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 다스리면 백성이 속이고, 의심을 보이면 백성은 몰래 한다. 그런 뒤에는 위아래가 그림자와 메아리, 귀신과 도깨비의 길에서 싸우게 된다."
유가 전제정권 사회(명나라)에서 '이성(異姓)'의 침입자(청나라)가 황실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을까. 명말청초의 사상가 황종희의 탄식은 그러했다. 동시대의 사상가 주학령의 묘사다.
"오늘날 온 나라 백성은 모두 굶주린 승냥이 같아서 호랑이보다 더 사나운 듯하다."
사상가 장이기는 피를 토한다.
"참혹하게 소를 도살하더라도 촉박하게 재촉하는 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하니, 흥건하게 피에 젖은 고기만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참혹하게 사람을 죽이면 두려워 떨면서도 피할 틈이 없고 다급한 재촉에 몸 둘 바를 몰라서, 흥건한 피에 젖은 살이 세상에 가득 차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 왜냐? 소를 도살하는 것은 칼을 내리칠 뿐이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단순히 한 번의 칼질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 온 세상 사람이 살길을 찾아갈 수 없어서 서로 이끌고 도랑과 골짝으로 빠져 들어가 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살인이다."
시인 전겸익은 시인다운 은유를 동원했다.
"재앙이 끝난 뒤에는 원망하며 서로를 찾는다. 풀과 나무를 집어 들고 무기로 삼으며, 혈육을 가리켜 원수로 여긴다. 벌레는 두 주둥이로 자신을 깨물고 새는 두 머리로 서로 해친다."
고염무, 황종희와 더불어 명·청 교체기의 3대 사상가로 꼽히는 왕부지(王夫之, 1619~1692)는 '지독한 미움(戾氧)'에 대해, 사대부들의 '조급한 경쟁(躁競)'에 대해 반복적으로 비판한다. 그야말로 <증오의 시대>요, <생존의 시대>였다. 원제는 <명청교체기사대부연구>.
중국 둔황 출장길을 책이 동행했다. 소름이 끼쳤다. 명말·청초 지식인들의 가장 사적인 문집과 편지 기록을 통해 복원한 이 책은 명말·청초 연구자들의 필독서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자 자오위안(趙園)을 향한 존경은 당연했다. 더불어 이 놀라운 책을 공들여 번역한 인제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홍상훈에의 존경심을 반드시 기록해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살아남은 ‘유민’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들의 고통과 고뇌는 어떤 식으로 극복될 수 있었을까. 어디에다 소리라도 질러야 했을까.
시인 전겸익이 노래했다. "죽은 소리란 무엇인가? 원망하고 분노하고 슬픔과 시름에 잠겨 막히고 조화롭지 못하며 촉급한 소리가 그것이다(何謂死聲, 怨怒哀思, 怙懘噍殺之音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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