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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강요하는 사회에서 커머닝하기

[민교협의 시선] 사회의 공공성 회복과 공유지 운동

1. 사회적 공공성의 약화, 각자도생의 시대, 소위 촛불정권의 위기

지난 9월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다소의 반등이 있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정권 초기에 비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 부동산, 교육 등 민생과 직결된 분야에서의 혼란 등이 지지율 하락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지지율 하락이 당장 몇 가지 정책 실패에 의해서만 야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민심이반의 배경에는 국가 제도와 정책들의 공공성이 심하게 훼손되어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적 삶의 안정성이 극도로 취약해짐에 따라 국민 개개인이 각자도생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위기적 상황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국가와 사회의 공공성 상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변화가 이루어지면서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온 과정의 결과이니 굳이 문재인 정권이 그 책임을 오롯이 뒤집어 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국정 실패와 그에 저항한 촛불항쟁의 결과로 문재인 정권이 탄생했다는 맥락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촛불항쟁의 성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은 그 이전의 보수 정권과 달리 우리 사회의 공공성 파괴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보다 적극적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달리 문재인 정권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두려워하여, 부동산과 교육 등 민생과 직결된 분야에서 과감한 개혁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공적인 책임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를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이에 대한 실망감이 최근 지지율 하락의 주된 요인이다.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불만, 부동산 가격의 급등에 따라 발작적으로 폭발하는 도시 중산층의 투기적 욕망과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논쟁 등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 상실로 인해 각자도생의 상태에 빠진 서민들의 절박함이 결합되어 나타난 일들이며, 이러한 혼란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권의 무기력함이 현재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2. 새로운 공공성 가치의 필요성

다시 정리하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의 근원에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것을 개인적 이익를 위해 사사로이 이용하거나 사유화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시스템에 의해 사회의 전반적인 공공성이 약화되고 있음이 자리잡고 있다. 사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모든 국민들로 부터 나오는 국가의 권력을 몇몇 개인이 사유화함을 통해 발생한 것이었고,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촛불항쟁이었다. 촛불항쟁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권력의 대부분은 일부 정치인과 법조인, 관료 집단에 의해 독점되어 사유화되고 있다. 최근 국민들의 공분을 싸고 있는 사립 유치원 비리 사건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사립 유치원들이 국민의 혈세에 기반한 공공적 자원을 사유화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유화의 문제는 이러학 작은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권력은 재벌과 그 일가에 의해 사유화되어, 국민경제의 효율적 작동을 방해하고 있다. 사회적 공기로 기능해야 할 대학 또한 부패한 사학권력, 폐쇄적 학문권력에 의해 사유화되어, 대학과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비슷한 사회적 공기라 할 수 있는 언론 또한 족벌 언론재벌에 의해 사유화되어 정보와 여론에 대한 왜곡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그 사회적 공공성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이 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되고, 이용되어야 할 수 많은 사회적 권력과 자원들이 기업, 관료, 정치인, 엘리트 집단 등에 의해 독점되어 사적이익을 위해 전유되는 사유화가 사회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화 체제에 대한 개혁 없이는 한국 사회의 혁신적 변화는 요원하다. 따라서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가치 정립이 어느 때 보나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가 기폭제가 되어 한국 사회의 급격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이루어지던 2000년대 초중반에 비판적 학자들을 중심으로 공공성 담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이는 외환위기의 상황 속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급격히 확산되면서 민영화, 사유화가 본격 추진되어 사회의 기본적 안전망과 공공성이 급속히 축소되던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진보적 학자들과 지식인들의 반작용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공공성 담론은 국가-시장의 이분법에 바탕을 둔 국가주의적 공공성 담론에 치중되어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사유화 체제에 대한 근본적 도전과 성찰을 이끌어내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새로운 공공성의 담론은 국가-시장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보다 사회화된 공공성의 가치를 확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담론이라 할 수 있다.

3. 공유의 가치를 통한 사회적 공공성의 회복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공유지(혹은 커먼스 commons) 운동은 이 새로운 공공성 담론의 정립에 많은 도움을 준다. 사회학자 윤여일에 따르면, 고전적 의미의 커먼스는 1) 인간 집단이 생존과 생활을 위해 의지하고 이용해야 했던 땅, 산, 숲, 하천, 바다 등 자연의 자연자원과 2) 그 자원들을 함께 이용, 관리하기 위해 형성된 협력적인 사회적 관계와 제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된다(2017, "공동자원론, 오늘의 한국사회를 묻다"). 물론 이러한 전통적 의미의 커먼스와 그와 연결된 공동체는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이 자리잡고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일반화되면서 점차 사라져갔다. 특히, 사유재산제가 보편화되면서 공동의 자원을 같이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은 낡고 사라져야 할 전근대적인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커먼스는 공동의 자연자원이나 전통적 공동체의 협동과 집단주의 문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물과 토지 같은 자연자원 뿐만 아니라 문화적 인공물, 지식 생산물 등과 같은 인간이 만든 사회적 산물도 커먼스에 포함시키면서, 이러한 공동자원을 같이 만들어 사용하고, 관리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커먼스의 범위가 확대되고 공유화를 위한 커머닝(commoning) 활동의 방식이 다양해지는 최근의 변화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의해 사유화로 인한 사회적 위기가 더욱 더 심화된 것과 관련된다. 저명한 비판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자본주의 출발의 기초가 되었던 시원적인 부의 축적이 인클로저의 형성과 같이 이전까지 사회적으로 공유되던 것들을 사유화 시키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갖가지 정치, 사회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공유되던 자원을 사유화하는 과정을 통해 지탱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를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ession)'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경향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 극대화되어, 물, 자연경관, 에너지, 공적연금, 교육, 의료, 주택, 지적 생산물 등 그 이전까지는 국가 기구나 다양한 공동체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되고 이용되던 자원들을 민영화하거나 사유화하여, 상품화하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보편화된다고 하비는 주장하였다.

이처럼 신자유주의화는 사회적인 것의 사유화 경향을 강화하고 커먼스를 파괴하여,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붕괴, 자원배분 부정의의 심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환경적 위험의 증대 등과 같은 사회적 위기를 증폭시켰다. 최근들어 커먼스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커먼스의 개념이 확대되어 새롭게 재해석되는 것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다. 특히, 자원의 관리나 정치경제적 활동에 대한 조정과 통제의 주체가 국가라는 공적 기구가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시장이라는 사적 영역에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로 나뉘어 경쟁하던 기존의 정치경제적 패러다임과 달리, 최근의 커먼스 패러다임은 국가나 시장에 내버려두지 말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치적 운영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원을 공유하여 사용하고 공동으로 관리하여 책임지는 커머닝의 실천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즉, 사회의 공공성 향상에 대해 국가-시장의 이분법에 빠진 기존의 관점을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4. 도시: 공유지 운동과 공공성 회복을 위한 핵심 전쟁터

최근 도시개발의 이익이 사유화되면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된 데서 잘 드러나듯, 한국 사회에서 사유화의 문제가 일상의 차원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도시공간이다. 도시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이 펼쳐지고 온갖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공간인 동시에, 그 공간을 이용하고 전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집합적으로 만들어낸 공동의 생산물이자 작품이다. 하지만, 투기적 욕망에 기댄 도시개발과정은 이윤 추구를 위한 공간의 사유화와 상품화를 초래하여, 도시를 자유로운 소통과 만남의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을 막고 모두의 작품이어야 할 도시를 소수의 독점물로 만들고 있다. 투기적 개발과 공간의 사유화로 인해 도시공간에는 수많은 인클로저들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로 임대료 상승, 주거비 급등, 내쫓김, 젠트리피케이션 등과 같은 불행과 재난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파괴적인 도시화 과정을 나날의 삶 속에서 겪으면서, 경쟁과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한국의 도시에서는 최근 들어 이러한 사유화의 문제에 저항하는 다양한 유형의 공유지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홍대의 두리반, 인천의 배다리 마을, 성북공유지 원탁회의, 이태원의 테이크아웃드로잉, 경의선공유지 운동 등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방식의 공유지 운동이 한국 도시의 곳곳에서 등장하였고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지금 현재 공덕역 옆의 경의선 부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유지 운동이다. 사실 서울에서 경의선은 도시 공간 사유화의 폐해인 젠트리피케이션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2005년 경의선 일부 구간이 지하화되면서 그 지상구간에 대한 공원화와 대규모 상업적 재개발이 실시되었고, 이는 인근 지역에서 극심한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유발하였다. 다행히도 경의선 부지 중 공덕역 바로 옆 공간은 아직 미개발된 채로 남아있다. 이 공간에 대해 시민주체들은 투기적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상업화된 공간개발이 아닌 공유지 원리에 입각한 도시공간의 활용이라는 대안적 이용방식을 제안하였고, ‘늘장협동조합’을 만들어 2013-15년까지 플리마켓 등을 운영하며 지역경제생태계 활성화와 공유지의 공공성을 확보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마저도 대기업에 의한 개발이 추진되었다. 사용되지 않는 철도시설과 부지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철도시설관리공단은 이 공간의 개발권을 이랜드에게 넘겼고, 이랜드는 이랜드공덕이라는 개발회사를 만들어 이 공간에 대한 개발을 추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늘장협동조합’은 2015년 말에 마포구로부터 퇴거명령을 받았다. 이에 여러 시민주체가 ‘늘장협동조합’과 결합해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시민주체가 직접 계획하고 만들고 활용하는 시민주도의 주체적 공유지 활용을 모색하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현재 경의선 공유지 운동주체들은 단순한 공간의 점거와 대안적 활용을 추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유화 방식에 기댄 투기적 도시화를 넘어 공유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대안적 도시개발의 실천 모델을 만들어 보려는 야심찬 기획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연구자, 예술가, 문화활동가 등과 결합하여 '연구자의 집', '공유도시랩' 등을 이 공간에 설립하여 새로운 도시/사회 혁신의 실험장을 건설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의선 철길 주변에는 서강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유수의 대학들이 위치해 있고, 그 뿐 아니라 이 곳 경의선공유지가 서울의 그 외 주요 대학으로의 접근성도 매우 좋은 편이다. 이들 대학의 내부와 외부에서 생성된 지식, 문화, 예술의 다양한 가치들이 공덕역 옆 경의선 부지에서 모이고 공유되며, 시민들의 자발적 힘과 결합되어 보다 포용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사회혁신과 도시재생의 새로운 에너지가 창발되기를 이들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에서 잘 보여지듯, 공유지 운동은 권력과 자원을 여러 시민들이 공동으로 생산하고 나누며 새롭게 사회화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각자도생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다양한 삶의 위기를 개별화된 개인들이 따로따로 극복하려 노력하기 보다, 서로 연결하고 의지하면서 극복하는 보다 사회화된 시스템이 새롭게 창출되어 그 동안 파괴된 우리 사회의 공공성의 가치가 새롭게 정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유화한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의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더 이상 사유화 체제의 기득권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국가와 사회의 공공성 회복에 소극적으로 임하지 말고, 공유지 운동과 같이 사회의 공공성을 되살리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을 적극 지원하여 우리 국가와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길에 적극 나설 것을 간절히 바란다.

박배균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는 민주화를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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