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교황이 사상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다면, 그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교황 방북 자체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는 과정이 되고, 이는 미국과 북한, 국제 사회의 태도 변화를 견인할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북한으로서는 '정상 국가'로 발돋움할 계기가 될 수 있다.
교황의 방북 시기는 현재로서는 내년 봄 일본 방문 일정과 맞물리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제가 들은 바로는 교황이 내년 봄에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하신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측이 초청장을 보내며 성의를 보이면 방북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북한과 교황청이 수교를 맺은 상태가 아니기에, 교황이 실제로 방북하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먼저 북한 정부와 천주교회가 바티칸에 공식 초청장을 보내야 한다. 또 교황이 방문하면 의전상 그 국가 천주교주교회의 의장과 방문 도시 교구장이 교황을 맞이해야 한다.
문제는 평양에 바티칸이 인정한 천주교 신부가 없다는 점이다. 바티칸은 서울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에게 평양교구장을 겸임하도록 하고 있다.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려면 서울에서 염수정 추기경과 함께하거나, 교황의 과감한 정치적 결단으로 의전 절차를 생략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북한에는 '정상 외교' 무대, 남한에는 '평화 프로세스' 지지 효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공식 초청장 없이 구두 초청만으로 방북을 수락한 것을 두고는 '파격적인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교황이 정치적인 부담을 감수하고, 한반도 평화의 촉진자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현재 북한은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있고, 교황청과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만약 교황이 결단으로 북한을 방문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지난 6.10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국제 사회의 공식 외교 데뷔 무대를 마련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교황이 만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북한 시민들에게도 변화를 이끌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종교 개방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이끌어온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교황이 평화 협정과 냉전 체제 종식에 힘을 실어주는 것 자체가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교황이 북한에서 분단 체제 극복이나 평화의 메시지를 낸다면, 비핵화와 평화협정 협상에 돌입한 미국과 북한 모두에 압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교황은 2015년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북한과 교황청 사이에 접촉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 70주년 행사에서 강명철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바 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 위원장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창 동계올림픽, 4.27 남북 정상회담, 6.10 북미 정상회담 등 중요한 고비 때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각별한 관심을 쏟아왔다. 교황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현재 문 대통령은 유럽을 순방하며 '조건부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데, 교황이 문 대통령의 '중재 외교'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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