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1년 3개월 만에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졌다. 현 상황을 놓고, 정부여당이 부동산 가격을 잡던지, 아니면 부동산 가격이 정부여당을 잡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급등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내건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큰 난제 중 하나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9.13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아직은 지켜봐야할 시점이다. 이미 조중동 등 일부 보수 언론은 '송파구에 시가 18억 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40세 가장', '서울 강남에 아파트 2채를 보유한 70대 은퇴 생활자' 등의 사례를 조명하며 "세금 폭탄"이라는 노무현 정부 때 한번 써먹었던 프레임을 들이대며 반대 여론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9.13 대책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는 개발독재시절인 박정희 정권 때부터 지속되어온 고질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인가는 따져볼 수 있다.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부동산 문제는 가뜩이나 각종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미래세대'를 더욱 더 착취하는 문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 최근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은 방 한 칸에 살면서도 매달 50만 원씩 1년에 600만 원을 월세로 내고 있는데 30억 원 부동산 가진 사람 종부세가 그것보다 적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은 이런 문제의식으로 헨리조지포럼의 기획연재 '부동산 광풍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와 해법'을 게재한다. 이 기획은 헨리조지포럼이 기획하고 포럼 멤버들이 글을 나눠썼다. 다음은 연재 목차와 순서다.
[부동산 광풍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와 해법] 연재 순서
①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참여정부 재판(再版)이라고?: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②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부동산 망국사: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③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을 재조명한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④ 한 치도 변하지 않은 수구언론의 부동산 곡필(曲筆): 이태경 헨리 조지 포럼 사무처장
⑤ 토지 불로소득 환수하여 특권 없는 세상을!: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참여정부의 그것과 닮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9.13대책 발표 후 언론에서는 두 대통령과 두 정부 정책을 비교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절친으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고, 그때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보좌했던 참모들 다수가 청와대에 포진하고 있으며, 특히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을 설계했다고 알려진 김수현 박사가 청와대 사회수석으로 문재인 정부 정책을 총괄하고 있으니 그렇게 여길 만도 하다.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유심히 살피면, 두 대통령의 접근 방식과 두 정부의 정책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참여정부는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근본 문제라는 인식을 깔고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2003년 11월 "강남이 불패라면 대통령도 불패로 간다"고 하고, 2006년 4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완화되거나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할 정도로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실제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도 펼치지 못한 기념비적인 것들이었다. 부동산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하여 시장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 부동산 보유세 강화의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법제화한 것, 개발이익 환수제도를 정비한 것,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행복도시와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한 것,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서 주거복지의 수준을 높이고자 한 것 등 이루 열거하기도 어렵다.
정책 하나하나에 대해 기득권층이 엄청난 공격을 퍼부어댔고 그것이 마침내 일반 국민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음에도, 노 대통령이 끝까지 정책의 기조를 지켜내는 강단을 보인 것은 역대 대통령 누구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 왔을까? 노무현 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발언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 2017년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공평과세라든지 소득재분배라든지 또는 더 추가적인 복지재원의 확보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어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정부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동산 보유세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 고작이다.
2018년 7월 이후 마치 장작불에 휘발유를 들이부은 듯 서울 아파트 시장이 부동산 열풍에 휩쓸리고 그 때문에 지지율이 무려 30퍼센트 포인트나 급락하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섬세한 대통령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일이었다. 언론에서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음을 지적하며, 참여정부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해석했다.
정무적 판단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발언을 자제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발언이 아니라 정책 내용이다. 참여정부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하고 시행한 부동산 정책은 단기 시장조절 정책과 주거복지 정책밖에 없으니 하는 말이다.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외면해 온 문재인 정부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 이어 다시 한 번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부동산 불로소득 때문에 발생하는 투기와 불평등을 어떻게 다루겠다는 견해는 밝히지 않았다. 대선 직전 출간한 저서에서 부동산 보유세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GDP 대비 1퍼센트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그 약속마저도 대선 투표일 직전 문재인 캠프 경제정책을 총괄하던 홍종학 정책본부 부본부장이 굳이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백지화해 버렸다.
그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책 공약집'에도, 정부 출범 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만든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부동산 불로소득 때문에 발생하는 투기와 불평등에 대한 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2017년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일자리 중심 경제'로 정식화하면서 '사람 중심 경제'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거기에도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 문건에서 부동산 정책이라곤 부동산 가격 안정 대책, 청년층과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 공급 대책, 주거급여 확대 정책이 고작이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레토릭만 보면 문재인 정부가 당연히 부동산 문제의 근본 정책을 마련했을 것으로 짐작하겠지만, 내용은 기대와 전혀 다르다.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효과적으로 차단·환수하고 모든 국민에게 토지에 대한 권리를 평등에게 부여해야 한다. 그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정책수단은 부동산보유세, 특히 토지보유세다. 토지보유세는 부동산 소유자가 차지하는 지대소득을 줄일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 자본이득(capital gain)을 줄인다. 게다가 올바로 설계할 경우 양도소득세의 결함인 동결효과나 조세전가를 유발하지도 않는다(양도소득세는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에 효과적일 것 같지만, 소유자로 하여금 매물을 내놓지 않도록 만들거나 가격 폭등기에 조세전가를 초래하는 결함이 있다).
참여정부가 과표 현실화와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보유세 강화 정책을 펼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보유세 강화 없이는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이해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보유세 강화 정책은 궤도에 올랐다. 정책의 장기 로드맵을 법률에 명기할 정도로 제도 도입은 성공적이었다. 대한민국이 '부동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을 무산시키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부동산공화국'을 탈피했을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정권이 교체되어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그 뒤를 이어 박근혜 정부가 연속 집권하면서,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은 처참하게 무너졌고, 한때 0.3퍼센트 가까이까지 올라갔던 보유세 실효세율(세액/부동산가액)은 다시 0.16퍼센트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눈물어린 노력과 좌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문재인 대통령과 참모들은 당연히 이명박 정권이 좌절시킨 보유세 강화 정책을 당당하게 재추진해서 대한민국을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역사적 소명이었다. 국민들은 노무현을 계승한 정치세력이 당연히 그렇게 할 줄 믿고 아낌없이 표를 주었다.
부동산 광풍, 문재인 정부의 정책 오류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문재인 정부는 이 일에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선 때에는 표를 의식하는 정무적 판단으로 함구한다고 짐작했다. 2017년 8월 2일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스스로 역대 정부 부동산 대책 가운데 가장 강력한 대책이라고 역설하며 집값 안정을 공언했지만, 거기에도 보유세 강화 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보유세를 강화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빗발치자, 2018년 4월 재정개혁특별위원회라는 이상한 조직을 만들어서 보유세 개편 문제를 다루게 했다. 3개월 가까이 논의를 거친 끝에 7월 3일 재정개혁특위가 내놓은 개편 방안은 증세액이 약 1.1조 원에 불과한 '찔끔증세' 방안이었다. 불과 3일 뒤인 7월 6일 기획재정부는 그것조차도 완화해서 세수 효과가 약 7400억 원에 지나지 않는 '더 찔끔증세' 방안을 발표하는 것으로 보유세 개편을 마무리했다.
이런 태도는 큰 불씨가 남아 있던 부동산 시장에 바람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의 개발계획은 거기에다 휘발유를 갖다 부었다. 시장 참가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확인했고, 용산·여의도·강북에 개발 호재까지 등장한 것을 보고는 대거 서울지역 아파트 매입에 나섰다. '똘똘한 한 채'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지방 부자들이 현금을 싸들고 서울로 몰려든다는 기사도 보도되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광풍의 책임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돌릴 수 없는 입장이다. 이번 부동산 광풍에는 노무현의 뒤를 이어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방기하고 시장 상황에 대해 그릇된 판단을 내린 문재인 정부 정책 담당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핀셋증세'이자 '찔끔증세'에 불과한 9.13대책
지지율이 무려 30퍼센트 포인트나 떨어지고 서울 부동산 시장의 매수우위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보이는 등 위기 상황이 벌어져서,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정신을 차릴 줄 알았다. 그러나 9월 13일 발표된 부동산 대책의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할 근본정책을 마련하려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모든 정책 수단이 단기 시장조절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소유자를 대상으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세율 인상 대상 인원은 21만여 명(전체 주택 소유자의 1.6퍼센트)에 지나지 않고, 총 세수 효과는 1조150억 원에 불과한 핀셋증세, 찔끔증세였다. 이는 지난 7월 3일 찔끔증세라는 비난을 받은 재정개혁특위 최종안보다 약한 수준이다.
9.13대책은 단기 시장조절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문제가 많다. 대책이 대부분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 중심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비규제지역으로 투기의 불길이 옮겨 붙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토지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는 손대지 않아서 작금의 아파트 투기가 토지나 상가·빌딩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수구 세력이 주장하는 공급확대론에 굴복하여 수도권 30여 곳에 신규택지를 개발한다는 방침도 포함하는 바람에, 투기 불길을 서울에서 경기도 곳곳으로 확산시킬 우려도 크다.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정책은 한사코 피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온 셈이다. 그러고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197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어서 수많은 국민들을 좌절에 빠뜨리고,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30퍼센트를 넘는 엄청난 부동산 소득이 발생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격렬한 부동산 경기변동으로 금융위기의 위험이 상존하는 나라, 이게 대한민국의 실상임에도, 마치 이런 문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처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땅이 아니라 땀이 대우받는 세상'은 점점 더 멀어지는가?
언제쯤이면 우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건물주를 꿈꾸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문재인 정부의 탄생으로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을 갖고 싶다는 꿈은 이뤄졌을지 모르지만, '땅이 아니라 땀이 대우받는 세상'을 향한 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질병은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낫지 않는 법이다. 근치(根治)를 위해 수술이 필요하면 수술을 해야 하고, 요양이 필요하면 요양을 시켜야 한다. 질병의 근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소독약이나 바르고 진통제나 주는 데 여념이 없는 의사는 병원에서 퇴출시켜야 마땅하다. 부동산 문제는 단기 시장 조절이나 주거복지로 대처하면 충분하다고 대통령을 설득한 사람이 누군가? 괜히 근본 해결을 꾀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같은 군색한 처지에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대통령을 '협박'한 사람이 누군가? 늦었지만 앞으로라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올바른 방향을 찾으려면, 그도 정책을 세우는 자리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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