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효과의 첫 번째 부분은 박근혜 후보의 대세론이 사라진 것이다. 안 후보는 중도와 무당파를 지지기반으로 삼는 포지셔닝(positioning)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중도보수의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도 상당수 안 후보의 지지층으로 묶여 있다. 만약에 안 후보가 없었더라면 이들은 대체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안철수는 잠재적 주자일때나 후보일 때나 야당 후보가 약할 때 박 후보의 확장을 막는 방어벽이다.
지난 7월에 발간한『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입장에 비하면 9월 19일 출마 선언문은 일종의 우클릭으로 불릴 만한 것이었다. 성장과 안보를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로 선출된 마당이니 그의 블루 오션은 중도와 무당파이다. 이들을 겨냥한 우클릭으로 인해 보수성향을 일부 가진 중도·무당파들이 안 후보 지지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곧 박 후보의 지지율 확장이 벽에 부딪히게 됐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역사인식 논란이 더해져 박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했고, 결국 대세론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안철수 효과의 두 번째 부분은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늘어난 것이다. 안 후보의 출마선언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즉 새누리당 후보보다 야권 후보를 찍겠다는 여론이 많이 늘어났다. 안 후보와 문 후보의 경쟁이 빚어내는 시너지 효과이기도 하지만 마침내 박 후보를 이기는 강자가 선수로 나섰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정권교체의 열망이 더 깊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 '박근혜 대세론'이 꺼지고 '문-안 대세론'이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의원이 '박' 대세론에서 '문·안' 대안론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박 후보가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하고 있다고도 했다. 여론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는 지적이다. 아직 박 후보가 앞서고 있긴 하지만 야권의 두 후보 지지율을 합하면 박 후보를 제법 앞선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 2007년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맞붙은 새누리당의 당내 경선에서 누가 이기는지가 대선의 핵심 관심 포인트였다면 이제는 야권의 단일후보로 누가 되느냐가 핵심 포인트가 됐다. 이런 구도에서는 박 후보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자연스레 지지율도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철수 효과의 세 번째 요소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다. 야권 후보에 대한 관심이 주목을 받다보니 당연히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후보 정체성을 보면 큰 틀에서 안 후보나 문 후보는 비슷하다. 그 결과 안 후보가 1:1 대결에서 박 후보를 앞서니 그와 비슷한 문 후보의 지지율도 동반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1:1 대결에서 문 후보가 박 후보에게 밀리지 않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박 후보의 지지율 정체로 인해 야권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민주당 지지층이 이제 심리적 여유를 갖고 문 후보를 지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자당의 문 후보도 박 후보에게 이기는 흐름이니 같은 값이면 문 후보를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것이 문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문 후보나 민주당이 그리 흥분할 일은 아니다.
요컨대, 안철수 효과로 인해 심리적 안도감을 갖게 된 민주당 지지층이 문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문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게 됐다. 결국 안철수 효과의 수혜자는 안 후보가 아니라 문 후보라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로는 의외의 결과에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민주당이 문재인을 후보로 선출한 순간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는 게 옳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지금은 안철수가 후보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1:1의 대결에서 문 후보가 안철수 효과를 누리고 있다. 만약 안 후보가 없다면 과연 안 후보를 지지하는 층이 얼마나 문 후보 지지로 결집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안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을 때보다 문 후보가 단일후보로 되었을 때 '잃어버리는 표'가 더 많다. 안철수가 후보로 존재할 때조차 이런데 만약 그가 더 이상 후보로서 게임의 당자사가 아니라면 '잃어버리는 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여론조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문 후보의 상승세는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에 힘입은 바 크다.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에다 무당파가 부동층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탈한 일부는 박 후보에게로 갔다. 만약 지금보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더 빠지고, 그에게서 이탈한 표의 일부가 박 후보에게로 옮겨가면 1:1 대결에서 박 후보가 우위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안철수 효과가 사라지면 박근혜 대세론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문 후보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지지율이 오른다고 배짱 튕길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제는 안 후보와 문 후보 간에 차별화의 경쟁과 더불어 일체화의 공조가 필요하다. 서로의 지지층이 합일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컨대, 투표시간 연장과 같은 이슈를 중심으로 안 후보 쪽과 문 후보 쪽이 함께 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투쟁의 경험을 통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한편 두 후보의 지지층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두 후보의 지지층이 공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책대안이 비슷한 어젠더를 중심으로 공동 캠페인을 펼치는 것도 필요하다.
안 후보는 이제 선택의 지점에 서 있다. 안철수는 대선후보로의 등장 그 자체로 변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데 박근혜, 문재인 등과 후보로서 경쟁하는 구도에 익숙해지다 보면 대중의 눈에 그의 존재가 상징하는 변화의 선명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제는 메시지와 정책, 그리고 리더십에서 변화의 차별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변화 대 안정 또는 정체의 구도가 희석되면 될수록 안 후보의 강세는 퇴색할 것이다.
조직이 없으니 안 후보가 믿을 것은 대중의 동원뿐이다. '안철수 구하기'의 대중적 운동이 일어나야만 기존 정당의 후보들과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를 좋아하기는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켜줘야겠다는 심리적 열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안 후보는 계속 밀릴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중도·무당파를 결집시키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중도·무당파는 결집력, 충성도에서 정당 지지층에 비해 밀리기 때문이다.
또 안 후보가 고려해야 할 점은 중도(moderate)나 무당파(independent)라고 해서 기존 정당에 대한 선호가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중도에서도 보수적 중도와 진보적 중도가 있다. 흔히 중도우파나 중도좌파로 불리는 것이다. 무당파라고 해도 선거 때마다 특정 정당을 찍어온 사람들, 즉 편향된(lean) 무당파가 적지 않다. 따라서 무당파라고 해서 정당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제 안 후보는 보다 분명한 좌클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정권교체 담론을 꺼내 든 것은 적절해 보인다.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잘못하면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 민주당 지지층은 결집하지만 중도·무당층의 지지가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면 후보단일화 게임에선 이길 수 있지만 본선 경쟁력은 강화되기 어렵다. 여전히 문 후보는 약하다. 아직 안 후보를 더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층의 일부를 잡기 위해서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거나 그에 대한 지지와 이탈을 반복하는 중도·무당층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혁신이 필수적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친노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건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안 후보는 민주당 쇄신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미흡하다. 보다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민주당 혁신을 압박했어야 했다. 그러나 어쨌든 민주당에 대한 변화를 공개적으로 다시 요구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편 새누리당이 인적 쇄신이 수순에 들어갔다. 따라서 이제 공은 다시 문 후보에게로 넘어왔다. 이런 때에 어정쩡한 행보는 큰 손실을 낳을 것이다. 그의 선택에 따라 향후 경선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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