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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나도 꽃피면 풀밭이 꽃밭으로"에 담긴 속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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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나도 꽃피면 풀밭이 꽃밭으로"에 담긴 속뜻은

[이철희 칼럼] 문재인은 '안철수'가 돼야 한다

안철수가 또 민주당을 살렸다. 안철수는 처음 '현상'으로 등장해 '박근혜 대세론'을 저지했다. '후보'로서 안철수는 총선 패배로 멀어진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다시 끌어올려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까지 덩달아 오르게 만들었다. 민주당 혁신을 추동했고, 마침내 후보 단일화를 이뤄주었다.

민주당이 안철수를 대한 태도는 실망스럽다. 무소속대통령 불가론으로 공세를 펴는 등 정치현실에서 불가피한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과연 그 길밖에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안철수를 파트너로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강박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문재인 후보가 백만 선거인단 운운하며 양보할 수 없다고 한 말은 그에게 과연 수평적 단일화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했다. 무릇 단일화는 '내가 아닐 수 있다'는 불확실성(uncertainty)을 전제로 해야 대등한 경쟁이 되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런 민주당을 안철수가 살려줬다. 문재인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국민 여러분,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입니다. 그러니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 저를 꾸짖어 주시고 문재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주십시오." 1987년 분열해서 민주정부의 출현을 지체시킨 김대중·김영삼의 선택, 단일화에 합의하고 같이 선거운동까지 했으면서도 투표 전날 파기하고 밤늦게 찾아온 노무현을 차갑게 문전박대한 정몽준의 몽니에 비하면 그야말로 대승적 결단에 아름다운 양보다.

'문재인의 운명은 안철수의 생각에 달렸다.' 어느 네티즌의 이 평가는 대선 성패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문재인 후보는 자력으로 이기기 어렵다. 안철수의 도움은 불가피하다. 안철수 없는 대선구도는 민주당에게 절망이다. 그러니 이제 그의 '양보'에 더해 '지원'까지 얻어내야 한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민주당의 못난 점, 문재인 후보의 부족한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민주당이 만약 안철수의 도움을 다시 압박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민주당은 안철수가 도울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하고, 활동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안철수는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출마했다. 그런 그가 인적 혁신조차 못하는 민주당과 단일화 협의에 나선 것은 정권교체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단일화를 되레 인적 혁신을 회피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새정치위원회의 지도부 총사퇴 결의도 덮어버렸다. 민주당이 그나마 마지못해 인적 청산에 나선 것은 안철수가 협상중단이란 강수를 뒀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이번 대선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예컨대 정신적 후보의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민주당이 혁신해야 한다. 혁신 프로그램의 일부는 지금 당장 실천하고, 일부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의 민주당을 고집해선 안 된다. 당내의 낡은 질서를 어떻게 혁파할 것인지를 넘어 새로운 주체세력을 선보여야 하고, 더 크고 새로운 정당, 혁신적인 모습의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는 청사진도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이 쇄신을 길을 선택해야 안철수도 민주당을 도울 수 있다.

▲ 사퇴 기자회견 중인 안철수 후보. ⓒ뉴시스

이런 과정 없이 정권교체를 이유로 내세우면서 안철수에게 도와달라고 읍소하거나 강박한다면 그것은 구태적 발상이다.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의 어젠더, 즉 정치혁신을 구현해 나가면 안철수로서도 거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고 피력한 안철수가 도우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쇄신을 위해 돕는다는 명분이 주어져야 한다. 이것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의 몫이다. 문재인이 '안철수'가 되는 게 핵심이다.

안철수가 만약 사퇴 회견문에서 밝힌 "제게 주어진 시대와 역사의 소명"이 새로운 정당의 창당이라면 민주당은 또다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겨도 안철수 신당은 태풍의 핵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문 후보와 민주당은 얕은 수로 이기는 게임의 논리에 빠지지 말고, 크고 넓게 판을 바꾸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 대목에서 문재인 후보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구각을 깨지 못하는 리더십으론 '독한' 박근혜 후보와 결연한 보수를 이길 수 없다.

안철수는 좋은 선택을 했다. 그대로 갔으면 후보단일화에서 패배했을 것이다. 최종안으로 제안한 '가상대결 50% + 지지도 50%'의 여론조사 방식으로도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흐름에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결단을 폄훼할 일은 아니다. 냉정한 상황인식이야말로 훌륭한 정치의 덕목이고, 떠밀려 하는 결단조차 정말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정치적 리더가 아니라 정치쇄신의 개혁운동을 이끄는 사회적 리더가 됐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거둔 소중한 소득 중 하나다.

그는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했다. 백의종군이 뭘까? 그냥 자리를 맡지 않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2선에 물러앉아 있겠다는 것인지 명료하지 않다. 논리적으로 보면 2선에 있으면서 정권교체를 위한 노력을 한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백의종군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예를 떠올리게 한다. 선대위에 참여하든 말든 그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은 그에게 부여된 시대적 의무다. 그 참여와 헌신이 있어야 대선 후 정치를 바꾸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사퇴하면서 국민들이 자신을 불러냈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들이 안철수를 호명한 것은 변화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변화란 것이 요컨대 현실에 대한 부정에 다름 아니다. 바꿔야 할 대상인 현실, 즉 낡은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이다. 한때 박근혜 후보가 낡은 체제와 갈라서는 듯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지만, 정치적 정체성에서 박근혜와 이회창은 일심동체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변화를 위해서라면 새누리당, 더 크게는 낡은 보수를 퇴장시키는 정권교체가 필수적이다.

그럼 민주당이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딱 부러지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민주당에게서 보이는 구태 역시 만만찮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민주당에게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동하고 강제할 대중적 동력이 안철수라는 인물로 응축되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민주당이 인적 쇄신에 나선 것도 안철수가 요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안철수가 일방적으로 사퇴해 민주당과 한 몸으로 묶이지 않은 것이 아쉬울 수 있지만, 민주당과 적당한 거리를 두여야 혁신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선택이라 하겠다.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를 도와야 한다. 돕지 않으면 이래라 저래라 말할 자격이 없다. 도울 건 도우면서, 다른 한편 변화를 강제할 것은 하면서 정권교체를 통한 정치쇄신의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다른 선택이 없다. 지금의 '박근혜 모델'은 변화가 아니라 정체다. 개혁보수가 아니라 반공보수·시장보수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 MB정부 2기라 불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변화를 위해서라도 안철수는 정권교체에 매진해야 한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선거'가 아니라 '안철수 선거'가 되어야 한다. 40%가 넘는 고정 지지층을 가진 박근혜 후보다. 그에 대한 찬반으로 선거가 치러진다. 박 후보의 전략대로 사회경제적 약자와 20~30대는 투표동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로써 결국 박 후보가 승리하는 것이 박근혜 선거다. 안철수 선거는 안철수의 적극적 참여로, 그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던 새로운 유권자들이 정치를 발견하고 선거에 참여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의 승자는 안철수가 되어야 한다.

설사 현직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선거사에서 후보 외에 이처럼 승패에 결정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은 없었다. 안철수의 힘이다. 그 힘이 사회경제적 약자, 20~30대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추동력이 된다면 그의 이번 사퇴는 더 크게 보상받을 것이다. 지난 11월 20일 안철수는 토론회에서 조동화의 시를 읊었다. '나 하나 꽃 피어'란 제목의 시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마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마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그가 꽃을 피우는 봄바람이 되고, 산을 물들게 하는 가을향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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