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평양공동선언'과 그 부속합의서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국무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 비준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환영'하고 있지만, 보수정당을 자임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한국당의 반발이 거세다. 반발 논리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평양선언의 상위에 있는 판문점선언이 비준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를 먼저 비준한 것은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군사합의서는 국가 안보에 심대한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인데 국회 비준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근거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포함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성격이 짙다. 우선 판문점선언의 비준을 거부한 당사자는 바로 한국당이다. 한국당의 반대로 9월 11일 국회에 제출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이 본회의는 고사하고 상임위에 상정도 안 된 것이다. 그래놓고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적반하장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행태이다.
한국당이 '위헌'이라고 규정한 군사합의서 비준에 대한 비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국회 비준을 거쳤다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당은 판문점선언조차 비준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군사합의서를 비준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였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 중지",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우발적인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교전수칙의 공동 적용 등 핵심적인 합의 사항들의 적용 시점이 "11월 1일부터"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비준한 23일은 적용 시점으로부터 불과 9일밖에 남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북한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비준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만약 비준하지 않은 상황에서 11월 1일부터 상기한 합의의 이행에 돌입한다면, 한국당은 이 역시 '위헌'이라며 비난하고 나섰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했더라도 국회에서 11월 1일 이내에 처리될 가능성도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여 문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남남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해묵은,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은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흔히 '외교안보에는 진보도, 보수도, 여야도 없다'고들 하지만, 그 어떤 문제보다도 진보와 보수, 여와 야의 갈등을 유발하는 사안이라는 점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보수의 '변화'와 진보의 '성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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