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과 사회가 바뀌고 있다고들 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파리협정(Paris Agreement)에 참여해 지구적 비상사태에 공동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교토의정서를 연장하고서도 좀처럼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파국을 막고자 탄생한 것이 바로 파리협정이다.
이 타협책은 많은 쟁점을 남겼는데, 기온 상승 제한 목표 설정이 대표적이다. 기존 목표치 2도, 그 이하를 지향하되 가급적 1.5도까지 낮춰보기로 했다. 그 결과, 지난 10월 8일 인천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작성한 <1.5도 특별보고서 :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SR1.5 SPM)>이 승인됐다. 올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릴 유엔 기후총회(COP24)에서 기후과학의 새로운 근거로 제시되고 기후정치의 준거로 활용될 것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평가하듯 SR1.5 SPM는 기후행동에 긍정적인 계기임에 분명하다. 1.5도 온난화에 비해 2도 온난화가 주는 파괴성이 현저하기 때문에, 지구적 차원뿐 아니라 국가적 수준에서도 기존 목표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줄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인 실천을 촉구하는 사회적 흐름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SR1.5 SPM의 의미를 조금 비틀어보면 핵심도 바뀐다. 상승치가 1.5도가 되더라도 엄청난 피해와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1850~1990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이 2006~2015년에 약 1도 상승했으며, 최근 추세를 반영하면 10년마다 0.2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 속도라면 2030~2052년 사이에 1.5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때문에 IPCC는 2100년까지 상승폭을 1.5도로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net emissions)을 45% 감축하고, 2050년에는 순 제로(net zero: 배출과 흡수의 균형으로 탄소중립을 의미)에 도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2030년까지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1.5도 달성은 대단히 어려워진다고 경고한다.
현재 각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국가별 감축목표(NDC)를 이행하더라도 2100년에는 3도 상승이 예상되니, 각국은 2020년까지 최종 제출할 NDC를 대폭 수정해야 한다. 1.5도조차도 안정적인 기후시스템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여건을 반영해 1.5도로 목표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하다는 것이 SR1.5의 요지라고 생각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비롯한 사회 전 부문에서 대대적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SR1.5 SPM와 IPCC에 공개된 자료를 종합하면, 2050년까지 1차 에너지의 50~65%와 전력 생산의 70~8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 산업부문의 배출량은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75~90%를 감축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제시된 네 가지 배출 경로는 에너지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의 이행은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사회시스템 전환과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참여적, 통합적 전환관리를 통해 지구적, 국가적, 지역적 수준에서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으며, 정의로운 전환과 전환적 회복력은 전화과정에서 발생할 부작용을 해결할 잠재력을 갖는다.
IPCC의 작업에 내재한 탄소예산(carbon budget) 산정이나 네거티브 배출(negative emissions) 기술 활용에 대한 쟁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이들도 있다. 기후대응과 에너지전환의 연결고리를 무시한 채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철지난 주문을 외는 세력이 그렇다. 사회적 수용성과 정치적 관여를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IPCC의 시나리오 작업 특성 상 기존 학술자료와 데이터를 집대성해 확률과 신뢰도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창조물이 SR1.5다. 2014년 발표된 5차 평가보고서(AR5)까지 핵발전을 포함한 에너지원에 대한 설명은 때마다 조금씩 상이했고, 이는 작업반 운영과 의사결정 방식에도 드러나는 것처럼 기후과학과 기후정치가 결합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할 내용은 따로 있다. IPCC 총회 기간에 개최된 '2018 탈석탄 친환경 에너지전환 국제컨퍼런스'(충청남도·충남연구원 주최)에 맞춰 충남은 아시아 최초로 탈석탄동맹(Powering Past Coal Alliance)에 가입했다. 그리고 서울, 인천, 경기 등과 함께 '탈석탄 친환경에너지 전환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는 우리가 기후 카지노(Climate Casino)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주사위(DICE)를 던져 탄소 중독에 빠져 들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10월 8일, 시민환경단체가 내놓은 공동성명서처럼, "한국 정부의 성찰과 책임있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당장 필요한 용기가 아닐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