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법부에 의해 다스 실소유자임이 드러나고 징역 15년 형을 언도받자, 그의 개인 비리와 소위 '사·자·방' 비리를 다루는 기사가 언론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모두 중요한 사안이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기사들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잘못된 정책으로 제도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던 일이다. 사람 몸에 빗대 표현하자면, 부패와 비리는 피부에 상처를 내지만, 제도 개악은 뼈를 손상시킨다. 그만큼 영향도 오래갈 수밖에 없다.
보유세 혐오는 노무현에 대한 반감의 발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보유세 강화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정책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드러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노골적으로 ABR(Anything But Roh: 무조건 노무현과 반대로 한다는 뜻)을 표방했다. 취임 후 첫 사업으로 전봇대를 뽑더니 곧바로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작업에 착수했다. 종부세를 노무현 정부가 설치해 둔 전봇대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애오라지 전임자에 대한 반감으로 국가 대사를 결정했으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종부세 무력화의 총대를 맨 사람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그는 야인 시절 한때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토지가치세를 알리고 지지하는 신문 칼럼까지 썼던 인물이다. 권력을 갖자마자 과거 자신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정책을 앞장서서 밀어붙이는 돌격대장 역할을 했으니 참 특이한 인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권좌에서 물러난 지금 두 사람 다 감옥에 들어가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던 권력자들의 말로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이명박 정부가 노골적으로 종부세 무력화 의지를 밝히고 있던 당시에 때마침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과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려서 이명박 정부를 도왔다. 2008년 11월 13일 헌법재판소는 종부세 위헌 심판 판결에서 종부세 자체에 대해서는 합헌 판정을 내리면서도, 세대별 합산 과세에 대해 위헌 판정을, 주거 목적으로 1주택을 장기 보유하는 자에 대한 무차별적 과세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는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즉각 종합부동산세법을 개정하여 원하던 종부세 무력화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종합부동산세법 개악의 내용과 결과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세기준 금액을 높여서 과세 대상자를 줄이고, 세율을 전반적으로 인하하는 동시에 과표 구간을 조정하여 세 부담을 경감했다. 그 뿐이 아니다. 소유 부동산 가액 계산 방식을 세대별 합산에서 인별 합산으로 변경하고, 2009년까지 100%로 올리도록 되어 있던 과표 현실화 계획을 중단해 버렸다. 이 또한 과세 대상을 축소하고 세 부담을 경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 마디로 이때 이명박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종부세를 형해화시키는 조치를 취한 셈이다.
그 결과 2007년 48만 명에 달했던 종부세 납세 인원은 2008년에 41만 명으로 줄었고, 2009년에는 21만 명으로 격감했다. 그와 함께 2007년에 2조 7671억 원에 달했던 종부세 세수는 2009년에 9677억 원으로 줄었다. 그 과정에서 개별 납세자의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2007년 종부세 납세자를 기준으로 계산한 1인당 평균 납세액은 2007년과 2009년 2년 사이에, 주택의 경우 330만 원에서 51만 원으로, 종합합산 토지의 경우 814만 원에서 392만 원으로, 별도합산 토지의 경우 4033만 원에서 2272만 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그림 1> 종부세 세수 구성의 변화
<그림 1>에 나타나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법 개정으로 종부세 세수 구성도 크게 바뀌었다. 개정 전에는 종부세 세수의 중심은 주택이었고, 그 다음 종합합산 토지, 별도합산 토지의 순이었다. 하지만 개정 이후 주택 종부세 세수는 셋 중 꼴찌로 밀려나고 만다. 한때 1조2000억 원을 초과했던 주택 종부세 세수의 크기도 2000-3000억 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는 주택 투기를 억제하던 종부세의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참여정부 때의 종부세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강남에서 시작되어 서울 전체를 집어삼킨 작금의 부동산 광풍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때 이명박 정부가 재산세에 대해서는 주택분을 제외하고는 감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참여정부가 세웠던 장기 강화 계획을 중단시켰을 뿐이다. 주택분 재산세의 경우에도 세율을 낮추고 과표 구간을 조정하여 세 부담을 경감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종부세보다 훨씬 약했다.
<그림 2>에 따르면, 종부세와 그 부가세(Sur-tax)인 농어촌특별세를 합한 중앙보유세 세수는 2009년에 급격히 감소한 다음 2016년까지 아주 완만하게 증가한 반면, 재산세와 그 부가세를 합한 지방보유세 세수는 한 번도 감소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09년 이후 두 세금의 세수가 증가한 것은 제도 변화가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였다. 종부세는 소수의 부동산 과다 소유자에게 부과되고 재산세는 모든 부동산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만큼, 두 세금의 세수 변화에 이런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보유세 무력화 정책의 본질이 '부자 감세'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림2> 지방보유세 세수와 중앙보유세 세수의 추이 (단위: 천만 원)
이명박이 좌초시킨 노무현의 담대한 계획
더 큰 문제는 이때의 개정이 2007년 시점의 종부세만 후퇴시킨 것이 아니고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중장기 보유세 강화 정책 전체를 무력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종부세는 2007년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고 계속 강화되던 중이었다. 참여정부는 보유세 강화 정책의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두고 있었는데, 그에 의하면 2005년 현재 0.15%였던 보유세 평균 실효세율은 2017년까지 1%로 올라가고, 3.5조원이었던 보유세 세수는 2017년에 34.5조원으로 증가하게 되어 있었다. 이 담대한 계획이 이명박 정부의 보유세 무력화 조치 때문에 좌초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이 도중에 좌초하지 않고 2017년까지 지속되었다면, 한국에서 더 이상 부동산 투기가 발을 붙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대폭 감소했을 것이고 토지와 집은 이용할 사람들만 구입하는 물건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기업들이 생산적 투자는 하지 않고 토지시장을 기웃거리는 일과, 노동자들이 힘에 넘치도록 대출을 받아서 무리하게 집을 사고 땅을 사는 일은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부동산공화국'은 해체되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집권은 역사의 비극
노무현 대통령 다음에 이명박이 집권한 것은 여러 모로 역사의 비극이다. 이명박 정권은 종부세를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종부세 도입과 보유세 강화의 선봉장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까지 죽음으로 몰고 갔다. 노무현의 죽음이 온 국민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면, 종부세 무력화는 이 나라 경제제도의 골간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밀어붙인 뉴타운 사업은 전국 곳곳에서 흉물을 남기고 중단되었다. 서민이 거주하던 저렴한 주택들이 대량 멸실된 것은 그 대가였다.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미명을 내걸고 공공주택 공급을 추진했지만, 실상은 공공분양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이었을 뿐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반토막났다. 뉴타운 사업과 보금자리 주택 정책의 결과는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지속된 살인적인 전월세난이었다. 거기다가 사대강 사업으로 국토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으니, 무자격자 모리배를 대통령으로 뽑은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노무현을 잃고 아파했던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제법 치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명박이 국토에 남긴 상처와 부동산 제도에 남긴 결함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많이 소홀하다. 종부세와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 운명했음을 기억한다면, 그리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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