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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여성'은 이명박의 '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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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여성'은 이명박의 '녹색'이다

[대선읽기]<32>우리는 진짜 '여성인 대통령'을 원하나?

박근혜 후보가 전략을 다소 수정했다. 그는 18일 열린 비전선포식에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준비된 여성 대통령"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었다.

두 가지다. 첫째, 경제민주화를 사실상 버리면서 중도층 전략 공백을 메우기 위한 목적이 엿보인다. 여직원, 여경, 여대생과 같은 말 조합과 달리, 여성 대통령, 여성 장관, 여성 대법관 같은 타이틀은 이른바 '선진화' 이미지로 포장된 '진보성'을 띤다. 최소한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다. '여성 대통령'을 내걸고 수도권 일정을 줄줄이 잡는 것을 보면, 그가 어필하려는 대상은 정해져 있다. 수도권 중간층 여성이다.

둘째, 단일화에 대항할 '카드'가 부재한 상황에서 '여성 대통령론'으로 맞불을 놓기 위함이다. 셋째, 그동안 고수했던 '강자' 이미지를 벗기 위함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여성 대통령론'은 '방어용'이라는 성격을 갖게 된다. '여성 대통령론'을 전면에 내거는 과정에서 몇 가지 선거 전술에 대한 수정이 일어난 것은 이같은 추측에 신빙성을 더한다. '강자' 이미지 벗고 '약자' 이미지 쓰기, 이 부분이 중요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열린 여성혁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한민국 여성혁명 시대를 선포합니다'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있다.박 후보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변화이고 쇄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무리 큰 변화를 강조해도 이것보다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강자' 이미지에서 '피해자' 이미지로 '환승'

박근혜 후보에게 '젠더'로서 '여성성'이 있느냐는 문제는 논외로 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어찌됐건 여성이 맞다. 다만 선거 전략만 놓고 볼 때, 박 후보는 여성의 이미지가 주는 '약자' 컨셉을 선별적으로 차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 대통령 논란과 별개로, 최근 새누리당은 박 후보를 '피해자'로 포장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방송 장악 이미지', '연예인 이미지'와 같은 반대파의 공격 포인트를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 희한한 상황은 자주 연출된다. 일례로 김재철-최필립 비밀 회동, MBC 편파방송 시비의 한 가운데 섰던 박 후보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역 편파방송'론을 제기하고 있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야권 후보 토론회 생중계와 관련해 19일 "만일 생중계를 한다면 후보로 살아남는 사람에게 90분의 일방적 홍보시간을 깔아주는 것밖에 안된다"며 "이것은 심각한 불공정이고 심각한 불균형 방송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문방위원들은 지난 14일 방송사3사를 직접 항의 방문하는 '퍼포먼스'까지 펼쳤다. 야권 후보가 두명인데, 새누리당 후보가 한명이므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보도 비중은 절반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세 후보에게 똑같은 전파가 소비되는 것은 '편파 방송'이라는 것.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저는 그 분(박근혜)이 꾸미지 않고 수수한 부분이 너무 아름답다. 여기는 우리가 연예인을 뽑는 것이 아니다. 저는 요새 희대의 정치 사기극, 단일화하는 것을 보면서 무슨 연예인을 뽑는 것 같다. 남자 두 분이 화장하고 다니고 메이크업, 온갖 옷을 갈아 입는데 박근혜 후보는 혼자 다니고 혼자 화장하고 혼자 머리를 빗으시는 것을 보고는, 저렇게 순수하고 깨끗한 분이 정치를 해야겠다고 존경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 같다'는 것은 박 후보를 표현할 때 쓰던 단골 수사였다. 이미지의 '전도'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새누리당은 지금 이미지의 '전도'를 유도하고 있다. 박 후보를 비판하던 논리를 고스란히 상대 후보에게 돌려주는 전술을 택한 것으로도 보인다. "우리도 약자"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이 가운데, 박 후보의 여성성을 풍자한 미술 작품에 법적 대응을 하기로 한 점은 주목된다. 새누리당은 민중미술가 홍성담 화백의 유화 작품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의 표현 방식을 두고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미술작품 내용을 가지고 작가를 고소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일이다. '생식기 발언' 논란에 이어 새누리당은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 후보의 숭고한 '여성미'가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미술가와 심리학 교수를 '가해자'이자 '탄압자'로 설정한다.

이 정도 상황이면,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박근혜 후보에게 적용하는 것 조차 '여성 비하'가 될 수 있다. '여성 대통령은 나올 수 없다'는 주장이 불합리하다는 '당위성'을 이용해 자신에게 들어오는 공격을 '방어'하겠다는 전술이다. 박근혜 식 '여성 대통령론'은 이 지점에서 탄생힌다.

박 후보가 지난 4년 동안 '여성 대통령'을 단 한번도 강조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여성 대통령론'은 뜬금없는'변신'에 가까운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고, 당의 전면 쇄신을 이끌고, 4.11총선을 승리로 만든 '강한 박근혜' 이미지가 대선을 30일 앞둔 지금 갑자기 실종된 것이다. '독재자의 딸' 이미지 역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수사로 희석될 수 있다. 야권의 단일화 역시 '여성 대통령' 탄생을 막는 이벤트가 된다.

박근혜가 차용한 '여성' 담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의 비판론에 맞서 '친환경 4대강 사업'론을 폈다. 가장 '녹색'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는 '녹색 성장'이라는 조어를 개발해 냈다. 가장 '공정'과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그는 '공정 사회' 화두를 던졌다. 환경, 녹색, 공정을 선점했지만, 그러나 남은 것은 단어의 오염이었다. 단 한번도 '여성 대통령'을 강조한 적이 없는 박근혜 후보가 선거 30일 전 '여성 대통령'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의 '뜬금없는' 수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성혁명시대'를 외치는 박근혜 후보가 어떤 '혁명적 성' 담론을 제안하고 주도했던 적이 있었나? 그 점에서는 '녹색'이라는 말의 참 뜻을 모르는 채 '녹색'을 외쳐왔던 이명박 대통령과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갖게 될까. 2012년, 지금 대한민국은 '여성인 대통령'을 원하는가? 아니다. "대통령을 원하는데 그가 여성일 수도 있다"는 수준의 담론을 새누리당은 "대통령을 원하는데 그는 여성이어야 한다"의 당위성으로 포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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