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일제 강제징용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외교부가 제출한 '강제징용 의견서'에 "객관적인 사실관계만 들어가 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윤 전 장관은 "최종적 의견서를 보면 어디에도 어느 한쪽을 치우치게 편드는 이야기는 없다"며 "아주 균형 잡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실관계만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전 장관은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하는 과정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역대 정부가 취했던 객관적인 입장을 사실로서는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박근혜 정부의 의견은 일체 들어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윤 전 장관은 또한 해당 재판을 주제로 2013년 12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소집한 회의에 참석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회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것 자체는 기억난다. 다만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회의의 내용을 묻는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외교부 장관으로서 (회의에) 가서 현황을 보고했다. 가기 전에 사전에 (외교부) 내부 회의도 해서 준비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회의에서 윤 전 장관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다는 김기춘 전 실장의 진술이 맞냐는 이인영 의원의 질문에 윤 전 장관은 "사안 자체가 제가 1차적으로 보고하는 형식이었을 것이라고 기억된다"고 말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일본의 강제 징용 피해자 9명이 일본의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피해 배상을 요구한 소송과 관련한 내용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송에서 1, 2심은 모두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2012년 5월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해당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이에 따라 2013년 7월 서울고법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었다.
서울 고법의 판결에 신일본제철 측이 불복해 재상고 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다시 넘어왔으나, 대법원은 석연찮은 이유로 5년째 판결을 미뤄왔다.
그러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양승태 사법부가 김기춘 비서실장 등과 해당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로 공모한 정황이 드러나 재판거래 의혹으로 불거졌다. 한일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한 '박근혜 외교부'가 대법원에 판결 방향을 제시하고, 대신 대법원은 법관의 해외 파견처를 확보하는 대가를 주고받는, 이른바 '재판 거래' 의심을 살만한 법원행정처 문건이 나온 것이다.
검찰은 주철기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임종헌 당시 법원 행정처 차장과 만난 이후 윤병세 당시 장관에게 법관의 파견 자리를 명시한 서신을 전달했고, 이후 실제 2014년 6월부터 유엔대표부에 '사법협력관'이라는 직책으로 법관이 파견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주철기 전 수석으로부터 서신을 받은 적이 있냐는 이석현 의원의 질문에 윤 전 장관은 "기억이 없다"고 발뺌했다. 또 법원이 원했던 대로 판사를 외교 직책으로 파견한 것이 사실이냐는 이 의원의 질문에 윤 전 장관은 "해당 공관장과 본부의 실‧국장 의견을 듣고 관련 부서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방향(법관 파견)에 동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재판 거래를 위해 2013년 12월 김기춘 전 실장과 차한상 당시 법원행정처장, 윤 전 장관이 회의를 갖고 강제징용 재판 관련 서울고법의 판결을 뒤집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논의를 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회의에서 외교부가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건의를 하지 않았다"고 전면 부인했다.
한편 5년을 끌어온 일제 강제노역 관련 재판은 오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통해 결론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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