전 세계가 금지하지 않는 이상 실효성 면에서 각 국가의 제재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조만간 우리나라의 생명윤리법도 인간 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쪽으로 개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인간 배아 연구를 허용할 것인지 사회적 공론화와 심각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중요한 과학적 발견 앞에서 사회적인 논의가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종교계는 어떤 종교이든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경외를 이런 과학적 발견 앞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거의 침묵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계는 이 발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유전자 교정, 사회적 논의 서둘러야"

- 사실 기자부터도 정상적인 인간 배아를 상대로 실험한다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이 든다. 굳이 종교계가 아니어도, 이런 반응 보이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앞서 언급했듯,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다시 닫는 건 불가능하다. 전 세계의 연구실을 무슨 수로 감시하고 통제할 건가.

유전학자들은 유전정보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암 역시 유전병의 일종이라고 본다. 유전병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도 많다. 이 문제를 풀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막혔다면 모를까, 길이 열렸는데, 그리로 가면 안 된다고, 말할 근거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감수성 역시 변하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면 느낀다. 요즘 젊은 세대는 유전자 교정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컨대 이런 문제다. 목장에서 키우는 소가 자라면 뿔을 자른다. 좁은 곳에서 키우니까, 소들끼리 뿔로 서로 찌른다. 그런데 뿔을 자를 때, 소가 몹시 아파한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유전자 교정을 통해 아예 뿔 없는 소가 태어나게 할 수 있다.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으므로, 다양한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결론을 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새로운 기술을 음지에서 몰래 사용하거나, 기술 적용이 허용된 외국으로 떠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당장 중국만 해도 생명과학기술 연구에 대해 사실상 윤리적 규제가 없는 상태다."


▲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생명과학기술 연구의 빛과 그림자가장 큰 위험은 '무관심'

-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제가 꼭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핵 관련 기술이 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니, 국제사회가 제재를 하지 않는가. 생명과학기술 연구 역시 위험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면, 규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핵 기술과 유전자 연구는 성격이 다르다. 핵무기는 압도적 다수가 반대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유전자 연구는 혜택을 보는 이들이 있다. 유전병 때문에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컨대 '양날의 칼'이다. 이런 연구를 핵 기술처럼 규제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중국처럼 무작정 허용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진지한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논의를 피할수록 부작용도 커진다."

송 교수는 생명과학기술의 진보가 드리운 그림자에만 주목하는 건 잘못이라고 본다. 빛과 그림자가 균형있게 알려지길 원했다. 분명히 빛이 선명하다. 대표적으로 유전병이나 암 등 기존의 치료법이 작동하지 않는 질병 해결에 큰 가능성이 열린다. 그밖에도 다양한 쓸모가 있다. HIV로 인한 에이즈를 완치시킬 가능성이 이 기술에 의해 열렸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HIV 수용체를 없앨 수 있다. 또 이미 HIV에 감염된 세포에서 HIV가 복제되지 못하도록 HIV유전자를 직접 변형 시킬 수도 있다.

말라리아 모기를 줄이는 데도 쓸 수 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생식 세포에 있는 유전자를 교정한다. 말라리아 저항 유전자가 들어가도록 말이다. 이렇게 얻은 모기를 일반 모기와 교배시키면, 세대가 지날수록 말라리아에 내성이 있는 모기가 늘어난다.

하지만 그림자도 짙다. '커뮤니티 랩', 그러니까 동네 연구실이 확산된다. 'DIY바이오'가 활발하다. 생명과학기술이 대중화한다는 뜻이다. 컴퓨터 기술이 대중화 하며, 해킹 범죄도 늘었다. 골방에 틀어박힌 해커를 통제할 길은 없다. 이런 문제가 생명과학기술 영역에서 재연될 수 있다. DNA 합성을 통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생겨날 수 있다. 실제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실험실에서 복원한 사례가 있다. 이런 바이러스가 실수로 유출되면, 컴퓨터 바이러스와는 차원이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은, 생명과학기술 진보에 따른 이런 질문들을 아예 '외면'하는 것이다. 과학기술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깊이 성찰하는 과정을 건너뛰는 것. 송 교수가 생각하는 그림자는 이 대목인 듯 했다. 실제로 그는 앞서 쓴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인간 유전체 정보를 '작성'한다

▲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2016년 5월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 의과 대학에서는 합성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과학자와 의료인을 비롯해 법률가, 기업가 등 사회적 리더 150여 명이 모여 인간 유전자를 합성하는 문제를 놓고 비밀리에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 참석자에게 발송한 초청장에 따르면 이 회의는 '향후 10년간 인간 유전자 합성이 가능한지'를 협의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2016년) 6원 2일 이 회의 내용을 중심으로 세계적 권위의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는 'The Genome Project- Write'라고 명명된 인간 유전체 정보를 합성해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다는 과학자의 열망과 계획이 보도되었다.

게놈(genome)은 인간을 만들 수 있는 DNA 정보 전체인 유전체를 뜻한다.


1990년 시작되어 2003년 완결된 인간 유전체 30억 DNA 염기쌍의 서열을 밝혀낸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fect HGP)를 그 서열을 읽어내는(read) 데 중점을 둔 HGP-read로 보고, 그에 대비해 이제는 읽어낸 유전체의 유전 정보 전체를 직접 작성하는 HGP-write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성한다는 의미는 인간의 유전체를 구성하는 DNA 정보 서열 전체를 실험실에서 합성하여 그 작동 여부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개인 맞춤형 의료 시대', 예상보다 빨랐다…"'포스트 게놈 시대', 일단 알아야 한다"


인간 유전자 정보를 읽어내는 수준을 넘어, 만들어내는 구상이 나온 셈이다. 이쯤 되면, 확실히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다. 과연 그래도 되는지 알 수 없으나, "먹어도 괜찮은가요?"라고만 묻는 수준으론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송 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를 하고, 책으로 낸 이유도 그래서다.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려면, 먼저 알아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으며,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연구실에서 만난 그가 한 이야기다.

"2007년에 미국에 갔을 때, '유전체 정보 기반 개인 맞춤형 의료 시대'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리는 걸 봤다. 당시만 해도, 인간 유전체를 읽는데 드는 비용이 엄청나던 시절이다. 100만 원 남짓으로 개인 유전체 전체를 해독하는 날이 이토록 빨리 오리라곤 다들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뜬구름 잡는 토론이겠거니 했었다. 하지만 막상 세미나를 들여다보니, 예상과 달랐다. 과학자와 법률가뿐 아니라 인문학자까지 참석했는데, 정말 진지하고 구체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개인 맞춤형 의료 시대'가 임박했다. 그동안 쌓인 토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런 토론이 열리지 않는다. 설령 열려도, 새로운 과학기술의 성과에 대해 무지한 채 토론에 참가한다. 그러면 안 된다. '포스트 게놈 시대'에 대해 일단 알아야 한다. 그게 먼저다."

"사람들이 기술에 대해 질문하도록 가르쳐야"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머리말 이야기로, 19일 인터뷰를 시작했었다. 머리말 맨 앞에 있는 글이다. 책을 쓴 이유와 통하는 내용일 게다.

"기술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것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술에 대해 질문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기술에 대해 질문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마르틴 하이데거, <기술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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