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석 북핵 협상가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1일 방미 길에 올랐다. 평화교섭본부장은 과거 북핵 6자회담이 열리면 한국 측 수석대표를 당연직으로 맡았던 직위다. 이 본부장의 카운터파트는 미국 측에서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북한 측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다. 비건-최선희 간 실무접촉이 예정보다 늦어지며 북미 정상회담이 올해 중이 아닌 내년 초로 연기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 가운데, 이 본부장이 먼저 비건 대표를 만나러 미국을 찾는 것이어서 눈길이 쏠린다.
이도훈 본부장은 이날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 북한 사이 다양한 대화와 접촉이 추진되고 있다"며 "미국에 가서 비건 대표와 만나 미국의 계획을 들어 보고, 앞으로 어떻게 비핵화를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협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비핵화는 한미 공조의 토대 위에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으면서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노련한 외교관인 그가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추진'되고 있다고 말한 점도 눈길을 끌지만, 그보다 초점은 '다양한'이라는 표현이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9일(멕시코 현지시간) <미국의 소리> 인터뷰에서 자신과 북한 측 관리 간의 고위급 회담들(senior leader meetings)이 "열흘 내에"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었다. (☞관련 기사 : 폼페이오 곧 '북미고위급대화' 언급 주목…北김여정 방미 가능성)
일각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같은 발언과 관련, 미국이 비건-최선희 라인을 건너뛰고 고위급 회담을 통해 실무선의 정체 상태를 뚫어내려 하는 게 아니냐는 풀이도 나왔다. 회담 대상, 시간, 장소를 모두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폼페이오 장관의 기존 카운터파트(김영철·리용호)가 아닌 북한 특사가 미국을 방문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김여정 방미설' 보도의 근간이다.
이도훈 본부장은 폼페이오 장관의 말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 관계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복잡하게 진행되니 잘 들어보고 정리해야 한다"며 "여러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어떤 것이 제일 정확한지 들어봐야 할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이 본부장은 비건-최선희 라인의 실무 접촉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번에 가서 들어봐야 한다"면서도 "시간을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이지, '되느냐 안 되느냐' 단계는 지난 것 같다"고 낙관론을 폈다. '시간'이라는 말은, 폼페이오 장관과 '북한 측 카운터파트' 간의 고위급 회담이 먼저 이뤄지고 비건-최선희 라인이 바통을 이어받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실무 접촉이 먼저 이뤄지고 이후 고위급 회담을 한다는 것인지 여부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수석대표들 간의 접촉은 최근 다각도로 이뤄져 왔다. 이도훈 본부장은 지난 19일 중국을 찾아 쿵쉬안유(孔铉佑)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다. 비건 대표는 16일 러시아를 방문,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면담했다. 이에 앞서 지난 9일 쿵쉬안유 부부장과 모르굴로프 차관은 모스크바에서 최선희 부상과 함께 북중러 6자회담 수석대표들 간의 3자 회담을 가졌다. 최 부상은 8일 러시아와, 4일 중국과 각각 양자회담을 가졌다.
즉 먼저 북중러 간 회동을 가진 후, 그 결과에 대해 한국은 중국으로부터(이도훈-쿵쉬안유), 미국은 러시아로부터(비건-이르굴로프) 각각 결과를 전해들은 셈이다. 이번 이도훈 본부장의 방미는 이 본부장이 비건 대표를 만나 각자 들은 얘기를 맞춰 보고, 한미 양국 간 공조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성격의 자리인 셈이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현지시간 20일 네바다주 중간선거 유세에서 "우리는 북한과 전쟁을 치를 뻔했다"고 전임 오바마 행정부를 비난한 뒤 "그것(북한 문제)은 잘 될 것이다. 서두르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미사일 발사도 없고, 인질들도 돌아왔다"며 거듭 '잘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다만 '서두르지 말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올해를 넘길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싣는다. 전날인 19일 한 미국 고위당국자는 <로이터> 통신 등 일부 언론 기자들에게 "2차 북미정상회담은 내년 1월 1일(the first of the year) 이후가 될 것 같다"며 회담 연기 가능성을 흘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 덴마크 현지시간으로 20일 오후 열린 한-덴마크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이미 생산해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과 장거리 미사일을 다 폐기해야 완성이 되나, 비핵화에 대한 프로세스와 그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 등의 '타임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주제가 될 것"이라며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2차 북미 정상회담 내년 초 개최설에 대해 "좀 지켜보자"며 반응을 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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